[스포츠박사 기자의 스포츠 용어 산책 125] 북한에선 ‘그린’을 ‘정착지’라고 말한다구?

김학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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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 2020-08-31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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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대외선전매체 '내나라'는 평양골프장이 지난해 리모델링을 마치고 운영 중이라며 최근 홍보영상을 공개했다. 사진은 골프를 즐기는 사람들의 모습. [연합뉴스 자료사진]
북한에서 쓰는 골프 용어는 우리와는 많이 다르다. 국제 공용어를 대부분 그대로 쓰는 우리와는 달리 북한은 골프 용어도 이른바 ‘주체식’ 표기법으로 하고 있다. 북한이 이질적인 용어를 사용하는 것은 자체 ‘문화어(표준어)’ 정책에 따른 것이라고 한다. 북한의 골프 용어를 살펴보면 너무 큰 차이가 난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북한에서는 그린을 ‘정착지’라고 한다. 일정한 곳에 자리잡은 곳이라는 의미를 그린으로 대체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그린에 공이 올라가면 봉사원(캐디)이 “정착지에 안착했다”고 표현한다. 순 한글이 아니지만 일단 우리와 다른 말을 쓰는게 낯설다는 느낌이다.

신기한 표현도 많다. 골프는 ‘열여덟 막대기 공알 치기’. 볼은 ‘공알’, 로스트볼은 ‘낡은 공알’, 티는 ‘공알 받이’이다. ‘티박스는 ’타격대‘, 레귤러 티는 ’앞 출발 티‘, 스윙은 ’휘두름‘이다. 아이언은 ’쇠채‘, 롱아이언은 ’긴 쇠채‘이며 우드는 ’나무채‘, 드라이버는 ’제일 긴 나무채‘다. 퍼터는 ’속살 쑤시개‘, 카트는 ’밀차‘, 클럽하우스는 ’봉사 건물‘이다. 라커룸은 ’갱의실‘, OB는 ’경계선 밖‘, 페어웨이는 ’잔디 구역‘, 핸디캡은 ’순위‘이다. 워터 해저드는 ’물 방해물‘, 벙커는 ’모래 웅덩이‘이다. 파3홀은 ’짧은 거리‘, 파4홀은 ’중간 거리‘, 파5홀은 ’긴 거리‘이다. 내리막과 오르막은 내리경사, 올경사라고 말한다. 한국식 표현과 비슷한 것도 있는데 홀을 ’구멍‘이라고 부른다. 영어 원어를 그대로 쓰는 것도 있다. 보기, 버디, 이글 등 홀 성적을 나타내는 표현이다. 파는 ‘빠’, 클럽은 ‘그로브’라고 영어에 가깝게 발음한다.

북한은 해방 뒤 일제 강점기 주시경의 제자였던 김두봉과 조선어학회 우두머리였던 이극로 등이 주도해 민족주의를 앞세워 한국보다 더 적극적으로 국어 순화운동을 벌였다. 외래어를 배제하고 한자어가 아닌 우리 고유어로 대부분의 말을 바꿔 사용하게 했다. 스포츠에서도 많은 용어들을 국제 공용어가 아닌 순 우리말로 고쳐 불렀다. 오랜 시간이 흐르면서 이제는 골프 용어에서도 보듯 서로 못알아 들을 정도로 서로 큰 차이를 보이게 됐다.
원칙적으로 골프를 대표적인 ‘자본주의 스포츠’로 간주하고 일반인들에게 금기시하는 북한은 평양골프장이 유일한 18홀 골프장으로 알려져 있다. 북한에는 금강산 관광이 진행되던 2008년 금강산 아난티 골프앤리조트가 완공됐지만 관광객 박왕자씨 피격 사망 사건 이후 금강산관광이 중단되면서 실제 운영되지는 못했다.

그동안의 국내 언론 기사에 따르면 평양 근교에 위치한 평양 골프장은 1983년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지시로 조총련 사업가들이 1억엔의 공사비를 들여 만들었다. 1987년 4월 김일성 주석 75회 생일 기념으로 개장했다. 해발 200~300m의 낮은 산과 인공호수가 있는 태성호 기슭에 자리하고 있다. 당초 평양 태성골프장으로 불렸던 이 골프장은 일반인과 관광객에게 개방됐다. 평양골프장은 김정일 위원장이 이곳에서 처음 가진 라운드에서 기록했다는 스코어, ‘38언더 34타’ 때문에 전 세계적으로 유명해졌다. 뉴욕타임스는 2004년 7월 ‘친애하는 허풍쟁이와 티오프하기(Tee off with Dear Braggart)’라는 기사에서 “세계 최우수 골퍼는 다름 아닌 북한 독재자 김정일”이라면서 “북한 언론에 따르면 그는 정기적으로 골프를 하며 한 라운드에 서너 번씩 홀인원을 한다”고 썼다. 또 “북한 언론은 김 위원장이 처음으로 라운딩한 1994년 첫 홀에서 이글을 잡고 이후 5개 홀에서 홀인원을 해 모두 34타, 즉 38언더파를 기록했다고 전한 바 있다”고 했다.


하지만 뉴욕타임스가 인용한 기사는 호주의 파이낸셜리뷰에 1994년 9월 실린 것으로 확인됐다고 국내 언론들이 최근 보도했다. 이와 관련, 골프투어업자라고 밝힌 조시 센스는 2016년 미국 골프닷컴에 스코어카드를 잘못 해석한 북한 기자 때문에 이런 얘기가 나왔다고 주장했다. 센스는 2011년 평양골프장에서 라운드를 할 때 골프장 관계자가 한 말이라며 이렇게 전했다. “스코어를 적는 직원이 파와의 차이를 스코어카드에 썼다. 파는 0, 보기는 1, 더블보기는 2로 썼다. 그런데 기자가 이를 그 홀의 타수로 잘못 알고 기사를 썼다”고 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보기 5개가 홀인원 5개가 됐다는 것이다. 그의 말이 맞다면 김정일 위원장은 당시 38언더파 34타가 아니라, 34오버파 106타를 친 것이 된다. 평양골프장에서는 2005년 8월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평양오픈이 열리기도 했다. 당시 송보배가 우승을 차지한 바 있다. 남북한의 이질적인 골프 환경을 보면서 남북한이 앞으로 가야할 길이 만만치 않음을 실감한다.

[김학수 마니아리포트 편집국장 kimbundang@maniarepor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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