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북한 ‘조선체대’ 원래 명칭은 ‘조선체육대학’이다. 조선체대는 1946년 10월 1일, 해방 직후 김일성종합대학 체육학부를 기반으로 설립된 ‘평양체육대학’이 전신이다. 1953년 한국전쟁 이후, 북한은 체육을 군사력 강화와 사회주의 건설의 수단으로 규정하면서 체육 전문 인력 양성을 위한 독립 기관을 세웠다. 이때 개편된 학교가 바로 평양체육대학이다. 평양체대는 기존의 평양사범대학 체육학부와 신의주 교원대학 체육학과를 통합해 만들었다. 이학래 한양대 명예교수의 ‘한국체육백년사’에 따르면 내각결정 제30호는 평양체육대학을 1958년 9월1일개교토록 명시했고, 국가계획위원회에서 평양체육대학 개교에 필요한 체육관 기본건설계획을 작성하고, 그 공사를 교통성에서 맡아 하도록 했다. 평양체대는 1990년 조선체대로 이름을 바꾸었다.
북한은 ‘체육은 국방력’이라는 구호 아래, 체육을 군사훈련·애국주의 교육의 연장선으로 육성했다. 조선체대는 이에 따라 ‘체육전사’ 양성의 요람으로 자리잡았다. 특히 1960~70년대 김일성의 ‘주체체육노선’이 확립되면서, 조선체대는 단순한 스포츠 교육기관이 아니라 이념과 기술을 결합한 엘리트 체육의 중심대학으로 발전했다.
조선체대 출신 인물 중에는 북한 스포츠사를 장식한 선수들이 다수 있다. 1972년 뮌헨 올림픽 사격 금메달리스트 리호준, 탁구 세계선수권 우승자 박영순, 1966년 잉글랜드 월드컵 ‘이탈리아전 결승골’ 박두익, 세계여자마라톤 우승자 정성옥 등 공화국영웅 칭호를 받은 체육인들도 대부분 평양체대 출신이다. 이들은 모두 북한의 ‘체육 영웅담’을 상징하는 존재로, 학교 교과서나 영화에 반복적으로 등장한다. (본 코너 1554회 ‘마라톤 정성옥이 스포츠 선수로는 북한에서 유일하게 ‘공화국영웅’ 칭호를 받은 이유는‘, 1562회 ’1966년 잉글랜드 월드컵 8강 주역 북한의 박두익을 왜 ‘동양의 진주’라고 말할까‘ 참조)

남한의 ‘한국체대’ 원래 명칭은 ‘한국체육대학교’이다. 한국체대는 조선체대부터 훨씬 역사가 짧다. 1976년 12월30일 한국체육대학 설치령이 공포 시행됨으로써 1977년 3월7일 국내 최초의 국립 체육대학으로 설립됐다. 설립 동기는 1976년 몬트리올 올림픽 레슬링에서 건국 이후 첫 금메달을 획득한 양정모를 접견한 박정희 대통령이 4년 후인 1980년에 개최될 모스크바 올림픽에 대한 대비를 언급하는 가운데 체육 전문학교 설립을 지시해 구체화하기에 이르렀다. 이에따라 문교부는 1976년 12월14일 체육대학 설립계획을 마련하고, 이 과정에서 2년제 전문대학이 이난 4년제 정규 대학으로 설치하는 실행안을 작성 추진해 대통령 지시가 있은 지 불과 4개월만에 국립 체육대학을 탄생시켰다.
박정희 대통령에 의해 급조된 한국체대는 태릉선수촌과 함께 한국스포츠에서 가장 성공적인 작품이었다. 한국체대가 없는 한국스포츠는 생각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한국체대의 역사는 1980년대 이후 한국올림픽 역사와 맥을 같이 했다. 1984년 LA올림픽 이후 한국이 스포츠 강대국으로 자리 잡을 수 있었던 것은 한국체대가 뒷받침됐기에 가능했다고 해도 결코 과언이 아니다. 한국체대는 1981년 첫 졸업생을 배출한 이후 많은 국가대표 선수를 양성, 한국 스포츠의 중심적인 역할을 했다.
[김학수 마니아타임즈 기자 / kimbundang@maniareport.com]
<저작권자 © 마니아타임즈,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