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 농구의 거목으로 꼽히는 박한 전 감독의 지휘봉 시절은 종종 '해줘' 농구라는 애정 어린 밈으로 회자된다. 정교한 전술적 디테일이나 벤치의 세밀한 지시보다는 코트 위 선수들의 투지와 역량에 기대는 비중이 컸던 탓이다. 경기가 뜻대로 풀리지 않을 때 "공격과 수비가 안 돼"라는 단순명쾌하면서도 허탈함이 묻어나는 어록은, 결국 선수가 해줘야 경기가 풀린다는 프로 스포츠의 냉혹한 진실을 가장 원초적으로 보여주는 대목이었다.
야구장에서 잔뼈가 굵은 베테랑 사령탑들의 입에서도 이와 결을 같이하는 속 타는 심경이 고스란히 묻어난다. 한화 이글스를 이끄는 김경문 감독은 최근 타선의 침묵과 만루 찬스 무산이라는 거듭된 아쉬움 속에서 답답한 심정을 감추지 않았다. 팀이 확실하게 승기를 잡아야 할 결정적인 순간에 방망이가 터져주지 않는 상황을 두고 "선수들이 해줘야 연승으로 갈 수 있다"며 분발을 촉구한 발언은 벤치의 애타는 마음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이러한 한탄의 계보는 염경엽 감독의 입을 통해서도 깊은 울림을 남겼다. 타선 전체가 지독한 침체에 빠진 상황을 두고 염경엽 감독은 "타선이 터져야 하는데 1년 동안 이렇게 안 터지는 케이스는 내가 야구한 이래 처음"이라며 혀를 내둘렀다. 수십 년간 프로야구 판을 누비며 산전수전 다 겪은 베테랑 사령탑마저 두손두발 다 들게 만든 극심한 부진 앞에서, 남은 것은 비난이나 질책이 아니라 사령탑으로서 겪는 막막함과 씁쓸한 자조뿐이었다.
이처럼 박한의 직관적인 탄식부터 김경문과 염경엽이 쏟아낸 뼈아픈 토로까지, 이들의 목소리는 단순히 책임을 떠넘기는 핑계라기보다는 벼랑 끝에 선 사령탑들의 진짜 속내에 가깝다. 결국 화려한 전술과 데이터의 시대라 할지라도 그라운드 위 방망이를 돌리고 공을 던지는 것은 선수이며, 그 안에서 웃고 우는 감독들의 한숨은 성적을 향해 달리는 프로 스포츠의 가장 뜨겁고도 외로운 이면을 대변하고 있다.
[강해영 마니아타임즈 기자/hae2023@maniarepor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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