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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희준 "못된 세상…세월호 조문행렬서 희망봤다"

'유나의 거리' 통해 따뜻한 시선 배워…결별한 노수산나에게는 미안한 마음

2014-11-15 06:00

배우이희준.(BH엔터테인먼트제공)
배우이희준.(BH엔터테인먼트제공)
장장 8개월에 이르는 긴 대장정이었다. JTBC 드라마 '유나의 거리'와 작별한 배우 이희준은 시원섭섭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지난 11일 방송된 '유나의 거리' 마지막회 시청률은 2.2%(닐슨코리아 전국 기준). 그러나 이희준은 청년 백수 창만에게 시청률로 값을 매길 수 없는 것들을 배웠다.

"도덕적이고 인격적인 창만의 모습을 보면서 사람이 이렇게 살 수도 있겠구나 생각했어요. 김운경 작가님께 감사하죠. 그런 눈으로 세상을 8개월 동안 볼 수 있게 해줬으니까요"

처음엔 그도 한없이 착하기만 한 자신의 캐릭터를 이해할 수 없었다. 세월호 참사 조문 행렬을 보기까지는 그랬다.

"저도 나름 이해심이 깊은 사람인데 창만의 행동이 이해가 안 가는 것이 많았어요. 그런데 작가님이 창만이는 희망이라고 하시더라고요. 연극 때문에 공연장을 가는데 비 내리는 광화문 한복판에 어마어마한 사람들이 세월호 참사 희생자를 위해 조문하려고 서 있는 거예요. 저거구나 싶었어요. 주변에 못된 사기꾼도 많은데 누군가 슬픈 일을 당했을 때 저렇게 줄을 서서 조의를 표하는 모습이 숨어있는 희망이 아닌가. 이 느낌이 들도록 연기하면 되지 않을까하고 연기했는데 편하더라고요"

몸짓 하나에도 그는 힘든 이 시대 청년들의 모습을 담기 위해 노력했다.

"제가 방에 들어올 때 자세히 보면 한번도 씩씩하게 들어온 적이 없어요. 단칸방에 사는 우리 시대의 백수를 연기해야 됐기 때문에 항상 방에 들어올 때 스스로 외로움과 고독감을 표현하려고 했어요"

8개월 동안 창만과 한 몸이었기 때문일까. 자연스럽게 사회 소외계층을 바라 보는 시선이 달라졌다.

"촬영하다 밥을 먹으러 갔는데 온 몸에 페인트가 묻은 50대 아저씨가 계셨어요. 막노동하시는 분이었는데 평소라면 그냥 지나갈 것을 (제가) 그 아저씨를 보고 있었어요. 무슨 화두로 이야기를 하는지, 무슨 농담을 하는지 귀담아 듣게 되더라고요. 뭔가 다르게 보였어요. 정말 작가님께 감사드리죠. 세상을 보는 눈이 더 따뜻하고 뜨거워졌으니까요"

배우이희준.(BH엔터테인먼트제공)
배우이희준.(BH엔터테인먼트제공)
기억에 남는 대사나 장면을 묻는 질문에는 정말 많아서 꼽을 수가 없다며 난처하게 웃어 보였다. 이희준은 고심 끝에 결말의 오리배 청혼, '계팔이 형님은 언제부터 개가 되고 싶었어요?', 할아버지와 주방 아주머니의 춤 장면 등을 꼽았다.

"또 최고의 작가를 만나겠지만 김운경 작가님은 제가 만난 작가 중 최고예요. 조사를 많이 하고, 우리 사회의 슬프고 고독한 사람을 많이 인터뷰하러 다녔어요. 콜라텍을 한참 다녔다고 하더라고요. 인터뷰를 많이 해서 할아버지들이 지갑에 비아그라를 넣어 다니는 것을 알고 있었어요. 그런 부분을 존경해요"

높지 않은 시청률로 마무리됐지만 그에겐 그 어느 때보다도 값진 시간이었다. 평균 3~4시간 밖에 되지 않은 수면시간을 개의치 않을 정도였다.

"운이 좋았는지 이전에 찍었던 드라마들 시청률이 다 높았어요. 그런데 계속 2~3% 이러니까 적응이 안 되더라고요. 우린 이렇게 소중하게 찍고 있는데 많이 안 보시는구나 생각하니까…. 그런데 영화 '해무' 시사회에서 설경구 선배, 봉준호 감독님이 전부 '유나의 거리' 잘 보고 있다고 말씀하셨어요. 좋아하는 선배들이 다 '유나의 거리'를 얘기해서 정말 감사했어요. 사람들에게 좋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생각하니까 정말 기분이 좋았어요"

동고동락하며 지낸 배우들의 친분은 이루 말할 수 없이 두텁다. 선배들은 술을 사주고, 후배들은 공연에 초대하고, 그렇게 따뜻한 교류가 계속될 예정이다.

"제가 속한 극단이 있는데 배우 분들 다 초대해서 공연 보여드리고 대학로에서 술자리까지 해서 놀아보려고요. 배우 분들도 다 오시기로 했어요. 정종준 선배는 3년 끊은 술을 '유나의 거리' 때문에 다시 드셨어요. 대학로 불러서 후배들 술 사주시고 하셨으니까. 헤어지면 정말 많이 아쉬울 거예요. 오랫동안 정이 들었거든요"

홍계팔 역을 맡은 조희봉과는 '형님'이라고 부를 정도로 돈독한 사이를 자랑한다.

