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흘 전 부고를 처음 접했을 때보다 오히려 마음이 더 먹먹해졌다. MBC 청룡을 응원하며 자랐던 어린 시절의 나에게 그 파란 유니폼의 감독은 그저 텔레비전 속 어른이 아니라 하나의 기준이었다.
심리학에는 '섬광 기억'이라는 개념이 있다. 큰 사건을 접한 순간의 장소와 분위기까지 뇌가 사진처럼 한 장으로 통째로 저장해버리는 현상이다.
1982년 그 여름, 타율 4할이라는 낯선 숫자를 처음 봤을 때의 기억을 여전히 꺼내 볼 수 있는 사람이라면, 어제 영결식 소식 앞에서 그 오래된 스냅사진이 다시 한번 선명해졌을 것이다.
고인의 이력을 훑어보면 '최초'와 '유일'이라는 단어가 유독 많이 붙는다. 1962년, 스무 살의 포수는 한국에서 성장한 선수로는 최초로 해외 프로구단과 정식 계약을 맺고 현해탄을 건넜다.
이듬해 도에이 플라이어즈 1군에 오른 뒤 다이헤이요, 롯데 오리온즈, 긴테쓰 버팔로스까지 19년, 일본 무대에서만 1969경기에 나서 1831안타, 209홈런, 212도루를 남겼다.
그리고 1982년, 마흔을 앞둔 나이로 고국에 돌아와 MBC 청룡의 감독 겸 선수로 나선 그해, 72경기에서 타율 0.412를 기록했다.

프로야구 원년, 아직 리그의 틀도 다 잡히지 않았던 어수선한 시즌에 나온 이 숫자는 44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깨지지 않고 있다.
메이저리그에서도 1941년 테드 윌리엄스(0.406) 이후 4할 타자가 없고, 일본프로야구 역시 전례가 없다. 은퇴 후에는 1990년 MBC 청룡을 인수해 재창단한 LG 트윈스의 초대 사령탑을 맡아 창단 첫 해 한국시리즈 우승이라는 선물을 팬들에게 안겼다.
그가 하늘나라로 간 날, 전국 5개 구장에서 열린 경기마다 시작 전 묵념이 이어졌고 10개 구단 모두가 그를 향해 고개를 숙였다.
KBO는 공식 SNS에 고인의 좌우명이었던 '노력자애(努力自愛)' 넉 자와 함께 애도를 표했다. 스스로 노력하는 일을 사랑해야 고통을 이겨내고 성공할 수 있다는 뜻이라 한다.
빈소에는 삼성 시절 그가 조련한 이승엽을 비롯해, 일본 시절 인연을 맺은 재일교포 레전드 장훈 등 숱한 선후배들의 조화가 줄을 이었다. 화려한 기록 뒤에는 순탄치 않은 말년도 있었다. 삼성 감독 시절 처음 겪은 뇌경색이 이후 여러 차례 재발했고, 녹록지 않았던 가정사까지 그라운드 밖에서는 누구보다 힘겨운 싸움을 이어간 시간이었다.

공전절후(空前絶後), '이전에도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것'이라는 이 말은 원래 위대한 업적을 형용할 때 쓰인다. 백인천의 0.412는 정확히 이 말에 들어맞는다.
리그가 성숙해질수록 투수의 구위와 수비 시스템도 정교해지는 법이라, 산술적으로도 4할이라는 벽은 앞으로 더 두꺼워질 가능성이 크다. 그가 남긴 숫자는 깨질 기록이 아니라, 이미 완결된 전설로 남을 확률이 높다.
동대문운동장은 이제 사라졌고, MBC 청룡이라는 이름도 유니폼도 역사 속으로 들어간 지 오래다. 하지만 어제 그 조화 행렬 앞에 모인 얼굴들이 증명하듯, 그 여름의 4할을 기억하는 뇌들은 여전히 살아 있다.
이 글을 읽는 당신의 뇌 어딘가에도 아마 그 시절의 스냅사진 한 장이 저장되어 있을 것이다. 노력자애, 그 네 글자처럼 살다 간 한 야구인의 명복을 빈다.
[김기철 마니아타임즈 기자 / maniareport@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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