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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박사 기자의 스포츠용어 산책 251] 영국에선 왜 축구장을 ‘피치(Pitch)’라고 말할까

2021-01-04 05:57

토트넘 훗스퍼 스타디움에서 통산 100호골을 작성한 손흥민. 영국인들은 경기장을 뜻하는 말로 스타디움과 함께 피치라는 표현을 즐겨 사용한다.
토트넘 훗스퍼 스타디움에서 통산 100호골을 작성한 손흥민. 영국인들은 경기장을 뜻하는 말로 스타디움과 함께 피치라는 표현을 즐겨 사용한다.
손흥민이 2일(한국시간) 영국 런던의 토트넘 홋스퍼 스타디움에서 열린 리즈 유나이티드와의 2020-2021시즌 잉글랜드 프로축구 프리미어리그에 선발 출전해 전반 43분 해리 케인의 도움을 받아 2-0을 만드는 골을 넣었다. 2015년 8월에 토트넘에 입단한 손흥민이 토트넘 유니폼을 입고 터뜨린 100번째 골이었다.

영국에선 축구 경기장인 스타디움을 ‘피치(Pitch)’라고 부른다. 옥스포드 사전에 따르면 영국에서 피치는 ‘필드(Field)’와 같은 의미로 통한다. 물론 필드 또는 ‘그라운드(Ground)’라고도 하지만 축구 본고장답게 피치라는 특별한 단어를 축구경기장이라는 말로 쓴다. 원래 피치는 크리켓과 럭비를 하는 데 사용되는 필드를 설명하는 데에도 사용된다. 영국인들은 필드라는 단어를 농사를 짓기 위해 사용되는 넓은 지역을 묘사하는 것으로 간주한다. 피치는 스포츠 전용 구역을 뜻하는 좀 더 구체적인 용어로 쓴다.

피치의 어원을 살펴보면 중세 영어부터 던지다라는 의미를 갖는다. 운동 경기에서 볼을 던지는 것을 피치라고 한 것은 이런 의미에서 나왔다. 야구에서 공을 던지는 이를 사람을 뜻하는 접미사 ‘-er’을 사용해 ‘투수(Pitcher)’라고 한다. (본 코너 207 ‘왜 ‘Pitcher’를 ‘투수(投手)’라고 말할까‘ 참조) 골프에서 공을 띄우는 것을 피치라고 하고, 그런 기능을 갖는 클럽을 ’피칭(Pitching)’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하지만 15세기부터 군대가 정렬된 상태를 피치라는 단어를 써서 말하기도 했다. 동사형으로 고정하다, 배치하다는 의미가 명사형으로 변화돼 정규 군대를 정렬한 상태를 피치라고 불렀다. 축구가 대중 스포츠로 자리잡은 18세기 산업혁명이후 푸른 잔디를 피치라고 말했으며 이 말이 실제 축구 경기가 벌어지는 축구 경기장을 뜻하는 의미가 됐던 것이다.

영국인들은 축구에 대한 생생한 추억이나 이야기를 할 때 딱딱한 의미의 필드나 그라운드보다는 피치를 즐겨 사용한다. 어릴 적부터 늘상 입에 붙은 말이기 때문으로 보인다. 영국 작가 닉 혼비가 자신의 첫 번째 책 제목을 ‘피버 피치(Fever Pitch)’로 정한 이유이기도 하다. 아스널 클럽 광팬이었던 그는 1992년 한 축구팬의 이야기를 수필 형식으로 발표, 공전의 히트작을 냈다. 이 책은 영국에서 1백만권 이상 팔렸으며 영화화가 되기도 했다.

그에게 피치는 그대로 삶이고, 연인이며 애증의 관계에 놓이게 한 불가사의한 존재였다. 그는 피치를 통해 성장했고, 평생 늙지 않는 축구팬이 됐다. 피치라는 말과 함께 열정을 뜻하는 피버라는 단어를 함께 써서 제목을 붙인 이유이기도 하다. 10대 시절 우연히 아버지와 찾은 아스널의 런던 하이버리 경기장(현재 아스널 홈구장은 에미레이트 스타디움)에서 만난 아스널 축구 경기를 보고 축구팬이 된 뒤 아스널과 함께 걸어온 자신의 인생이야기가 ‘피버 피치’에 담겨있다.

이 책은 피치라는 단어를 사용해 축구장을 문학적 의미로 승화시킬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피치라는 말이 형식적으로 드러난 축구 경기장보다는 그 속에서 축구에 열광하고 사람이 사는 모습이 무엇인지를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피치라는 말은 그저 축구장만을 뜻하는 단어는 아니다. 영국인들이 이 말을 쓰면서 자신의 추억과 삶을 되돌아본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피치는 영국 축구팬들의 삶이자 추억이며 역사이기도 하다. 미국인들은 이런 영국 축구팬들의 축구 사랑이 부러웠는지 2005년 피버 피치를 책과 영화로 성공시킨 닉 혼비를 총괄 프로듀서로 초청해 축구를 미국인들이 좋아하는 야구로 옮겨 86년만에 ‘밤비노의 저주’를 깬 2004년 보스턴 레드삭스의 우승 이야기를 각색해 같은 제목의 영화를 만들기도 했다. 이 때 피치는 축구장이 아닌 야구장이라는 의미로 사용했다.


[김학수 마니아타임즈 편집국장 kimbundang@maniarepor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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