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피겨 스케이팅이라는 종목 이름이 언제 처음 등장했느냐에 대해서는 자료마다 조금 차이가 있다. 매리엄 웹스터 사전은 1834년부터 사용했다고 제시한다. 반면 피겨스케이팅 역사연구에서는 1869년 ’FigureSkating‘이라는 영국의 책에서 이 명칭을 사용하면서 정착하기 시작했다고 설명한다.
우리나라 언론에선 1950년대 이후 피겨스케이팅이라는 본격적으로 사용했다.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에 따르면 경향신문 1955년 10월27일자 ’20年(년) 뒤떨어진 流行(유행) 出演(출연)할 舞臺(무대)조차없어‘ 기사에서 ’「피겨·스케|트」選手(선수)「쏘니야·헤니|」孃(양)이現在(현재) 蘇聯巡演旅行中(소련순연여행중)에特(특)히 UP通信(통신)을 爲(위)... 「아이스·스케이팅」國(국)으로 育成(육성)되어 가고있으...‘라고 적었다. 당시 기사는 소련 순회공연 중이던 세계적인 피겨스케이터 소니아 헤니(Sonja Henie)를 소개하면서 ‘피겨·스케이트選手’라는 표현이 등장한다. 또 기사에서는 한국을 ‘아이스·스케이팅’의 나라로 육성해야 한다는 취지의 표현도 사용한다.
이 기록은 흥미롭다. 당시 한국 언론에서 서양의 새로운 빙상 종목을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아직 용어가 완전히 통일되지 않았음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오늘날 너무나 익숙한 피겨스케이팅이라는 말도 처음부터 지금의 형태로 굳어진 것이 아니라 '피겨스케이트'와 ‘아이스 스케이팅’ 등의 표현을 거쳐 점차 정착한 것으로 볼 수 있다.
피겨 스케이팅이라는 이름은 단순한 종목명이 아니다. 그 안에는 이 스포츠가 어디에서 시작되었는지가 담겨 있다. 피겨스케이팅의 출발점에는 화려한 쿼드러플 점프도, 트리플 악셀도 없었다. 스케이트 날 하나로 얼음 위에 원을 그리고, 그 원을 다시 정확하게 따라가며 자신의 균형과 기술을 증명하는 일이 있었다. 화려한 스포츠의 이름 속에, 의외로 조용하고 섬세했던 ‘그림 그리기의 역사’가 숨어 있는 것이다.
19세기 후반 국제적인 피겨스케이팅 대회가 자리 잡으면서 선수들은 미리 정해진 도형을 얼음 위에 그리는 ‘컴펄서리 피겨(compulsory figures)’를 수행했다. 심판들은 그 선이 얼마나 정확하게 그려졌는지, 원이 얼마나 균형 잡혀 있는지, 회전과 에지가 얼마나 정확한지를 살폈다. 1896년 제1회 세계선수권에서도 규정 도형과 프리 스케이팅이 함께 실시됐다. 이후 규정 도형은 오랫동안 피겨스케이팅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했다. 한때 대회 총점의 60%를 차지할 정도였다.
오늘날 피겨스케이팅 경기에서는 선수들이 얼음 위에 정확한 8자나 원을 그리는 모습을 볼 수 없다. 그 종목의 이름을 탄생시킨 바로 그 ‘figure’가 사라졌기 때문이다. 컴펄서리 피겨는 오랜 기간 피겨스케이팅의 기초로 기능했지만, 경기 시간이 지나치게 길고 관객에게도 이해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었다. 결국 국제빙상경기연맹(ISU)은 1990년을 마지막으로 세계선수권 등 국제대회에서 컴펄서리 피겨를 공식 경기 종목에서 제외했다.
화려한 현대 피겨스케이팅의 시작에는 의외로 조용한 장면이 있었다. 스케이트 날 하나가 얼음을 가르고, 하얀 빙판 위에 천천히 하나의 원을 그리는 장면이다. 피겨스케이팅의 ‘피겨’는 바로 그 원에서 시작됐던 것이다.
[김학수 마니아타임즈 기자 / kimbundang@maniarepor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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