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스포츠 100년](20)제1회 전국체육대회(중)

정태화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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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 2020-04-30 0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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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0년 7월 13일에 발족한 조선체육회가 전조선야구대회(중학단, 청년단) 중 청년단야구대회 우승팀에게 수여한 우승기로서, 위쪽에는 ‘청년단야구대회(靑年團野球大會)’가, 중앙에는 월계수와 ‘우(優)’가 새겨져 있다.이 우승기는 우리나라 근대 체육사에 귀중한 유물이다. .
조선·동아일보 정간으로 매일신보에서 후원

조선체육회가 창립 첫 사업으로 강한 열의를 보이면서 시작한 제1회 전조선야구대회는 총독부 기관지인 매일신보의 후원으로 11월 4일부터 사흘동안 배재고보 운동장에서 개최됐다. 민족지를 표방하고 이해 4월 창간한 조선일보와 동아일보가 총독부로부터 정간을 당하는 바람에 할 수없이 매일신보가 후원을 했다.

매일신보는 대회 개최 8일전인 10월 26일 ‘전선야구대회, 조선체육회 주최로 본사의 대대적 후원아래 십일월 초순에 개최할 터’라며 선수 제군들 참가하라는 사고(社告) 형식의 기사를 내 보냈다.

“우리 조선을 제외한 다른 나라에서는 해마다 협회를 차려서 야구대회니 축구대회니 무슨 올림픽이니 하는 운동경기대회가 있건만 우리 조선에서는 지금껏 그 같은 대회가 별로 없었다. 이미 본보에 보도한 바도 있으니까 다 기억하실 것이지만은 조선체육회가 우리사회에 나타나서 장차 앞으로 여러 가지의 체육장려에 대한 사업을 많이 할터인 바 이제 그 제일보로 래월 초순에는 전조선인의 야구대회를 개최할터인바 본사에서는 그에 대하야 대대적 후원을 할터이다. 대회의 경쟁은 중학생단과 실업단 두 부분으로 나누어서 각각 우승자를 뽑아 표창할 터이다. 그런데 운동장과 경기일자와 기타 자세한 것은 후에 발표하겠으나 경향은 물론이고 조선사람의 학생과 실업단체로서 경기에 참가를 희망하는 단체는 오는 30일 이내로 본사 편집국이나 혹은 조선체육회 사무소 종로 1정목 88 전화 1597번으로 청원하라더라”

이어 매일신보는 10월 30일 3면 오른쪽 맨 아래쪽 3단 크기로 주최 조선체육회, 후원 매일신보사로 된 사고를 게재했다. 이에 따르면 대회의 정식 명칭은 ‘전선(全鮮) 제1회 학생 및 실업단 야구대회’이며 경기 날짜는 11월 4일부터 3일 동안, 장소는 정동에 있는 배재운동장에서 열린다고 되어 있다. 또 신청 장소는 매일신보사 본사와 조선체육회로 명시하고 주소를 종로통 1정목 39번지로 명시했다. 신청기한은 대회 전날까지인 11월 3일까지이며 주의사항으로 경기개시 시간은 첫날 오전 9시, 5일과 6일은 오후 1시부터 시작한다고 예고했다.

이 두 가지 기사를 통해 유추할 수 있는 부분은 크게 두 가지다.

첫째는 사고를 게재한 날짜다. 매일신보는 대회 개최 겨우 5일전에 사고를 게재했다. 통상적으로 대회를 개최하기 위해서는 최소 한 달여 전에 후원사를 정하고 준비를 한다. 조선체육회가 첫 사업으로 경기대회를 개최하면서 이런 준비에 소홀히 했을 리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과 5일전에야 대회 소개를 겸한 첫 사고가 나온 것은 아마도 이해 4월 잇달아 창간한 조선일보와 동아일보가 정간을 당해 후원사 선정을 고민하다 총독부 기관지인 매일신보를 택할 수밖에 없었던 탓으로 보인다. 대회 개최를 알리기 위해서는 반드시 언론의 도움이 필요했지만 내면적으로 항일의 선봉을 자임했던 조선체육회가 총독부 기관지의 후원을 받는 것은 아무래도 자존심이 상했음에 틀림없을 것 같다.

