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11.13(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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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박사 기자의 스포츠용어 산책 1604] 북한에선 왜 ‘골키퍼’를 ‘문지기’라고 말할까

2025-11-13 05:59

 2025 FIFA U-17 여자 월드컵 결승에서 네덜란드를 3-0으로 완파하며 우승을 한 북한 17세이하 여자대표팀 [피파 홈페이지 캡처]
2025 FIFA U-17 여자 월드컵 결승에서 네덜란드를 3-0으로 완파하며 우승을 한 북한 17세이하 여자대표팀 [피파 홈페이지 캡처]
북한에선 ‘골키퍼’라는 외래어 대신 ‘문지기’라는 순우리말을 쓴다. 골키퍼는 영어 ‘goalkeeper’ 발음을 그대로 사용한 것이다. 이 단어는 문이나 목표를 의미하는 ‘goal’과 지키는 사람을 의미하는 ‘keeper’의 합성어이다. 이를 직역하면 ‘문을 지키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문지기’라는 북한식 표현은 단순한 의역이 아니라, 어원의 본래 의미를 충실히 되살린 번역이라 할 수 있다.

14세기 영어에서 ‘goal’은 ‘경계선(boundary)’을 뜻했다. 16세기부터 경기장에서 ‘득점을 위한 표적’을 의미하게 되었고, 19세기 축구 규칙이 체계화되면서 “득점구역(골대)”으로 확립됐다. 따라서 ‘goalkeeper’는 문자 그대로 “득점 구역을 지키는 사람”이 된 것이다.

‘keeper’는 지키다는 의미인 ‘keep’에서 파생된 명사로 원래는 ‘감시자’ 또는 ‘관리인’을 뜻했다. ‘goalkeeper’라는 단어는 1870년대 영국 축구에서 본격적으로 쓰이기 시작했다. 1863년 영국 축구협회(FA)가 규칙을 제정할 당시, 유일하게 손을 쓸 수 있는 선수를 지칭하기 위해 사용됐다. 초기에는 공을 만질 수 있는 이라는 뜻으로 ‘goal tender’나 ‘goal minder’ 등도 병용되었으나, 1890년대 이후 ‘goalkeeper’가 정착됐다.

우리나라에서 5공화국 시절 한국식 축구 용어 정비사업을 펼치면서 문지기라고 부르기도 했다. 북한에서 이 말을 오래 전부터 써 왔다는 사실을 알고 잠깐 문지기라는 말을 쓰다가 영어 원어대로 골키퍼라고 다시 쓰게 됐던 적이 있었다. 세계에서 만국어로 통하는 축구 포지션 중의 하나인 골키퍼를 의도적으로 우리 말로 바꿔 사용하는 것이 무리라는 판단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본 코너 308골키퍼(Goalkeeper)를 알면 골이 보이는 이유참조)


남한에선 축구 포지션을 음차 중심으로 쓰는데 반해 북한에선 의미 중심으로 번역해 사용한다. ‘포워드(forward)’공격수로, ’미드필더(midfielder)’중간방어수로 부르는 식이다. ‘골키퍼문지기라고 부르는 것도 같은 이유이다.

북한은 1950년대 이후 언어를 ‘민족의 얼굴’로 규정하며, 외래어를 적극적으로 자제했다. 1964년 김일성은 ‘조선어를 민족의 유산으로 지키자’연설에서 “외국 말을 함부로 섞지 말고 우리말로 순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에 따라 스포츠 용어에서도 외국식 발음을 버리고 조선식 의미어로 바꾸는 운동이 진행했다. ‘골키퍼’는 “제국주의 문화어”로 분류되어, ‘문지기’라는 민족어로 대체하게 됐다.

‘문지기’라는 말에는 집단주의적 가치관이 스며 있다. 단순히 골대를 지키는 선수가 아니라, 집단의 문, 승리의 관문을 수호하는 전사를 상징한다. 실제 북한의 축구 해설이나 기사에서는 이와같은 표현이 자주 등장한다. 북한 공식 기관지 ‘로동신문’ 2018년 4월16일자는 “문지기가 집단의 명예를 지키기 위하여 몸을 사리지 않았다”고 전했다. 이처럼 ‘문지기’라는 말은 수비수 이상의 도덕적·집단적 의미를 내포한다. 개인의 기술보다 충성, 희생, 방어정신을 강조하는 표현인 것이다.

[김학수 마니아타임즈 기자 / kimbundang@maniarepor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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