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키가 달리기를 통해 느끼는 이런 순간을 스포츠용어로 ‘러너스 하이(Runner’s High)라고 말한다. 말 그대로 달리는 사람이 마치 하늘을 날 듯 몸이 가벼워지고 기분이 좋아지는 것을 뜻한다. 달리는 사람이라는 뜻인 ‘Runner’에 소유격 표현인 ‘s’와 높다는 뜻의 부사형인 ‘High’로 구성된 ‘러너스 하이’라는 말을 처음 듣는 이들은 높이뛰기하는 사람이라고 잘못 오역할 수도 있다. 매리엄 웹스터 용어사전에 따르면 러너스 하이는 1975년 처음 등장했다. 당시는 미국에서 레크리에이션 활동으로 달리기 붐이 한창 일어나던 때였다. 미국의 심리학자인 캘리포니아대 A.J.맨델교수가 1979년 발표한 정신과학논문 ‘세컨드 윈드(Second Wind)’에서 처음 사용한 용어라는 설도 있다. 운동효과가 신체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가에 대한 의학적인 연구가 본격화하면서 러너스 하이라는 말이 현대 사전에 오르게 됐으며 대중들이 즐겨 쓰는 말로 자리 잡았다.
우리나라 언론에선 2000년대 이후 러너스 하이라는 말을 쓰기 시작했다. 동아일보는 2001년 10월31일자 ‘세브란스 마라톤 동우회...모든 고민 순간에 싸악, 스트레스 해소에 그만’이라는 기사에서 ‘러너스 하이는 실타래처럼 얽혀있는 고민다발을 스르르 풀어주는 일종의 약’이라고 전했다.
러너스 하이는 장시간 달린 후 고통이 정점을 찍을 때 갑자기 찾아오는 짜릿한 쾌감이나 도취감이라고 할 수 있다. 이걸 한번 느끼면 달리기의 매력에서 헤어 나올 수 없다. 러너스하이를 이야기할 때 주로 달리기를 예로 들지만 수영, 사이클, 야구, 럭비, 축구, 스키 등 장시간 지속되는 운동이라면 어떤 운동이든 러너스하이를 느낄 수 있다고 한다. 특히 마라톤 선수들이 훈련을 할 때 극한의 고통을 넘어 35km 지점쯤 되면 러너스하이를 경험할 수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러너스하이에 영향을 준다고 알려진 물질 가운데 가장 유력하게 언급되는 것은 엔돌핀(endorphin)이다. 엔돌핀은 뇌하수체 전엽에서 분비되는 호르몬으로 통증을 억제하는 효과가 있다고 한다. 엔돌핀은 산소를 이용하는 유산소(aerobic) 상황에서는 별 증가를 보이지 않다가 운동 강도가 높아져 산소가 줄어드는 무산소(anaerobic) 상태가 되면 급증한다는 것이다. 또한 인체가 고통을 겪거나, 심리적으로 충격을 받아 기분이 나쁠 때 분비된다고도 알려져 있다.
러너스하이를 느끼기 위해 처음부터 무리하게 달리는 것은 몸에도 무리가 가고 건강에도 좋지 않으니 피해야 한다. 점차 달리는 거리와 시간을 늘려가는 것이 중요하다. 심장 박동수는 1분에 120회 이상으로 보통 30분 정도 달리다 보면 러너스하이를 느낄 수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한번 러너스하이를 경험한 사람은 여기에 마약과 같이 중독될 위험이 있다. 러너스하이 상태를 느끼고 싶어 자칫 운동 중독에 빠질 수도 있다. 하루라도 달리지 않으면 불안해하거나 짜증을 내게 되고 무리하게 달리다가 인대가 손상되거나 근육이 파열되는 경우도 있다.
지나치게 긴장하고 스트레스를 받고 있을 때 러너스하이는 오지 않는다. 몸 컨디션이 좋아야 하고 마음이 편안해야 그 느낌이 온다. 마라톤 선수들도 올림픽이나 대회 등 다른 선수들과 치열한 경쟁을 벌여야 할 때는 러너스하이를 결코 느끼지 못한다고 한다.
[김학수 마니아타임즈 편집국장 kimbundang@maniareport.com]
<저작권자 © 마니아타임즈,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