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연습량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더니...’ 뱅크샷 잘 치는 남편한데 열심히 배우고 많이 쳤더니 잘 들어갔다. 8:6으로 뒤집었다.
다음 샷은 까다롭긴 하지만 어렵지 않은 옆돌리기. 조금 생각하다가 큐대를 가볍게 밀었다. 생각외로 짧았다.
9점째가 빗나갔다. 아차, 싶었다. 넣었으면 거의 끝나는 것이었다. 다음 포지션을 생각하며 쳤기에 10점을 넣고 세트도 잡을 수 있었다. 그러면 세트스코어 2-1이고 우승인데.... 오만가지 생각이 다 났다.
다음 이닝 회심의 뱅크샷도 빗나갔다. 타임아웃을 쓰고 정확하게 쳤어야 했는데 그걸 미처 몰랐다.
불길한 예감. 이미래가 바로 3연타를 쏘며 9:6으로 경기를 뒤집었다. 그리고 6이닝에서 남은 2점을 채우고 3세트를 가져갔다. 통한의 한방이었다. 딱 한방이 모자라 경기의 주도권을 잡고도 결국 우승을 넘기고 말았다.
어떻게 해서 올라 온 결승인데...
오수정은 사이클선수를 지냈다. 국가대표 상비군까지 갔으나 부상으로 그만 둘 수밖에 없었다. 스물한살 때였다. 한가해진 오수정은 2008년쯤 어쩌다 친구들과 당구장에 들렀다. 당구가 꽤 재미있었다. 하지만 당구장 사장님과의 연애가 훨씬 더 재미있었다. 지금의 남편이다.
그러나 이내 큐대를 내려놓았다. 좋아하는 신랑과의 결혼생활을 알뜰살뜰 하고 싶었다. 선수를 본격적으로 할 것도 아닌 터여서 미련 없었다. 2011년이었다. 하지만 5년쯤 지나자 당구가 그리워졌다.
2016년 다시 큐를 잡았다. 한참을 안해서 그런지 당구가 더욱 재미있었다. 이왕 하는 것 우승 한번 해보자며 열심히 빠져들었다. 2018년 대한당구연맹 전국선수권대회 여자 3쿠션에서 우승했다. 생애 첫 전국대회 정상이었다.
PBA가 출범했다. 프로선수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등록했다. 마흔에 다가서는 나이나 짧은 경력 등이 마음에 걸렸지만 도전한다는 사실이 즐거웠고 새로운 목표에 가슴이 설레였다.
연습에 빠져들었다. 프로무대는 아마추어와 또 다름을 알았다. 한 가지 동작을 천여번 하기도 했다. 어릴 때부터 운동을 해봐서 안다. 운동에는 지름길이나 요령이 없다는 사실. 그저 바보처럼 훈련을 하다보면 어느 날 자신도 모르게 실력이 늘어있다는 것을.
지난 달 NH농협카드 LPBA챔피언십에서 처음 8강에 올랐다. PQ라운드부터 시작했다. 66점으로 통과 한 후 64강, 32강 서바이벌전을 거쳤다. 세 번 모두 60점대를 벗어나지 못했지만 16강전에서 박마리를 2-1로 꺾었다.
백민주에게 0-2로 완패했지만 8강이었다. 같은 8강인데도 아무도 눈여겨 보지 않았다. 당시 8강은 김가영, 김갑선, 이미래, 김보미, 임정숙, 김민아, 백민주였다. 그래도 뿌듯했다.
그때의 8강 덕분에 20여일 후의 크라운해태전은 PQ라운드 없이 바로 시작했으나 첫 판 탈락이었다. 연습량이 부족한 탓이었다. 다시 칼을 갈았다.
64강, 32강 서바이벌을 문제없이 통과했다. 16강전 김경자, 8강전 전애린, 4강전 김정미를 모두 2-0으로 끝냈다.
운도 있었다. 하지만 운도 실력이 있어야 따라온다. 이미래를 가장 심하게 괴롭힌 오수정의 준우승은 지독한 연습의 결과물이다. 그래서 오수정은 결승 게임 내내 당당했다.
PBA 첫 결승이고 나이는 어리지만 3관왕의 이미래임에도 주눅 들지 않았다. 세월이 가져다 준 경륜도 무시할 수 없는 자산이었다.
준우승 오수정. 강자 대열에 합류한 그는 LPBA월드챔피십 출전권을 획득했다. 오는 24일 시작하고 16강만이 출전한다. 많은 날이 남지않았지만 다시 선풍을 일으키자면 바로 훈련에 들어가야 한다.
오수정은 빠르게 진화하고 있다.
[이신재 마니아타임즈 기자/20manc@maniarepor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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