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11.1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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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박사 기자의 스포츠용어 산책 1607] 북한에선 왜 ‘프리킥’을 ‘벌차기’라고 말할까

2025-11-17 07:15

북한이 FIFA U-17 월드컵 16강에 오른 소식을 전한 아시아축구연맹.[아시아축구연맹 홈페이지 캡처]
북한이 FIFA U-17 월드컵 16강에 오른 소식을 전한 아시아축구연맹.[아시아축구연맹 홈페이지 캡처]
프리킥(free kick)은 말 그대로 자유스럽게 볼을 찬다는 의미이다. 남한은 국제축구연맹(FIFA)의 표준 용어를 그대로 받아들여 프리킥이라 부른다. 그러나 북한은 프리킥을 ‘벌차기’라고 말한다. 같은 상황을 놓고 전혀 다른 이름으로 부르는 것이다. 영어의 표면적 의미를 기계적으로 옮기는 것이 아니라, 제도와 규칙이 규정하는 관계에 주목하는 북한 특유의 번역 방식이다.

프리킥은 원래 1863년 축구 규칙을 처음으로 제정한 영국축구협회(FA)가 탄생하기 이전 19세기부터 축구와 럭비 규칙이 같이 사용됐을 때부터 적용됐다. 당시는 손과 발을 쓸 수 있었는데 지금의 럭비 규칙 페어캐치(Fair Catch)와 같이 상대가 찬 볼을 잡고 전진하지 않겠다고 신호를 할 때, 볼을 가지고 상대편의 골라인을 넘는 터치타운(Touch)에 성공할 때, 상대의 반칙이 있을 때 등에 적용했다. FA 규칙도 처음에는 럭비 등과 비슷하게 프리킥을 운영했다. 볼을 정지될 상태 뿐 아니라 손으로 떨어트려 킥을 하고 직점 득점을 할 수 있었다. 상대 수비수와의 거리 제한도 없었다.
현대 축구와 같은 프리킥 방식이 운영되기 시작한 것은 1913년부터였다. 프리킥을 할 때 상대 선수들은 5.5m에서 9.15m이상 떨어지도록 했다. 그 이전 프리킥은 손으로 킥을 하는 방법이 없어지고, 직접과 간접 두 방법으로 분류해 운영됐는데, 1913년을 전환점으로 사실상 현대 축구와 같은 프리킥이 탄생했다. (본 코너 321왜 프리킥(Free Kick)은 직접(Direct) 프리킥과 간접(Indirect) 프리킥으로 나눌까참조)

우리나라 언론은 일본의 영향을 받아 일제강점기 때부터 프리킥이라는 말을 썼다.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에 따르면 조선일보 1924111일자 전조선축구(全朝鮮蹴球)’기사는 ‘후반(後半) 평양육박전(平壤肉迫戰)을 시(始)한지 불과십분(不過十分)에 꼴을 어듬에 반(反)하야 불교(佛敎)는 최후(最後)의 용력(勇力)을 진(盡)하야 성적(成績)으로 불교(佛敎)프리킥 이점(二點)을 당(當)하고 평양(平壤)은 프르킥 이점(二點)에 콘너킥을 당(當)하야 불교(佛敎)『으라잇윙』김제정(金濟正)의 콘너킥에 평양군진세(平壤軍陣勢) 어지러워『풀빽』에 펜날틱을 당(當)하얏고 불교(佛敎)『으라잇인너』김원태(金源泰)의킥으로 귀중(貴重)한 꼴일점(一點)을 회복(恢復)하니 관중(觀衆)은 열광(熱狂)되다 득점동일(得點同一)하야 성적(成績)으로 불교승리(佛敎勝利)(이때에 스코어의 잘못이 잇서 재조(再調)하기로하고폐회(閉會)’라고 전했다. 기사를 통해 당시 프리킥을 얻을 경우 2점 배점을 주었던 것으로 확인된다.

북한의 ‘벌차기’는 축구 규칙의 본질을 해석한데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프리킥은 본래 상대의 반칙으로 인해 주어지는 벌칙이다. 그 자체가 ‘반칙에 대한 제재’라는 성격을 지니는데, 북한은 바로 이 규칙적 본질을 포착했다. 그래서 외래어를 그대로 쓰는 대신 ‘벌을 주는 차기’라는 의미 중심어를 선택했던 것으로 판단된다.


북한에서 체육은 단순한 경기 기술이 아니라, 사회주의적 도덕성과 집단 규율을 체현하는 공간으로 이해된다. 북한이 스포츠 용어에서 규칙 위반에 대한 처벌을 강조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본 코너 1551회 ‘북한에선 왜 ‘스포츠’ 대신 ‘체육’이라는 말을 많이 쓸까‘ 참조)

북한의 외래어 순화 정책도 무시할 수 없다. 북한은 오랫동안 외래어를 ‘잡탕말’로 규정하며 체육용어까지 적극적으로 토착화해 왔다. 이 과정에서 프리킥은 ‘자유차기’가 아니라 ‘벌차기’가 되었다. 더 설명할 필요 없이 누구나 뜻을 알 수 있고, 규칙의 성격도 동시에 드러나기 때문이다. 말이 단순해야 사람을 단련시킨다는 언어정책의 논리가 그대로 담겨 있다. (본 코너 1581회 ‘북한은 문화어에서 스포츠 용어를 어떻게 바꾸었나’ 참조)

결국 ‘벌차기’라는 표현은 단순히 북한식 용어가 아니다. 규칙 위반에는 반드시 벌이 따른다는 체육 철학, 외래어보다 조선말을 우선한다는 언어 정책, 그리고 경기마저 교육과 규율의 장으로 보는 사상적 배경이 모두 얽혀 있다. 프리킥 하나에도 체제가 보인다는 말은 과장이 아니다.

[김학수 마니아타임즈 기자 / kimbundang@maniarepor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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