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수의 사람 ‘人'] " 국기원을 로마 교황청과 같은 세계적인 명품으로 만들어야 한다" 이동섭 신임 국기원장

김학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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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 2021-03-24 0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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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한말에서 일제 강점기에 걸쳐 활동한 역사학자이자 독립운동가였던 ‘단재(丹齋)’ 신채호(1880-1936) 선생은 ‘묘청의 서경천도 운동’을 ‘조선 역사상 1천년래 제1대 사건’이라고 평가했다. 역사적 관점에서 이 사건을 불가대 유가의 싸움, 국풍파와 한학파의 싸움, 독립당과 사대당의 싸움, 진취사상대 보수사상의 싸움으로 인식했기 때문이다. 단재 선생이 묘청을 전자를 대표하는 역사적인 인물로 본 것은 확고한 민족주의 역사관에서 비롯됐다. 하지만 단재 선생의 탁월한 역사적 식견으로 손꼽았던 묘청 사건의 역사적 중요성은 역사 기록으로만 묻히고 말았다. 선생의 견해는 민족의 보편적 역사로 받아들여지지 않은 아쉬움이 많다는게 역사학자들의 대체적인 해석이다.

단재 선생이 생존해 있다면 근대 한국 백년사에서 아마도 남부럽지 않은 스포츠 유산으로 손꼽을만한 것이 국기 태권도라고 생각하는 태권도인들이 많다. 국기 태권도의 발전을 위해 앞장서는 이동섭(66) 신임 국기원장도 그런 사람들 가운데 한 명이다. 묘청의 난은 뜻을 이루지 못했지만 태권도는 한국을 대표하는 세계적인 스포츠가 됐기 때문이다.
올림픽 종목으로 선정될 정도로 세계에 널리 보급된 한국 고유의 전통 무예 태권도는 전 세계 210개 회원국에 1억5천만명이 함께 하는 세계적인 무도(武道)로 자리잡았다. 한국이 세게에 자랑스럽게 내놓을 역사적 유산으로 태권도는 그 어떤 것에 견주어봐도 전혀 손색이 없다.

태권도는 삭막한 황무지를 옥토로 바뀌기까지 숱한 어려움과 역경을 헤쳐 나가야 했다. 태권도인들은 태권도가 세계인들 사이에 빛나는 한국의 유산이 되기까지 시대를 아우르는 5대 사건이 있었다고 입을 모은다. 1950년대 이승만 대통령으로부터 ‘태권도(跆拳道)’ 휘호를 받고 초대 대한태권도협회장을 맡아 태권도의 체계화를 이룬 최홍희 총재의 활동, 김운용 총재의 주도로 1972년 국기원 창설과 1973년 세계태권도연맹 출범, 2000년 시드니올림픽 정식종목 채택, 2018년 ‘태권도는 대한민국 국기(國技)이다’며 법률로 명시한 일 등을 꼽는다. 5대 사건 모두 태권도 역사에서는 모두 기념비적인 일이었다. 한국의 전통적 무도를 세계 스포츠의 보편 가치에 맞게 성장시켰다는데 5대 사건의 의미가 있을 것이다.

지난 달 치열한 선거를 통해 취임한 이동섭 국기원장은 요즘 5대 사건을 태권도를 빛낸 역사 유산으로 계승· 발전시키며 국기원을 천주교 성지 로마 교황청과 같은 세계적인 역사적, 기념비적 명소로 자리잡을 수 있도록 ‘신바람’ 나게 뛰고 있다. 전직 국회의원 답게 국회로 가서 국회의장을 만나고, 행정부 수반 국무총리와 주무부서인 문화체육부 장관 등도 만나 국기 태권도의 새로운 위상을 만들기 위해 관심과 지원을 호소하고 있다.

