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AP는 최근 최현미가 북한을 탈출한 뒤 대한민국에서 복서로 세계 정상에 오르기까지의 과정을 상세하게 보도했다.
AP는 특히 최현미가 언론 매체들이 자기를 소개할 때 더 이상 ‘탈북자’라는 말을 쓰지 말아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국내 언론 매체들은 물론이고, 해외 언론 매체들도 최현미 관련 기사를 쓸 때 여전히 ‘탈북자 복서’ 또는 ‘탈북 여자 복서’라는 수식어를 붙이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최현미는 AP와의 인터뷰에서 “나는 고생을 하고 눈물을 흘리며 이 자리에 왔다. 그런데 어떻게 ‘탈북자’라는 단어가 내 챔피언 타이틀 앞에 올 수 있는가?”라며 “나는 대한민국의 자랑스러운 세계 복싱 챔피언이고, 이를 세계에 알리고 싶은데 (탈북자라는 꼬리표)가 이것을 가리기 때문에 마음이 너무 아프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북한에서 기본적인 강인한 멘탈이 있었을지는 모르지만, 지금의 내가 있게 해준 것은 대한민국”이라고 강조했다.
AP는 최현미가 11살 때 북한의 수도 평양에서 복싱을 시작했다고 소개했다. 학교 코치가 최현미의 재능을 알아보고 그의 부모에게 최현미가 김정은의 아버지 “김정일 장군을 기쁘게 할 수 있는” 권투 선수가 될 수 있다고 말한 뒤 그를 올림픽을 준비하는 엘리트 청소년 복싱 프로그램에 합류시켰다는 것이다.
그러나 2003년 말 국영 무역회사에 다니던 아버지가 아이들의 다른 삶을 위해 가족을 데리고 북한을 탈출, 베트남을 통해 한국으로 이주했다고 최현민의 탈북 과정을 전했다.
AP에 따르면, 최현미 가족 역시 북한에서의 경력을 한국에서 인정받지 못하는 다른 많은 탈북자들과 마찬가지로 빈곤과 차별에 직면했다.
최현미가 한국에서 다시 복싱을 하게 된 것은 학교에서 동급생으로부터 모욕을 당했기 때문이다.
최현미는 “(당시) 그녀는 나를 욕하면서 ‘북한에 그냥 있지 왜 여기에 와서 나랑 부딪치냐’라고 말했다. 그것이 나에게 깊은 상처를 주었다. (마음이) 너무 아파 화도 내지 못했다”고 말했다.
다시는 모욕당하지 않기 위해 복싱을 다시 하게 됐다는 것이다.
AP는 그것이 현명한 선택이었다고 했다.
AP는 복싱을 다시 시작한 최현미는 2006년 한국 대표팀의 일원이 된 후 프로가 되었고, 2008년 세계복싱협회(WBA) 페더급 챔피언이 됐으며, 그 후 7차례 타이틀을 방어했고 2014년에는 체급을 올려 WBA 슈퍼 페더급 타이틀마저 확득, 8차례나 타이틀을 방어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한국에서 복싱 인기가 하락하자 최현미는 스폰서 부족으로 타이틀 포기까지 고려하게 됐다고 전했다.
이를 답답하게 여긴 최현미의 아버지가 정치인, 관료, 청와대에 서한을 보내 도움을 청하기도 했다고 AP는 전했다.
AP는 또 최현미가 미국, 일본, 독일의 복싱 관계자들이 자국으로의 귀화를 위해 최현미에게 접근했다면서 “그러나 최현미는 두 가지 이유를 들며 그 제안을 거절했다고 말했다”고 했다.
하나는 한국에서의 정착이 힘들었는데, 또 다른 국가에서 정착한다는 게 엄두가 나지 않았기 때문이었고, 다른 하나는 대한민국을 대표하며 가졌던 엄청난 자부심 때문이었다고 AP는 설명했다. 최현미는 “국가대표로서 태극 마크를 가슴에 달았을 때의 기분과 자부심을 능가하는 것은 없다”고 말했다.
AP는 최현미가 현재 미국 복싱 에이전트의 도움으로 주로 미국에서 훈련을 하고 있다고 전했다. 그가 미국에서 자신이 “더 위대한 복싱 선수”가 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AP는 최현미가 통합 타이틀을 목표로 하고 있으며, 최종적으로 테일러에게 도전하는 것이라고 전했다.
이에 대해 최현미는 “승패와 관계없이 세계 최고라고 생각하는 복서와 후회 없이 싸우고 싶다”고 말했다.
[장성훈 선임기자/seanmania2020@maniarepor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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