당시 조선일보는 1920년 8월 27일 정간을 당한 뒤 일주일 만에 해제가 되었으나 속간이 된 뒤 9월 5일자에 ‘우열한 총독부 당국은 하고로 우리 일보를 정간시켰나뇨’라는 사설로 무기정간을 당했다. 또 동아일보는 1920년 9월 25일 ‘제사문제를 재론하노라’라는 사설에서 일본 황실의 상징인 거울, 옥구슬, 칼 등 3종의 신기를 비판했다는 이유로 정간을 당한 뒤 이듬해인 1921년 2월 10일에 해제되었으나 준비 관계로 실제로는 10일이 지난 1921년 2월 21일에야 복간했다.

둘째는 대회 참가 팀의 신청날짜가 개막 하루 전이었다. 이는 너무나 늦게 언론사에서 후원을 하는 바람에 전국적으로 참가 팀을 모을 수 있는 시간적인 여유가 없었다는 뜻이기도 하다. 결국 지방 팀들은 한 팀도 참가하지 못하고 중학단과 청년단에서 모두 서울 팀만이 참가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여기에 있었던 셈이다.

우승기는 숙명여고 학생들이 수놓아 증정
제1회 전조선야구대회의 경기방식은 학생단이나 청년단 모두 토너먼트 방식으로 진행됐다. 먼저 학생단은 대회 첫날인 4일 오전 9시에 예선경기를 한 뒤 오후에 결승까지 치르도록 했으며 청년단은 5일 오후 1시부터 예선을 하고 6일 오후 1시부터 결승전을 벌였다.


학생단과 청년단이 각각 5개 팀이 참가함에 따라 1개 팀은 부전승으로 올라가게 되는 데 지금처럼 미리 대전표를 정해 놓은 것이 아니라 예선전이 끝나고 난 뒤 추첨으로 다음 상대를 정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숙명여자고등보통학교에서는 조선에서 처음으로 열리는 대회라고 해서 제1회 대회 우승팀에 주기 위해 수고를 아끼지 않고 풀잎같이 곱은 손으로 자수를 놓아 우승기를 만들어 기증했으며 참가를 신청한 서울 시내 팀들은 우승을 위해 매일 아침 일찍이 운동장에 나가 저녁까지 쉬지 않고 훈련에 열중하였다.

숙명여고 여학생들이 손수 수를 놓아 기증한 제1회 전조선야구대회의 우승기는 현재 소재를 알 수 없고 현재 남아 있는 우승기는 제2회 대회 청년단의 우승기이다.

제1회 전조선야구대회가 개막하고 이틀이 지나고 난 뒤인 11월 6일 매일신보에 게재된 대회 개막 관련 기사다.

조선의 유사 이래로 처음으로 조선 사람의 야구대회 첫 막이 조선체육회 주최와 매일신보사 후원으로 열리게 된 것은 이미 여러 차례 보도를 했으며 그 재미있고 기쁨이 넘치는 야구대회는 예정과 같이 11월 4일 오전 9시부터 서울시내 정동 배재학당 그라운드에서 열렸다. 이날 아침 8시에 출전학교들인 휘문, 경신, 중앙, 보성, 배제 등 다섯 학교의 선수들이 시내 보성학교에 모여서 군악단의 행진곡에 발을 맞추어 방망이를 둘러메고 늠름하고 씩씩한 기상으로 제각기 운동복을 입고 발자취마다 향기가 가득하게 걸어서 매일신보사 정문 앞에 이르러 일자로 늘어서 경례를 한 뒤 다시 플레이 볼 삼창을 했다. 다시 음악소리를 따라 대한문을 지나 정동 배제학당 그라운드에 화려하게 꾸며 놓은 대회장에 이르러 장내를 2~3차례 돌아다닌 뒤 운동장 한편에 모여 입장식을 가졌다. 이어 조선체육회 고원훈 이사장의 개회사와 경기에 대한 주의가 있은 후 조선체육회 의원과 선수들이 기념촬영을 가졌다. 그리고 추첨을 통해 휘문과 경신이 첫 게임을 시작하면서 시구식이 있었으며 순서에 따라 이원용, 현홍운, 신홍우 씨등 심판진에 의해 경기가 시작되니 예정시간보다 조금 지체되어 아침 9시 30분쯤 이었다.

[정태화 마니아리포트 기자/cth0826@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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