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여자축구의 ‘살아있는 역사’ 전가을이 지난 시즌을 끝으로 오랜 선수 생활을 마무리했다. 5일 여자 A매치 현장에서 예정된 은퇴식에 앞서 전가을은 사람들이 자신을 기억해주는 것만으로도 큰 축복이라며 고마움을 전했다.
전가을의 발자취는 2008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수원시설관리공단(현 수원FC)에 입단한 그는 이후 국내 무대에선 인천현대제철, 화천KSPO를 거쳐 지난해 11월 세종스포츠토토에서 선수 생활에 마침표를 찍었다. 그 과정에서 2010년 수원시설관리공단의 첫 WK리그 우승을 이끈 활약으로 챔피언결정전 MVP를 수상했으며, 인천현대제철에서 3차례(2013, 2014, 2015) WK리그 우승을 거머쥐었다.
또 전가을은 2016년 웨스턴 뉴욕 플래시로 임대 이적해 한국 여자선수 최초로 미국 리그에 입성한 걸 시작으로 멜버른 빅토리(호주), 브리스톨 시티, 레딩(이상 영국)에서 활약하며 해외 무대를 경험했다.
여자 국가대표팀에서도 전가을을 빼놓고 얘기할 수 없다. 2007년 베트남과의 2008 베이징 올림픽 예선에서 대표팀에 데뷔한 전가을은 A매치 101경기에 출전해 38골을 기록했고, 지소연(70골)에 이어 여자 A매치 역대 최다 득점 2위에 올라있다. 특히 2015 FIFA 캐나다 여자월드컵 코스타리카와의 조별리그 2차전에서 득점을 터뜨리는 등 대표팀의 16강 진출에 기여했다.
그는 은퇴 후 현재 서울 성동구에서 축구교실을 차려 후배 양성에도 노력을 기울이는 중이다. 이렇듯 선수 시절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한국 여자축구 발전에 크게 이바지한 전가을의 은퇴식을 맞이해 대한축구협회(KFA) 홈페이지가 전가을을 만나 지금까지의 선수 생활을 돌아봤다.
[전가을과의 일문일답]
- 은퇴 소감은 어떤가.
은퇴를 한지 5개월 정도가 지났는데 이제야 생각 정리가 되는 듯하다. 윤덕여 감독님(세종스포츠토토)과 구단에 은퇴 의사를 전하는 과정에서 마음이 정말 힘들었다. 마침 팀이 작년 전국체전에서 우승했는데 특별히 한 건 없어도 내가 팀에 전할 수 있는 마지막 우승과 함께 떠나면 되겠다고 결심이 섰다. 다만 결심을 굳게 했어도 은퇴 직후엔 굉장히 싱숭생숭했다. 그동안 축구 덕분에 박수 받고, 명예를 얻고, 날 찾아주는 곳이 있었던 건데 앞으로 필드 위에서 박수 받을 일이 없다고 생각하니 슬펐다. 가족의 조언이 큰 힘이 됐고 시간이 지나면서 이제는 마음을 잘 추스른 상태다.
- 긴 시간동안 쉼 없이 달렸기 때문에 은퇴 결심이 어려웠을 것 같다.
사실 세종스포츠토토에 있을 때 심적으로 힘들었던 것도 사실이다. 이전까지 우승권 팀에 머무를 땐 잘 몰랐지만 경기에서 자주 패배하는 게 받아들이기 어렵기도 하더라. 특히 재작년부터는 내가 팀에서 최고참이었기 때문에 부담감도 있었고 의지할 곳도 부족했다. 당시엔 내가 잘 이겨내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지나고 보니 언젠가부터 많이 지쳐 있었다.
또 후배들에게 자리를 내줘야 한다고도 생각했다. 물론 팀에 남아 구심점 역할을 해달라는 부탁도 있었다. 하지만 내가 현역으로 남아야 한다면 선수로서 무조건 경기에 뛰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오히려 후배들의 자리를 뺏는 게 아닌가 싶었다. 부담스러운 자리일지라도 이제는 후배들이 그 자리를 받아들여야 할 시기라고 본다.
- 오랜 기간 선수로 활약할 수 있었던 원동력이라면.
축구를 하면서 국가대표에 발탁되고, 월드컵에서 골을 넣는 등 꿈꿔왔던 순간들이 하나하나씩 이뤄지니 더욱 축구가 하고 싶었다. 오로지 나 스스로를 위해 했던 것 같고, 모두에게 당당하게 말할 수 있을 정도로 열심히 노력했다. 자연스레 많은 사람들이 나를 알아봐주고 기억해주는 게 큰 힘이 됐다. 누군가의 기억 속에 남겨진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엄청난 축복이라고 생각한다.
- 여자선수 가운데 역대 A매치 득점 2위다. 이 기록이 주는 의미는.
