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야구 손자병법] 6 포수들의 혼수모어(混水摸魚)

이신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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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 2020-02-27 14: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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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야구 손자병법] 6 포수들의 혼수모어(混水摸魚)

-물을 흐려놓고 물고기를 잡는다. 적을 혼란에 빠뜨린 후 원하는 걸 얻는다.

포수들은 입으로도 먹고 산다.

경기 중 상대편과 가장 가까이 있는 캐처는 그래서 작은 소리로도 상대팀 타자를 흔들 수 있다. 소위 포수들의 입방아 심리전이다.

1986년 후반기. 해태 김봉연과 삼성 이만수는 100호 홈런 선점경쟁을 벌이고 있었다.
홈런타자인 이들은 모든 팀의 경계대상 1호이기도 했지만 포수들의 심리전 상대이기도 했다.
포수들은 그들이 타석에 들어서면 가만 두지 않았다.

“봉연이 형, 만수가 지금 막 홈런을 쳤다는데요. 내가 형을 더 좋아하는 거 알죠. 좋은 공 드릴테니 힘껏 날리시죠”

mbc청룡 포수 김용운이 슬며시 말을 넣었다. 그럴 리 없다는 걸 뻔히 알면서도 ‘이만수 홈런’이라는 말에 마음이 급해진 김봉연은 공이 비슷하다 싶으면 그냥 방망이를 돌렸다.
스트라이크 존을 스치듯 빠지는 공에는 어김없었다. 홈런은커녕 삼진. 괜히 헛힘 쓰다가 헬멧까지 벗겨지는 바람에 관중들의 폭소까지 유발했다.

입심에선 둘째가라면 서러워하는 이만수도 김봉연을 곧잘 흔들었다.

“성님, 오늘 컨디션이 아주 좋아 보임미데이. 시원하게 넘겨 뿌소 마. 이번엔 진짜 말랑말랑한공 임미데이.”

경쟁자가 좋은 공을 줄리는 없는 일. 속지말자고 생각하는 사이에 공은 무서운 속도를 내며 어느 새 포수 글러브 속으로 들어간다.

이만수의 입은 후배들을 만나면 더욱 바빠진다. 키는 작아도 매섭게 방망이를 돌리는 한화 이정훈.
다혈질이어서 쉽게 열을 받는 편이었다.

“방망이가 니보다 더 크네. 조그만 방망이 하나 구해라. 내가 하나 구해줄까.
방망이가 커서 제대로 휘두르기나 하겠나. 야들아, 다들 앞으로 온나. 야는 쳐봤자 멀리 안나간다.”


이만수는 대구상고 5년 선배. 이정훈은 씩씩거리다 물러나곤 했다.
하지만 이만수는 그렇게 이정훈을 놀리다 혼이 나기도 했다.
어설프게 장난 놀다가 정신 바짝 차리고 독을 품은 이정훈에게 끝내기 홈런을 맞고 말았다.

포수석에서 숱하게 놀린 이만수도 포수에게 당하기는 마찬가지.
한화 유승안도 ‘입 투구’에선 결코 지지 않는 스타일. 능글맞은 말로 승부욕을 발동시켜 이만수를 처리한다.

“만수야, 어젯밤 무슨 꿈 꾸었냐. 방망이가 기가 막히게 잘 돈다. 오늘은 아무래도 안되겠다. 그냥 걸어서 나가라. 홈런 맞기 싫다.”

사실 그날 이만수의 컨디션은 최고였다. 한방 터뜨려야 한다는 조바심과 걸어나가도 괜찮겠다는 마음 사이에서 머리를 굴리고 있는 데 공은 스트라이크 존을 쏜살같이 통과했다. 삼진.

차동열은 철저한 유혹형. “요즘 잘 안맞지. 타격 자세가 흐트러져서 그래. 아, 이번 것은 치지마라. 볼이다. 우리 사이에 안타 1개 못 주겠냐. 다음엔 직구다. 준비하고 있어라.”

다정다감한 선배. 특별히 친한 사이니까 믿어 볼까. 에이, 그래도 시합인데 설마. 이 생각 저 생각으로 머릿속이 복잡한 신출내기 타자들은 결국 스윙 타임을 놓치고 만다.

포수의 말, 그건 어떤 경우에도 함정이다. 그들의 입은 무기다.

[이신재 마니아리포트 기자/news@maniarepor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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