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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철의 스포츠 브레인] 3년의 담금질, 돌아온 공은 더 날카로워져 있었다... 절차탁마(切磋琢磨)

2026-09-07 10:08

LG 고우석 / 사진=연합뉴스
LG 고우석 / 사진=연합뉴스
[김기철 마니아타임즈 기자] 지난 4일 저녁, 잠실구장에서 3대4 한 점 차 리드로 맞은 9회초 마운드에 오른 이름은 고우석이었다. LG 복귀 후 첫 등판이 하필 세이브 상황이었다. 관중석을 가득 채운 팬들의 시선이 일제히 마운드로 쏠렸다.

첫 타자 디아즈에게 스트레이트 볼넷을 내주며 관중석엔 잠깐 정적이 흘렀다. 그러나 마지막 타자 강민호를 2루수 뜬공으로 잡아내는 순간, 그는 통산 140번째 세이브를 손에 쥐었다. 그런데 이 장면을 그저 '오랜만에 돌아와 옛 감각을 되찾았다'로 읽으면 절반만 본 것이다. 그가 그날 던진 공에는 3년 전에는 없던 것들이 섞여 있었다.

운동선수에게는 두 가지 능력이 따로 존재한다. 공을 잘 던지는 능력과 그 공이 왜 잘 던져졌는지 혹은 왜 안 통했는지를 스스로 진단하는 능력이다. 시험을 볼 때도 마찬가지다. 문제를 맞히는 것과 왜 지난번엔 틀렸는지를 설명할 수 있는 것은 전혀 다른 차원의 일이다.

뇌과학은 이 두 번째 능력을 메타인지라 부른다. '생각에 대한 생각', 자신의 수행을 한 걸음 떨어져서 냉정하게 관찰하고 원인을 찾아내는 능력이다. 메타인지가 없으면 몸이 아무리 반복해도 제자리를 맴돌 뿐이지만, 메타인지가 작동하는 순간부터 같은 반복도 개선으로 이어진다.

잘 던진 공과 못 던진 공의 차이를 구체적인 언어로 설명할 수 있어야 다음 훈련에서 무엇을 고쳐야 할지가 비로소 보이기 때문이다. 고우석은 복귀 후 이런 말을 남겼다. 한국에서 뛸 때는 성적이 좋았던 시즌이 왜 좋았는지, 나빴던 시즌이 왜 나빴는지조차 몰랐다는 것이다. 미국 마이너리그를 전전하며 그는 그 이유 하나라도 찾아내 자기 것으로 만들려 했다고 말했다.

이 진단의 과정이 수백 이닝 쌓이면, 몸은 예전과 똑같은 방식으로 돌아가는 대신 전혀 다른 방식으로 재조립된다. 3년 전과 같은 방법으로 공 던지는 법을 다시 익힌 게 아니라 3년 전에는 없던 방법을 새로 만들어낸 셈이다.

그 여정은 순탄과는 거리가 멀었다. 2024년 초 포스팅을 통해 샌디에이고 파드리스와 계약하며 메이저리그에 도전장을 냈지만, 시즌 개막을 앞두고 마이너리그로 강등되며 빅리그 데뷔조차 밟지 못했다. 이후 마이애미 말린스로 트레이드됐으나 성적이 살아나지 않아 방출됐고, 디트로이트 타이거스 산하 마이너리그와 다시 계약해 재도전을 이어갔다.

LG 고우석 / 사진=연합뉴스
LG 고우석 / 사진=연합뉴스
지난 3월엔 WBC 국가대표로 태극마크를 달았고, 5월엔 마무리 유영찬의 부상으로 LG가 먼저 손을 내밀었지만 미국 도전을 이어가겠다며 스스로 거절했다. 미네소타 트윈스로 다시 트레이드된 뒤 7월 마침내 빅리그 데뷔전을 치렀지만 4경기 만에 마이너리그로 돌아갔다.

32개월에 걸친 이 우회로에서 그는 직구 스피드는 시속 150km대 초반으로 예전과 큰 차이가 없었지만, 구위를 뒷받침하는 변화구의 종류와 정교함만큼은 확연히 달라져 있었다. 실제로 LG는 복귀 초반 그를 마무리가 아닌 2이닝을 소화하는 중간 투수로 기용할 계획을 세워뒀을 정도로 미국에서 다진 이닝 소화력까지 반영한 활용법을 새로 고민하고 있었다.

2023년 9월 19일 광주에서의 세이브 이후 1081일 만이자 KBO리그 역대 14번째로 밟은 140세이브 고지는, 그러니까 멈춰 있던 시계가 다시 돌아간 결과가 아니라 그사이 새로 맞춰진 시계가 처음 울린 순간에 가까웠다.

시경에는 '여절여차 여탁여마(如切如磋 如琢如磨)'라는 구절이 나온다. 뼈를 자르고, 상아를 갈고, 옥을 쪼고, 돌을 문지른다는 뜻이다. 어느 하나만으로는 부족해 자르고 갈고 쪼고 문지르는 과정을 겹겹이 거쳐야 비로소 원석이 값어치를 드러낸다는 이야기다.

후대에는 학문이나 인격을 갈고닦는다는 뜻으로 널리 쓰이게 됐다. 절차탁마, 갈고 닦는다는 이 말은 고우석의 32개월과 정확히 겹친다. 마이너리그를 전전한 시간은 방치가 아니라 손질의 시간이었고 그 결과 슬라이더와 커브는 이전보다 날카로운 각을 갖게 됐다.

우리는 흔히 공백기를 '멈춰 있던 시간'으로만 여긴다. 이력서에 설명하기 어려운 시기, 남들에게 성과를 보여줄 수 없던 시절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그 시간 동안에도 스스로에게 '왜'고 물어본 적이 있다면, 그 공백은 결코 텅 빈 시간이 아니었을 것이다.

겉으로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나날에도 누군가는 조용히 자신의 어느 부분을 자르고 갈고 쪼고 문지르는 중일 수 있다. 지금 당신이 지나고 있는 정체된 듯한 시간은 혹시 조용히 날을 세우고 있는 중은 아닐까.

[김기철 마니아타임즈 기자 / maniareport@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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