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박사 기자의 스포츠용어 산책 67] 왜 '러프(Rough)'는 벌타적 의미가 됐을까

김학수기자

필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승인 | 2020-07-02 06:02

0
center
김세영이 지난 6월 기아자동차 한국여자오픈에서 러프에서 아이언 샷을 하고 있다. [기아자동차 한국여자오픈조직위 제공]
요즘 학생들은 미국의 대표적인 시인 로버트 프로스트(1874-1963)의 ‘가지않은 길((The Road not Taken)’을 배우고 있는 지 모르겠지만 예전에는 반드시 읽고 암송해야 했었다. 세상의 모든 길은 두 갈래로 나뉜다. 간 길과 가지 않은 길, 알려진 길과 알려지지 않은 길, 길 있는 길과 길없는 길. 프로스트는 삶이라는 이름 아래 인간은 한 길만을 갈 수 밖에 없다는 선택적 의지를 시에서 말했다.

18홀의 골프장은 드넓고 평평한 공간이 펼쳐져 있다. 하지만 여기서도 가야할 길과 가지 말아야 할 길로 나뉜다. 페어웨이(Fairway와 러프(Rough)이다. 페어웨이는 말 그대로 올바른 길이다. (본 코너 32회 참조) 잔디를 갂아서 잘 정돈된 지역이다. 티잉 그라운드에서 보면 페어웨이는 손질이 잘 된 모습으로 푸른 양단자를 깐 듯이 시원스럽게 펼쳐져 있다. 골프장에서 그린과 함께 골프의 매력을 가장 높여주는 핵심적인 공간이기도 하다. 골퍼들이 가고 싶어하는 ‘꽃길’이다.

이에반해 러프는 가기 싫어하는 ‘흙길’이다. 꽃길에 비해서 그만큼 순탄하고 순조로운 길이 아니라는 의미이다. 물론 흙으로 덮여있는 길이 아니다. 페어웨이 바깥의 두꺼운 풀이나 자연적으로 자란 식물이 다듬어지지 않은 특정 지역이라는 의미이다. 공이 러프에 빠지면 탈출하는데 애를 많이 먹는다. 그래서 골퍼들에게는 흙길일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골프에서 러프가 만약 없었다면 재미는 훨씬 없었을 것이다. 꽃길만 걷는 인생이 없듯이 흙길만 계속되는 삶도 없다. 항상 좋은 일만 있을 수 없고 나쁜 일만 있을 수 없다. 어쩌면 불행한 일들이 있기 때문에 삶에서 더 행복을 느낄 수 있다. 러프는 골프에서 바로 그런 존재감이라고 할 수 있다.

‘러프’라는 말은 여러 가지 의미를 가진 다의어이다. 그만큼 다양한 영역에서 쓰이고 있다는 말이다. 형용사로 ‘고르지 않은, 거친’다는 의미이다. 대충하는 행동과 성격에 관련해 많이 쓰인다. 썩 좋은 의미는 아니다. 명사로는 골프장에서 풀이 길고 공을 치기가 힘든 지역을 말한다. 그림 회화에서 초고, 밑그림을 뜻하기도 한다. 러프의 어원은 고대 영어 'Ruh', 앵글로 노르만어 'Ruksa'의 영향을 받아 거칠다는 의미로 쓰였다.

골프에서 러프를 만든 것은 몇 가지 목적이 있다. 먼저 징벌적 성격이다. 페어웨이를 놓친 골퍼들에게 벌타적 성격을 부여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잔디가 높은 러프에 들어가면 공을 빼내기가 어렵다. 골프장마다 러프의 잔디 길이는 다르다. 페어웨이 바로 옆 러프는 깎기도 하지만 깊이 들어갈수록 잔디는 무성한 숲으로 바뀐다. 고급 골프장들은 러프도 등급을 나눠 운영한다.

러프는 골프 발상지 스코틀랜드에서 먼저 등장했다. 해안가 링크스에 있던 초창기 골프장들은 페어웨이가 없고 거친 자연상태로 된 지역에서 출발했다. 잔디 깎는 기계도 없던 시절이라 자연적인 방식으로 잔디 관리를 할 수 밖에 없었다. 풀을 먹고 자라는 양떼와 염소들에 의해 초원이 관리되면서 골프를 할 공간이 만들어졌다. 그 이외 지역은 자연 상태 그대로 였다. 산업과 과학의 발달로 기계적인 벌채 방법이 가능해지면서 골프 코스는 페어웨이와 러프를 계획적인 방식으로 관리하는게 가능해졌다.

러프가 징벌적 성격이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는 대표적인 골프대회는 US오픈이다. 미국 골프대회의 내셔널대회이면서 4대 메이저 대회의 하나인 US오픈은 대회가 열리는 코스에서 러프를 특별 관리한다. 페어웨이에서 몇 피트 떨어진 러프의 길이까지 치밀하게 계산해 운영하고 있을 정도이다.

골퍼들은 러프에 대한 속어로 거친 풀, 큰 풀, 시금치, 잡초, 양배추, 브로콜리, 정글 등 거칠고 다양한 말을 사용한다. 그만큼 러프를 싫어한다는 뜻이다. 표의성이 뛰어난 한자어로 러프는 ‘심초구(深草區)’이다. 깊은 곳에 있는 풀이라는 말이다.

[김학수 마니아리포트 편집국장 kimbundang@maniareport.com]

기사제보 및 보도자료 report@maniareport.com
<저작권자 © 마니아리포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마니아TV

  • 5번째 내셔널 타이틀 따낸 유소연의 예선 라운드 샷(ft. 안...

  • 한·미·일 여자 프로골프를 대표하는 고진영, 최혜진, 이보...

  • [영상] 안소현, 외모보다 빛나는 티샷 '천사가 따로 없네'

  • [투어프로스윙]국대출신, 2년차 윤서현의 드라이버 스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