이 원장은 현역 국회의원 시절이던 2018년 3월30일 임시국회 제1차 본회의에서 ‘태권도를 우리나라 국기로 한다’는 내용이 담긴 ‘태권도 진흥 및 태권도 공원 조성등에 관한 법률(태권도법)’ 일부 개정안이 통과될 때 법안을 발의하며 5대 사건의 한 축을 이룬 주인공이기도 하다. ‘그랜드 마스터’라고 불리는 태권도 9단의 최고수이기도 한 그가 국기원 원장을 맡으면서 국기 태권도의 세계화를 위해 열정과 신념을 더욱 불사르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오는 30일 국기원에서 태권도가 법률에 의해 ‘국기’로 지정된 것을 기념하기 위한 ‘국기 태권도 지정의 날 기념식’을 준비하기 위해 바쁜 그를 지난 22일 오후 한국체육언론인회 인사차 방문하는 자리에서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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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섭 국기원장은 "태권도의 성지인 국기원을 로마 교황청과 같은 세계적인 명소로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정지원 기자]


“국기원을 로마 교황청과 같은 세계적인 명품으로 만들고 싶습니다”

-국기 태권도 지정의 날 기념식은 어떤 의미를 갖습니까.

“1972년 국기원이 개원했을 때 박정희 전 대통령이 ‘국기 태권도’라는 휘호를 하사했습니다. 태권도의 정체성을 확립하게 하고 태권도의 세계화에 큰 영향을 준 역사적인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동안 태권도는 세계화에 성공하고 정체성도 확보하게 갖추었지만 국내서는 법적인 토대를 갖지 못해 명실상부한 국기로서 인정을 받지 못했습니다. 태권도인인 제가 마침 국회의원으로 있을 때 228명의 의원분뜰의 서명을 받아 태권도를 법적으로도 국기임을 공식적으로 선언하게 됐습니다. 이를 통해 전 국민이 태권도에 대한 자부심을 갖게 할 뿐 만 아니라 행정적으로도 태권도 발전에 큰 힘이 되는 전기를 마련할 수 있었습니다. 이번 행사는 국회태권도연맹 총재인 홍문표 의원님(국민의 힘)과 명재선 이사장께서 국기원의 발전을 축하하며 기념비를 기증해 주셔서 의미있는 제막식까지 겸하게 됐습니다. ”

-국기원을 로마 교황청과 같은 세계적 명소로 만들어야 한다고 말씀하시는데요.

“태권도는 우리 한민족이 자랑할만한 국가적인 보물이 됐습니다. 태권도 발상지인 우리나라에서 소중히 가꾸고 관리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전 세계 태권도인이 자부심을 갖고 찾을 정도로 셰계적인 명소로 국기원을 만들어야 합니다. 그래서 로마 교황청과 같은 명품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말을 한 것입니다. 태권도가 법적으로 국기로 지정된만큼 국가적인 사업으로 태권도의 성지인 국기원을 전 세계적으로 의미있는 역사적인 공간으로 탄생시키는 것이 우리들의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

그는 2018년 평양을 방문했을 때, 평양 태권도 전당을 찾았던 기억을 떠올렸다. 크기와 규모에 크게 놀랐다. 남한에서 출발한 태권도보다 월등히 시설이 좋았기 때문이다. 태권도가 국기이기 때문에 이름을 지은 국기원과는 비교 조차 되지 않을 정도로 화려한 위용을 자랑했던 것이다. 국기원은 규모도 작을 뿐 아니라 낡고 노후했다. 그는 “당시 평양 태권도 전당을 보고 크게 충격을 받았다. 태권도인으로서 국기원을 반드시 세계 태권도 메카답게 다시 건립해야 한다는 생각을 갖게됐다”고 말했다.

-앞으로 국기원을 어떻게 변화시킬 것인가요.

