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케이트보드에서 ‘rip’이라는 단어는 꽤 자주 쓰이는 은어이다. 이 단어는 원래 문맥에 따라 뉘앙스가 조금 달라진다. 영어 대문자 ‘RIP’는 ‘Rest In Peace’의 약자이다. ‘편히 잠드소서’,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라는 뜻이다. 이 표현은 주로 사람이 죽었을 때, 사용되며, 고인이 편안히 잠들기를 기원하는 의미를 담고 있다. ‘RIP’ 유래는 라틴어 ‘Requiescat in pace’에서 시작됐다. 초기 기독교 장례 문화와 깊은 관련이 있다. 중세 유럽의 무덤이나 기념비 등에 이 말이 새겨졌다.
동사로 쓰일 때, ‘rip’의 사전적 의미는 ‘찢다, 갈라놓다’이다. 물리적으로 무언가를 강하게 잡아 당겨서 한 조각, 또는 여러 조각으로 나누는 행위를 의미한다. 날카롭고 파괴적인 뉘앙스를 가진 이 단어는 스케이트보드, 서핑에선 전혀 다른 의미를 갖는다. 매우 잘하는 것을 의미하는 은어로 사용한다. “He rips”라 말하면, 누군가가 거칠고 빠르며 동시에 멋지게 보드를 탄다는 뜻이다. 보드 위에서 트릭을 성공시킬 때, 혹은 공원 한 구석을 강렬하게 질주할 때, 주변의 동료들이 “You rip!”이라고 애기하면, 그것은 단순한 칭찬이 아니다. 보드와 하나가 되어 길거리의 질감을 찢고 지나갔음을 인정하는 언어인 것이다.
불운하게 세상을 떠난 스케이터를 기릴 때, 커뮤니티에 ‘RIP’ 단어를 공유하기도 한다. ‘멋지게 달리다(rip)’와 ‘평화롭게 잠들다(RIP)’라는 두 가지 의미가 담겨 있다. 이는 보드를 사랑한 이의 삶과 죽음을 함께 담아내는 표현이다. 결국 스케이터에게 ‘rip’은 끝까지 뜨겁게 달리라는, 동시에 언젠가 맞이할 고요에 대한 약속이기도 하다. 스케이트보드는 ‘rip’이라는 한 단어가 보여주듯, 속도와 자유, 생과 죽음이 항상 공존한다.
[김학수 마니아타임즈 기자 / kimbundang@maniarepor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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