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에 그는 지난 18일을 기하여 사과문을 발표하는 등 메이저리거로서의 명예를 회복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또한, 스프링캠프에서도 야수조 중에서 가장 먼저 모습을 드러내는 등 복귀를 위해 솔선수범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다만, 전미 여론의 향방은 그가 선의를 바탕으로 한 행동마저 ‘연극’으로 포장하며 그 가치를 애써 낮추는 듯하다. 이것이 계약기간 3년을 남긴 40세 선수의 불우한 모습이다.
‘최고의 기대주’로 불린 사나이들의 ‘불우한 말년’
1993년 전미 드래프트에서 전체 1순위로 시애틀 메리너스 유니폼을 입었던 로드리게즈는 당시까지만 해도 메이저리그의 모든 타격 기록을 갈아치울 만한 선수로 손꼽혔다. 특히, 투수 친화적인 세이프코 필드를 썼음에도 불구하고 1998년에는 42홈런-46도루를 기록하며, 40-40 클럽에도 가입한 바 있다. 타자로서 최고의 길을 걷고 있었을 때에는 ‘메이저리그 역사상 최초로 800홈런 고지도 밟을 수 있는 선수’로 꽤 많은 명성을 얻은 바 있다.
그러나 사실 1993년 드래프트의 최고 기대주는 로드리게즈가 아니었다. 그가 미국 아마야구 최고의 선수에게 주어지는 ‘골든 스파이크상 수상자’가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시애틀도 전체 1순위 지명권을 놓고 로드리게즈와 ‘이 선수’를 놓고 꽤 고민했다는 후문이다. 그가 바로 우완 투수 기대주, ‘대런 드라이포트’였다. 그러했기에, 2순위 지명권을 지닌 LA 다저스가 그를 선택하는 것은 매우 상식적인 일이었다. 그의 입단으로 다저스 선발 마운드는 한때나마 케빈 브라운, 박찬호, 드라이포트로 재편되기도 했다.
드라이포트는 1999년도에 13승, 2000년도에 12승을 거두며 나름대로 소기의 성과를 거둔 바 있다. 또한, 대학 시절 투-타 만능꾼으로 주목을 받은 탓에 타석에서도 홈런포를 가동하며 ‘꽤 위협이 되는 9번 타자’로 주목을 받은 바 있다. 다만, 이러한 모습이 골든 스파이크상을 받았던 유망주와는 거리가 있었다. 그럼에도, 다저스는 성장 가능성이 큰 유망주라는 점에 주목하여 드라이포트에게 5년간 5,500만 달러라는 거액을 안겼다. 그리고 이는 투자 대비 최악의 효율로 남은 계약으로 알려져 있다. 장기 계약 이후 부상과 시즌 아웃을 반복하며 이렇다 할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던 드라이포트는 한때 불펜으로도 투입되면서 ‘가장 비싼 중간계투 요원’이라는 달갑지 않은 소리까지 들어야 했다. 결국, 계약 만료와 함께 다저스도 그를 웨이버 공시했고, 드라이포트 역시 웨이버로 풀림과 동시에 은퇴를 선언했다. 그가 9년간 다저스에서 거둔 성적표는 48승 60패, 평균자책점 4.36에 불과했다.
공교롭게도 1993년도에 가장 많은 주목을 받았던 두 기대주에게는 ‘불운한 말년’이라는 달갑지 않은 공통분모가 존재했다. 드라이포트는 은퇴한 지 벌써 10년이 넘었고, 그 10년의 세월 속에서 로드리게즈는 600홈런 고지를 밟으며 자신이 세운 총 연봉 최고 기록을 다시 쓴 바 있다. 다만, 그러한 과정 속에서 로드리게즈는 프로 선수로서 해서는 안 될 일을 저질렀고, 명예의 전당 입성 또한 물 건너간 분위기다.
[eugenephil@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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