“포스트 코로나 시대, 급변하는 환경 속에서 세계태권도 본부로서의 선도적인 역할을 하기 위한 ‘제2의 국기원’ 건립을 추진할 TF 추진단을 만들어 중장기적인 목표를 갖고 운영할 계획입니다. TF 추진단은 주요 정책의 결정 및 추진에 대한 자문을 하며 일을 해나갈 것입니다. 국기원내 기술심의회, 특별위원회 등과는 차별화된 어젠다와 기능에 집중해 국기원의 혁신 운영체계를 포지셔닝 할 것입니다. 추진단장인 안용규 한국체대 총장을 중심으로 대변혁을 이룰 여러 정책을 도출하면 이를 본격적으로 시행하 나갈 계획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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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기원장 취임후 박병석 국회의장을 예방, 국기원 명예총재로 위촉하고 기념사진을 찍은 모습. [국기원 제공]


국기 태권도를 위한 정치인


이동섭 원장은 현역 국회의원 시절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인사 청문회에서 태권도 지원과 관심을 호소하며 직접 겨루기 심판 시범을 보이기도 했다. 2017년 도종환 장관 국회 청문회에서 태권도가 한국의 중요 무형 문화재임을 강조하고 국가 차원에서 진흥시켜야 한다는 것을 상기시키며 갑작스럽게 시범을 보였던 것이다. 한국의 고유 문화유산인 태권도를 국내는 물론 해외로 전파하고자 하는 충정에서 나온 행동이었다. 그는 국회의원 이전에 태권도인임을 명심하며 4년 의정생활을 했다고 한다. 그는 국회의원으로서도 최고의 평가를 받았다. 시민단체로부터 국회의원 300명 중 전반기 2년 의정활동에서 최고 평가를 받기도 했다. 국정감사 우수의원 20명 명단에 4년간 선정된 바 있다.

-정치에서 본 태권도는 어떤 느낌이었나요.

“비례대표로 지난 2016년부터 2020년까지 4년간 문광위 간사, 평창동계올림픽 간사 등을 맡았습니다. 국회의원 태권도 연맹 총재도 역임했습니다. 여러 의원님을을 만나보면 태권도가 국기인 것을 알고는 있지만 어떻게 해야 태권도에 도움을 줄 수 있는 지를 잘 모르고 있었습니다. 저는 태권도인으로서 여러 의원님들이 태권도에 관심과 애정을 가질 수 있도록 당을 떠나 개인적인 친분을 쌓으려고 노력했습니다. 다행히도 의원님들이 여야간에 많은 이견이 있었지만 태권도에 관해서는 서로 도와줘야 한다는 공통된 의견을 갖게됐습니다. 태권도를 위해선 아주 잘 된 일이었습니다.”

-법률로 국기 태권도가 제정된 이전과 이후는 어떻게 달라지게 됐나요.

“국회에서 국기 태권도가 법률로 통과된 이후 우선 정부 차원에서 태권도 진흥을 위한 여러 정책과 재정 지원이 효율적으로 이뤄질 수 있습니다. 법률로 제정되기 이전에는 굳이 태권도를 행정적으로 먼저 검토하는 분위기가 이루어지기 힘들었습니다. 일본이 발상지인 유도와 태권도가 엘리트스포츠 차원에서 보면 비슷한 상황이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많이 달라졌습니다. 정부 당국에서 소신을 갖고 태권도 육성에 적극 나서고 있습니다.”

그는 국기 태권도가 법으로 발의되지 않았으면 일본 유도의 길을 걸을 가능성이 많았다고 했다. 일본 유도는 오래 전 세계유도연맹 회장이 프랑스인이 맡고, 일본 유도 자체가 정통성과 상징성을 많이 잃어 버렸다. 하지만 태권도는 국가적인 차원에서 중점적으로 진흥시켜 나가면 일본과 같은 불행한 전철을 밟지는 않을 것이라는게 그의 말이다.

-정치인으로 활동하다가 국기원장을 맡은 게 좋은 영향을 주고 있습니까.

