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체육 100년100인100장면] 45. 로이존스 울린 박시헌의 서글픈 서울올림픽 금메달](https://cgeimage.commutil.kr/phpwas/restmb_allidxmake.php?pp=002&idx=3&simg=20201214065046094108f6b75216b21121740159.jpg&nmt=19)
88서울올림픽을 목전에 둔 9월4일, 박시헌은 스파링 도중 엄지손가락의 뼈가 조각나는 부상을 입었다. 주먹이 유일한 무기인데 주먹을 다쳤으니 시합은 일찍부터 포기해아 할 판이었다.
하지만 박시헌은 그럴 수 없었다. 얼마나 힘들게 여기까지 왔는데 포기란 있을 수 없었다. 그리고 마산 달동네 13평 무허가 슬레이트집에서 자신만을 쳐다보고 있는 여덟 식구의 얼굴을 떠올리면 죽더라도 링 위에서 죽어야 했다.
살얼음처럼 겨우 붙어있는 주먹뼈 위를 어루만지며 박시헌은 그렇게도 그리던 올림픽 링에 섰다. 1, 2차전을 통과하고 4강에 올랐을 때 그의 주먹은 제대로 쥐어지지도 않았다.
오른손 엄지손가락이 퉁퉁 부어올라 감각이 없었다. 그 주먹으로 남을 때린다는 건 도저히 불가능했다. 동메달을 확보했으니 승산없는 싸움을 계속하지 말고 그만 접자고 마음 먹었다.
은사인 이창룡씨에게 전화를 걸었다. 더 이상은 힘들다고 했다. 제자의 준결숭 진출에 흐뭇해 있던 이창룡씨는 놀라 체육관으로 달려갔다. 박시헌의 손을 본 그도 무리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가볼 때 까지 가보자며 밀어붙였다. 포기한 상태에서 왼손만으로도 해보자는 심산이었다.
다행히 준결승은 그다지 어렵지 않았다. 한 손임에도 결승에 올랐다. 그러나 거기가 끝이었다. 미국의 로이 존스 주니어는 강했다. 어떻게 경기를 치렀는지도 모를 정도였다. 끝까지 온 게 대견했다.
“오른 손만 다치지 않았으면......”
박시헌이 그렇게 중얼거리고 있는데 주심이 그의 팔을 번쩍 들었다. 이겼다는 것이었다. 어안이 벙벙했다. 왜 내 팔을 올리지. 엉겁결에 로이 존스의 손을 잡았으나 어찌해야 할지 판단이 서지 않았다.
링 사이드에서 미국 관계자들과 함께 관전하던 김종하 대한체육회장도 서둘러 축하의 악수를 했다. 그런데 갑자기 박시헌의 손이 올라가는 바람에 머쓱해지지 않을 수 없었다.
1988년 서울올림픽 복싱 라이트미들급 결승전. 주먹 한 번 제대로 뻗어보지 못한 홈링의 박시헌이 더 많이 때린 미국 선수를 꺾고 한국의 마지막 12번째 금메달을 획득했다.
체육관에서, TV로 경기를 본 국민들은 아우성이었다. 아무리 홈의 이점이 있다지만 너무했다고들 했다. 박의 금메달이 먼저 딴 11개의 금메달마저 퇴색시켰다며 반납하라고까지 했다.
반미정서가 한창일 때였음에도 국민들은 말도 안되는 로비로 금을 빼앗은 복싱연맹을 질타했다. 변정일의 링 점거소동으로 이미 한차례 곤욕을 치른 김승연 대한복싱연맹 회장은 책임을 지고 회장직에서 물러났다.
부끄러운 박시헌의 금메달은 그러나 박이나 한국 측의 장난이 아니었다. 세계복싱계를 장악하고 있는 동독 등 동구권의 조작이었다. 그들의 목적은 미국에게 금메달을 주지 않는 것이었다. 한국을 위해서가 아니었다.
거대한 스포츠 군단인 동독은 8년만의 동서대결인 서울올림픽에서 소련에 이이 2위를 한다는 계획이었다. ‘타도 미국’의 기치아래 모든 게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그런데 막판 복싱이 문제였다. 미국이 금메달을 가져가면 질 수도 있었다.
동구권 심판들은 경기도 하기 전에 이미 박시헌의 금메달을 결정했다. 결국 복싱의 이 메달로 동독은 금메달 37개로 36개의 미국을 제치고 종합2위의 목표를 달성했다. 미국이 금을 가져갔으면 2, 3위가 바뀔 뻔 했다.
장난은 동독이 치고 욕은 한국이 먹었다. 박시헌은 죽을 힘으로 싸우기만 했을 뿐인데 마치 이기려고 장난 친 것처럼 함께 비난을 받았다. ‘은빛 투혼’이 훨씬 자랑스러웠을 박시헌은 원치않았던 ‘슬픈 금메달’ 때문에 한동안 두문불출해야 했다.
[이신재 마니아타임즈 기자/20manc@maniarepor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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