"조희봉 형님과 연기하는 것이 가장 즐거웠어요. 기본적으로 유머 감각이 풍부하고, 밋밋한 상황에 유머 넣는 것을 좋아해서 형님이랑 잘 맞아 떨어졌어요. 눈짓, 발짓, 귓속말 등으로 우리끼리 유머를 만들면 PD님이 정말 좋아하시는 경우가 많았어요. 형이 저한테 얘기해달라고 한 건 아니에요(웃음)"

그는 스스로 자신이 배우가 된 것을 '천운'이라 불렀다. 이희준은 학창시절, '배우'라는 직업과는 전혀 무관하게 자라났다. 성적 우수한 장남이었기 때문에 부모님은 의대 진학을 원했지만 고등학교 때 성적이 떨어져 공대로 진로를 바꿨다.

"어릴 때는 부모님의 뜻대로 살았어요. 남자는 의대 안 가면 공대라도 가야 된다는 말을 듣고 공대에 진학했죠. 전공 서적을 한 번도 펴본 적이 없어요. 그냥 통기타 사서 기타 동아리 회장하고, 노래하고, 공연 만들고 그것만 했죠. 그렇게 우연히 연극을 해서 지금까지 오게 됐지만 정말 천운이고 감사해요"

그렇게 찾아 낸 배우란 직업은 진심으로 사람을 이해해야 했다.

"배우는 활자로 된 인물을 내 심장에 얻는 느낌으로, 진심으로 이해해야 해요. 기본적으로 사람을 이해하는 것이 배우의 본성이라고 생각해요. 이 직업을 가지지 않았으면 어땠을까 싶어요"

배우이희준.(BH엔터테인먼트제공)
배우이희준.(BH엔터테인먼트제공)
평소에도 그는 사람들을 세심하게 관찰하며 연구를 거듭한다.

"사람들이 어떤 행동을 했을 때 '왜 저렇게 행동하지?' 생각해요. 기침을 세 번하면 왜 기침을 세 번하는지, 재미로 그런 생각을 많이 하는 편이에요. 제가 언젠가 그런 캐릭터를 맡을 수도 있잖아요? 말할 때도 사람 관찰을 좋아해요. 사람에 대한 생각, 상대방에 대한 마음 등을 많이 생각하려고 해요"

바쁜 스케줄 때문에 자주 찾아뵙지 못하는 부모님은 그에게 아픈 손가락이다. 얼마 전 아버지가 수술로 병원에 입원했을 때도 '유나의 거리' 촬영이 겹쳐 병문안 한 번 가지 못했다.

"명절 때 아버지랑 대판 싸웠는데 갑자기 눈물이 났어요. 죄송하다 하고, 손잡고 얘기 나누면서 풀었어요. 맹장 수술과 비슷한 수술을 했을 때도 제가 오지 않은 것이 속상하다고 하시더라고요. 다음에는 잠을 자지 못해도 꼭 가겠다고 약속했어요"

미술을 전공한 어머니와는 함께 그림을 그리며 소통한다. 이희준의 마음 한 켠에는 어머니와 자신의 그림을 모아 전시회를 열고 싶다는 바람이 있었다.

"환갑 때 저랑 그림 모아서 전시회 열자니까 어머니가 열정에 타올라서 그림을 그리고 있어요. 소일거리 없이 외로워하실까봐 재료 등 다 사드리고, 대구에 유명한 수채화 레슨 받게 했더니 거기 빠지셨더라고요. 휴대폰으로 서로 새로운 그림을 교환하고 평가해요. 저는 따로 그림 그릴 시간이 없어서 스태프나 어린 단역배우들 등 현장을 스케치해요. 프랑스에서 미술 유학한 주민경 씨가 제 그림 좋아해요. 제가 보기엔 엉망인데 그림 배우지 말라고 하던데요(웃음)"

배우 노수산나와의 결별이 알려진 것에 대해서는 미안한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배우로서 정말 존경하는 친구인데 누군가의 여자친구로 자꾸 거론되는 것이 미안했어요. 바빠서 서로 못 만나다 보니까 자연스럽게 거리가 생기면서 다시 좋은 선후배로 지내고 있어요. 이 친구 이름이 거론돼서 정말 미안해요. 아침에 미안하다고 전화 통화도 했는데 알았다고 그러더라고요. 그 친구도 새로운 사랑을 시작할텐데 그건 예의가 아니죠. 아주 현명하고, 속이 깊은 친구예요. 일도 정말 잘해서 우리나라에 없어서 안 될 큰 배우가 될 것을 믿어 의심치 않아요"

공개 연애는 '불편하다'며 정확하게 선을 긋기도 했다.

"공개 연애는 불편한 것 같아요. 배우는 작품과 연기로 얘기하는 것이 좋은 방향이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제가 의도한 것이 아니라 어쩔 수가 없으니까…"

알랭드보통의 소설과 맥주, 그리고 그림. 이희준과 그가 사랑하는 모든 것들은 닮았다. 그에겐 소탈하지만 사람을 사랑하고 그릴 줄 아는 힘이 있었다. 그리고 그 중심엔 언제나 심장이 뛰는 연기를 원하는 열정이 자리했다.

"'유나의 거리' 대본을 보고, '이거 죽이는데? 이거 심장이 뛰는데? 해보고 싶다'는 마음으로 골랐어요. 전 다시 심장을 뛰게 하는 작품을 할 거예요"CBS노컷뉴스 유원정 기자 ywj2014@c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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