“ 사실 저는 국회의원을 하고 정치활동을 하면서도 태권도인이라는 점을 항상 잊지 않고 있었습니다. 태권도 일이라면 다른 어떤 것보다 최우선으로 두었습니다. 저의 열정을 많은 분들이 잘 이해해 주셨던 것 같습니다. 국기원장이 되고 난 후 박병석 국회의장님, 정세균 국무총리님을 찾아가 국기원의 어려움을 호소했더니 잘 도와주겠다고 하시더라구요. 앞으로 많은 힘이 되어 주실 것으로 기대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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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섭 국기원장은 취임 후 청렴 서약서를 스스로 작성하고 발표했다. [국기원 제공]


강력계 형사 이동섭, 태권도인 이동섭


사실 그는 정치 활동을 하기 이전에는 20여년간 조직 폭력배를 소통하는 강력계 형사로 경찰 사회에서 유명했다. 1978년 무도 경찰관으로 경찰에 입문, 1998년까지 서울 경찰청 형사과, 북부 겅참청 강력부 수사관으로 활동했다. 1990년대 초 노태우 대통령 시절 ‘범죄와의 전쟁’이 선포됐을 때, 상계동파·장안동파·청량리파·미아리파 등 조폭 8개파를 소통해 검찰 공보에도 올랐던 열혈 강력계 형사였다. 그의 팔목과 손가락에는 아직도 조폭 소탕을 할 때 당한 칼부림 상처 흔적이 선명하게 남아 있다.

-조폭 소탕을 하면서 험악한 순간을 맞았을 수도 있었을텐데요.

“한 번은 출동했다가 문칸을 지키고 있던 건장한 조폭 얘들을 맞닥트렸던 적이 있었습니다. 보통 경계를 서는 조폭애들은 발 양말 사이에 생선회 써는 날카로운 칼을 휴대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안으로 치고 들어가는데 뒤에서 따라오던 동료 형사들이 보이지 않고 나 혼자 밖에 없을 땐 순간적으로 머리카락이 쭈뻣 쭈뻣 서기도 했습니다. 한 번은 조폭들과 싸우다 예리한 칼에 손가락과 발목에 큰 상처를 입고 대수술을 받기도 했습니다.”

-왜 위험한 강력계 형사일을 맡게 됐나요.

“처음 경찰이 됐을 때 궃은 일이라 생각했지만 보람도 큰 것으로 생각하고 강력계에 지원했습니다. 막상 지원해서 일하다보니 정말 위험한 순간들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천직으로 알고 묵묵히 자신의 일에 모든 것을 바치려 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니 그런 일을 어떻게 해냈을까 싶기도 합니다. ”

그는 경찰과 검찰은 물론 조폭 사이에서도 ‘김두환 장군’으로 불리웠다고 한다. 태권도로 다져진 180cm의 다부진 체격에 조폭과의 육탄 대결도 서슴없이 가졌기 때문이다. 지금도 그의 몸을 보면 당당힌 힘과 기운이 느껴질 정도였으니 혈기 왕성한 30대와 40대 때는 어떤 모습이었을지 쉽게 상상해 볼 수 있다.

-태권도가 개인적 삶에 어떤 의미가 있습니까.

“사실 저는 어린 시절 약골이여서 태권도를 시작하게 됐습니다. 태권도를 본격적으로 하면서 흥미를 갖게 됨녀서 전국체전 전남도 예선에서 우승을 차지하기도 했습니다. 태권도를 통해 심신을 단련할 수 있었습니다. 강인한 체력과 의지를 키우고 자신감과 판단력을 겸비할 수 있었습니다. 태권도가 민족의 얼이 담긴 우리 전통의 무술이기도 하지만 개인적으로도 훌륭한 운동이라는 것은 지난 50년동안 몸으로 익히고 배워서 잘 알 수 있었습니다. ”
그는 전남 고흥 출신으로 중고등학교를 고향에서 졸업한 뒤 경찰 생활을 20년 하다가 김대중 대통령 시절 정치에 입문했다. 민주당 전국 청년 위원장과 노원병 지구당 위원장을 거쳐 국민의당 원내 부대표, 20대 국회의원을 지냈다. 체육계에선 서울시 체육회 부회장, 서울시 태권도협회장 등을 역임했다. 용인대 체육과에 이어 정치에 입문하기 위해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학사, 고려대 정치학 석사, 국민대 법학대학원 박사 과정을 마친 만학도 이기도 하다.

[김학수 마니아타임즈 편집국장 kimbundang@maniarepor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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