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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박사 기자의 스포츠용어 산책 316] 왜 풀백(Full Back)이라 말할까

2021-03-10 07:48

축구 강국 브라질은 전통적으로 측면 공격을 좌우 풀백이 도맡아 해 막강한 공격력을 보여준다. 사진은 지난 해 11월 2022 카타르 월드컵 남미예선에서 베네수엘라를 꺾고 기뻐하는 브라질 선수들 모습.[[AP=연합뉴스]
축구 강국 브라질은 전통적으로 측면 공격을 좌우 풀백이 도맡아 해 막강한 공격력을 보여준다. 사진은 지난 해 11월 2022 카타르 월드컵 남미예선에서 베네수엘라를 꺾고 기뻐하는 브라질 선수들 모습.[[AP=연합뉴스]
풀백(Full Back)은 말 그대로 하면 수비만을 전담하는 포지션을 뜻한다. 원래 수비지역에 넓게 퍼져 임무를 수행해 센터백(Center Back)에 포함됐다. 특히 대부분 수비만을 커버하기 때문에 풀백이라고 불렀다. 미들필드까지 올라가 공격을 도와주는 수비수는 수비에서 절반만을 담담한다고 해서 하프백(Half Back)이라고 명명했다.

풀백은 19세기 럭비에 기원을 두고 있다. 1863년 축구가 럭비에서 분리되기 이전에 풀백은 아일랜드식 명칭으로 쿼터백(Quarter Back), 하프백 등과 함께 포지션 용어로 사용됐다. 축구에서 풀백이라는 개념은 1930년대 WM 포메이션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상대 진영을 바라보며 ‘M’자 형태를 이루는 수비수 5명 중 앞쪽의 2명은 하프라인에 가깝게 전진해 있다고 해서 하프백으로, 뒤쪽 3명은 풀백이라고 각각 불렀다.

WM포메이션은 1925년 오프사이드 규정이 바뀌면서 만들어졌다. 잉글랜드 프로축구 아스널의 허버트 채프먼(1878-1934) 감독이 공격 5명, 수비 5명을 배치하는 WM 포메이션을 채택했다. 이 포메이션은 공격과 수비의 분담을 통해 전력의 균형을 이루고자 한 것이다. 이후 WM 포메이션은 세계적으로 많이 활용한 시스템이 됐다.

풀백은 기본적으로 수비 기술이 좋아야 한다. 상대편 공격수에 맞서 몸싸움이 능하고 패스 기술이 정확해야 한다. 빠르고 정확한 상황판단과 적극성을 갖춰야 한다. 풀백이 좋으면 팀 전력은 상당히 안정감을 갖출 수 있다. 튼실한 수비력을 발판으로 위력적인 공격력을 펼칠 수 있기 때문이다.

역대 월드컵 우승팀들은 대부분 최고의 풀백을 보유했다. 1994년 미국 월드컵의 브라질은 조르징요와 프랑코, 1998년 프랑스 월드컵의 프랑스는 릴리앙 뒤랑과 비셴테 리사라수, 2002년 한·일 월드컵의 브라질은 카푸와 호베르투 라모스 등이 활약했다. 2006년 독일월드컵의 이탈리아는 잔루카 잠브로타와 파비오 그로소, 2010년 남아공 월드컵의 스페인은 세르히오 라모스와 후안 카프데빌라, 2014년 브라질 월드컵의 독일은 필립 람, 2018년 러시아 월드컵의 프랑스는 라파엘 바란 등이 풀백으로 이름을 떨쳤다.

현대 축구에서는 양 사이드에 위치한 포지션을 풀백이라고 지칭한다. 주요 임무는 상대 공격수의 측면 공격을 효과적으로 막고 상대 윙 플레이어들의 크로스를 차단한다. 상대에게 측면 공격을 내주면 역할에 실패한 것으로 보고 많은 비난을 받는다. 풀백은 수비수인 동시에 터치라인을 따라 오버래핑(Overlapping)을 시도해 상대 진영측면으로 전진해 크로스를 통해 공격수들에게 헤딩 연결을 시도하기도 한다. 고전적인 풀백 개념과는 많이 달라진 부분이다 . 축구 기술의 발전으롱 인해 측면 수비수인 풀백이 그 이름과 달리 공격 가담까지 하게 된 것이다.

풀백은 필드에서 체력적으로 가장 힘든 포지션으로 분류되고 있다. 공수에서 활동량이 많기 때문이다. 유소년 축구에서 풀백을 기피하는 것은 역할에 비해 주목을 받지 못하는게 이유이다. 따라서 풀백은 뛰어난 선수가 적다. 특히 왼발을 사용할 수 있는 왼쪽 풀백은 희소가치가 높다.

유럽 클럽에서 풀백 자원이 많지 않기 때문에 몸값은 상대적으로 높은 편이다. 2010년이후 풀백의 위상이 높아졌다 .2017-18 프리미어리그에서 첼시가 효과적인 풀백 전략을 활용해 우승을 차지하면서 풀백의 중요성을 깨닫게 된 것이다. 이후 각 구단들은 풀백 영입을 위해 투자를 아끼지 않고 있는 분위기이다.

한국에서 풀백 기근은 오래된 숙제였다. 어릴 적부터 풀백을 전문으로 성장하는 선수가 드물어 뛰어난 선수가 많이 나오지 않았다. 2002년 한·일월드컵 4강 신화의 주역인 이영표송종국차범근 감독의 아들인 차두리 정도를 꼽을 수 있다.

[김학수 마니아타임즈 편집국장 kimbundang@maniarepor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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