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8년 런던 올림픽 필드하키 결승전 잉글랜드-아일랜드전. [국제하키연맹 홈페이지]](https://cgeimage.commutil.kr/phpwas/restmb_allidxmake.php?pp=002&idx=3&simg=20250626063627063315e8e9410871751248331.jpg&nmt=19)
필드하키는 1886년 영국하키협회가 정식 발족하면서 본격적으로 스포츠 종목으로서의 토대를 갖추었다. 1908년 런던 올림픽에서 처음 올림픽 종목으로 채택됐다. 1912년 스톡홀름 올림픽에서 빠진 뒤 1차 세계대전으로 올림픽이 개최되지 못하다가 1920년 안트베르펜(벨기에) 올림픽에 다시 들어갔다.1924년 파리 올림픽에선 다시 정식 종목에서 제외됐다. 파리 올림픽에서 필드하키가 탈락한 것은 종주국인 영국이 주도하는 국제하키 조직이 국제올림픽위원회(IOC) 기준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영국을 뺀 프랑스와 유럽 각국들은 필드하키의 올림픽 복귀를 위해 새로운 국제기구 창립을 추진했다.
당시 필드하키는 영국을 중심으로 운영됐으며, 이는 비영연방 국가들에게 소외감을 안겨줬다. 영국을 뺀 프랑스와 유럽 각국(벨기에, 스페인, 오스트리아, 헝가리 등)들은 필드하키의 올림픽 복귀를 위해 새로운 국제기구 창립을 추진했다.
국제하키연맹(FIH)은 1924년 1월 7일, 프랑스 파리에서 설립됐다. 당시 초대 회원국으로는 벨기에, 스위스, 스페인, 오스트리아, 체코슬로바키아, 프랑스, 헝가리의 7개국 필드하키 협회가 가입했다. 창립 당시, 프랑스 파리는 국제 스포츠 외교의 중심지였다. 근대 올림픽을 부활시킨 피에르 드 쿠베르탱이 프랑스인이었고, 그의 영향으로 프랑스는 많은 국제 스포츠 기구의 발상지 역할을 했다. IOC 역시 스위스 로잔에 본부를 두기 전까지 프랑스 파리에 본부를 뒀다. FIH 창립을 주도한 인물은 폴 르오텐(Paul Léautey)라는 프랑스인이다. 그는 FIH 초대 회장이자 프랑스 하키 발전의 선구자로, 국제적 연맹 창설을 적극적으로 밀어붙였다.
국제하키연맹은 초창기 프랑스가 스포츠 외교 중심 역할을 하고 영국 중심의 하키 구조에 대한 유럽 각국의 견제 등으로 연맹체 명칭을 프랑스어로 사용했다. 1927년 남아공, 덴마크, 미국, 스코틀랜드, 아일랜드, 웨일스, 잉글랜드, 호주가 참여해 국제 여자하키연맹(International Federation of Women's Hockey Associations, IFWHA)을 창설하였으나 1982년 FIH로 통합됐다. 2005년 국제하키연맹 본부를 벨기에 브뤼셀에서 스위스 로잔으로 옮겼다.
필드하키는 1976년 몬트리올 올림픽부터는 천연잔디에서 인조잔디로 경기를 시작했고, 1980년 모스크바 올림픽에서 여자 하키가 처음으로 올림픽 종목으로 채택됐다. (본 코너 1459회 ‘필드하키는 왜 '인조잔디'에서만 경기를 할까’ 참조)
[김학수 마니아타임즈 기자 / kimbundang@maniarepor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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