내가 대표팀에 안 간지 꽤 됐는데도 잘 안 깨지고 있다. 나 스스로 선수 시절 열심히 했다고 알게 해주는 기록임과 동시에 후배들이 더 노력해서 그만한 자격을 갖춘다면 빨리 깨주길 바라는 기록이다. 38골 중 2015 FIFA 캐나다 월드컵 코스타리카와의 조별리그 2차전에서 넣었던 골과 2015 동아시안컵 한일전 프리킥 골이 기억에 남는다. 나를 대표할 수 있는 골이 있다는 게 자랑스럽다.
- 선수로서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과 아쉬운 순간이 있다면.
특별히 한 순간을 꼽기는 어렵지만 지난해 전국체전 준결승이 떠오른다. 당시 (강)가애의 골킥을 내가 가슴으로 받은 후 곧바로 동료에게 패스를 찔러 득점을 도왔다. 이게 말로만 들었을 땐 쉬워 보일 수 있지만 먼 거리에서 온 골킥을 받은 직후 공격수에게 패스를 준다는 게 어려운 동작이다. 그동안 경험이 쌓였다는 걸 스스로 느껴 뿌듯했던 순간이었다.
반대로 아쉬움이 남는 순간은 없다. 원하는 결과를 못 냈을 땐 내가 능력이 안 됐던 거고, 매 순간 후회 없이 최선을 다 했기 때문에 미련은 없다.
- 다양한 무대에서 해외 생활을 했던 게 후배들에게 본보기가 될 텐데.
미국에 처음 갔을 때가 8년 전인데도 당시 관중이 3만 명이었다. 심지어 경기 도중에도 팬들이 경기장에 난입할 정도로 인기가 많았고, 경기 다음날에는 항상 선수들이 유소년 클리닉에 참석했다. 그런 선진 문화를 8년 전에 미리 접한 게 정말 큰 도움이 됐다. 미국 생활 후 인천현대제철로 복귀했다가 다시 해외로 나간 것도 해외 무대에 대한 갈증이 있었기 때문이다. 후배들도 겁먹지 말고 해외로 도전을 많이 해보면 좋겠다.
- 대표팀부터 세종스포츠토토에 이르기까지 윤덕여 감독과 인연이 깊다. 윤 감독에 대한 고마움도 있을 것 같은데.
영국 생활을 끝낸 후 세종스포츠토토로 온 것도 윤 감독님만 보고 내린 선택이었다. 세종스포츠토토에서 선수 생활을 마무리할 때 윤덕여 감독님께 마지막을 함께 할 수 있어서 영광이었다는 말을 전했다. 사실 처음엔 윤 감독님이 내게 1년만 더 하자고 설득하셨는데 나중엔 본인이 감독으로 있을 때 내가 은퇴하는 것도 괜찮겠다는 얘기를 하시더라. 이밖에도 여러 지도자들을 만났는데 각자의 스타일로부터 나도 많은 걸 배웠다.
- 슬럼프를 극복할 수 있었던 본인만의 비결은.
그냥 축구에 미쳤던 것 같다. 동료들도 내게 그런 말을 할 정도였다. 카페 갈 시간에 운동을 더 하고자 했고, 선수 시절 통틀어서 바람 쐬러 나간 적이 손에 꼽는다. 옛날부터 누군가 취미를 물으면 딱히 없어서 대답을 못했다. 그만큼 운동으로 스트레스를 풀었던 편이다. 지금은 커피를 정말 좋아한다(웃음).
- 남아있는 후배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작년 2023 FIFA 호주/뉴질랜드 여자월드컵에서 내가 해설위원으로 활동했는데 많은 생각이 들더라. 물론 상대팀들의 수준도 많이 올라온 것도 맞고, 선수들도 최선을 다해줬다. 그래도 정말 어렵게 월드컵이라는 기회를 잡은 만큼 그 기회를 앞으로는 더 살렸으면 좋겠다. 또 앞서 얘기했다시피 해외 무대로 도전을 더 해보면 좋겠다. 물론 해외에 나가서 주전 자리 등의 걱정이 들 수 있다. 하지만 실패라는 건 없다. 해외로 나간다는 거 자체가 인정을 받은 거고 스스로 한 단계 성장하는 것이기 때문에 더 큰 무대를 많이들 겪길 바란다.
- 앞으로의 목표는.
내 명의로 축구교실을 열어 운영 중인데 회원 수를 늘리거나 돈을 버는 목적이 아니다. 내가 선수 시절 갖고 싶었고 필요로 했지만 없었던 것들을 그대로 실현시켜 후배들과 나누고자 만들었다. 이를 통해 내가 한 달이 걸려 터득했던 걸 후배들에겐 1시간 만에 가르칠 수 있도록 도울 거다. 이런 생각이 없었다면 카페를 차려도 됐을 거다. 하지만 앞으로도 여러 방면에서 여자축구 발전에 이바지하고 싶다.
[이종균 마니아타임즈 기자 / ljk@maniarepor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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