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야구대제전이 한창이던 지난 8일, 창원 마산야구장 관중석에서는 ‘누구에게라도 눈에 띌 법한’ 덩치 큰 선수가 경기를 보고 있었다. 유니폼을 입고 있는 것으로 보아 선수임에는 틀림없었지만, 그렇다고 고교야구 선수라고 하기에는 어느 정도 나이가 있어 보였다. 졸업생 멤버라는 생각이 들 때 즈음, 고교 때보다 ‘더욱 건장하게 성장한’ 사내 한 명이 필자를 향하여 모자를 벗고 깍듯이 인사를 했다. 오클랜드 어슬레틱스의 포수 유망주, 김성민(21)이 그 주인공이었다. 모교 야탑고 유니폼을 입고 다음 경기를 준비하는 모습을 너무 오랜만에 본 셈이었다. 귀국 이후 개인 훈련과 휴식을 병행하다 스승인 김성용 감독의 부름을 받고 즉각 모교로 왔다는 뒷이야기까지 들을 수 있었다.
필자가 그를 처음 만난 것은 야탑고 2학년 시절이었던 4년 전 3월이었다. 당시까지만 해도 140km대 빠른 볼을 던지는 투수로도 알려진 그는 2학년 중반부터 서서히 포수로 고정 출장하기 시작했다. 특히, 그 해 열린 봉황대기 대회에서는 당시 고교 최대어로 손꼽혔던 광주일고 유창식(한화)을 상대로 역전 홈런까지 뽑아내며, 주위를 깜짝 놀라게 했다. 그 홈런 한 방으로 그는 오클랜드 김현섭 스카우트 눈에 들기 시작했다. 결국, 그는 3학년 진학과 함께 오클랜드와 계약을 맺으며, 그 해 미국에 진출한 첫 번째 선수로 기록되기에 이르렀다.
내일의 빅리거 김성민, ‘포수 절대 포기 안 할 것’
이후 그는 2년간 루키리그를 전전하며 실력을 쌓기 시작했다. 파워가 좋아 미래의 오클랜드 중심 타자로 성장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도 컸다. 오클랜드 안방에 이렇다 할 유망주가 없었다는 점도 김성민에게는 호재였다. 그리고 그 결과는 올 시즌 싱글 A 승격으로 이어졌다. 루키리그에서 0.441의 고타율을 선보인 이후 싱글A ‘버몬트 레이크몬스터즈’ 팀 소속으로 홈런포 2개를 쏘아 올렸다. 특히, 데뷔 이후 가장 많은 42경기에 출장하면서 서서히 자기 자리를 찾아가고 있다. 팀 동료들과의 경쟁에서 지지 않기 위해 꾸준히 운동을 한 결과는 고스란히 ‘몸’에 나타났다. 하체가 튼튼해졌다는 필자의 칭찬에 김성민은 쑥스러운 듯 “살 찐 겁니다.”라며 가볍게 웃어넘기기도 했다.
그러나 사실 한국인 포수로 미국을 건넌 이는 김성민뿐만이 아니었다. 시애틀에 입단한 최지만(23)을 비롯하여 캔자스시티에 입단한 신진호(23) 모두 계약서에 사인했을 때에는 포수였다. 시카고 컵스 산하 트리플A 소속인 하재훈(24)도 포수였다가 지금은 외야수로 뛰고 있다. 그러나 신진호는 올해 귀국을 선택한 데 이어 최지만은 부상 이후 주 포지션을 1루수로 변경했다. 따라서 현재 미국 마이너리그에서 ‘포수’로 빅리그에 도전하고 있는 이는 김성민이 유일하다. 이에 대해 김성민은 “저는 절대 포수를 포기하지 않을 겁니다. 메이저리그에 올랐을 때 제 포지션에 적힌 숫자는 2번일 것입니다.”라며 강한 애착을 보이기도 했다. 그리고 배명고와의 야구대제전에서도 그는 4번 타자 겸 포수로 선발 출장했다.
마지막으로 내년 시즌 목표를 묻는 질문에 김성민은 “하이-싱글 A에 승격하는 것 아니겠습니까?”라며 다소 겸손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이에 필자는 “이왕이면 더블 A까지 승격됐다는 뉴스 좀 보게 해 다오.”라며 포수마스크를 쓰고 경기에 임하는 그에게 덕담을 건네기도 했다. 말 뿐만이 아니라, 언젠가 그가 메이저리그에 올랐을 때, 그의 포지션 번호에 ‘숫자 2’가 적혀 있기를 기원해 본다.
[eugenephil@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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