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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박사 기자의 스포츠용어 산책 275] 아틀레틱 클럽 빌바오(Athletic Club de Bilbao)는 왜 영어 이름 ‘아틀레틱’을 쓸까

2021-01-28 06:25

아틀레틱 클럽 빌바오는 팀이름에서 바스크 민족주의를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사진은 아틀레틱 빌바오와 발렌시아 경기 장면. [EPA=연합뉴스]
아틀레틱 클럽 빌바오는 팀이름에서 바스크 민족주의를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사진은 아틀레틱 빌바오와 발렌시아 경기 장면. [EPA=연합뉴스]
아틀레틱 클럽 빌바오(Athletic Club de Bilbao)는 스페인내에서의 사회· 정치적 성격을 잘 보여준다. 아틀레틱과 빌바오라는 이름 때문이다. 두 단어는 영어와 바스크어이다. 스페인어를 사용하지 않은 것은 스페인 주류와의 차별화를 드러내며 분리독립을 추구하고자 하는 의지의 표현이라고 해설할 수 있다.

아틀레틱은 영어로 운동이라는 의미이다. ‘아틀레티코(Atlético)’라는 스페인어를 쓰지 않고 영어를 쓴 것은 역사적인 배경을 갖고 있다. 연고지역인 빌바오는 스페인 북부지역, 프랑스에 가까운 바스크 지방의 중심도시이다. 빌바오라는 바스크어로 강 하구의 정착지를 뜻한다.

팀 이름을 영어와 바스크어를 쓴 것은 상징적인 의미를 갖고 있다. 바스크 민족주의의 정통성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이 팀은 클럽 운영에 확실한 원칙이 있다. 바스크 순혈주의로 불리는 선수선발이다. 한동안 바스크 혈통을 지닌 선수만 선발하는 것으로 유명했다. 바스크 지역에서만 태어난 선수만 선발한 게 아니다. 프랑스나 다른 나라에 있더라도 바스크 혈통인 선수들도 빌바오의 유니폼을 입을 수 있었다.

스페인 지도를 보면 빌바오의 지정학적인 위치를 쉽게 알 수 있다. 최북단 항구도시로 북해쪽으로 이어져 있다. 이 지역은 산업혁명의 발상지이자 축구를 가장 먼저 시작한 영국과 손쉽게 교류할 수 있었다. 빌바오에 축구를 전파한 것은 당연히 영국인들이다. 철강, 조선업에 종사하던 영국인들이 축구를 소개했으며, 영국에서 유학했던 빌바오 대학생들도 고향으로 들어와 축구를 전파했다. 빌바오에 들어와 있던 영국인들은 대개 영국 남부 항구도시 사우샘프턴, 포츠머스 등에 살던 사람들이었다. 1890년대 이들은 빌바오 축구클럽이라는 팀을 만들었다. 영국에서 돌아온 유학생들도 1898년 아틀레틱 클럽이라는 팀을 창설했다. 두 팀은 1901년 통합하기로 결정하고 1902년 비스카야(Bizcaya)라는 연합팀을 만들어 FA컵 격인 코파 델 레이(국왕컵)에 출전했다. 이 팀은 첫 출전에서 FC 바르셀로나를 누르고 우승컵을 차지했다. 1903년 두 팀은 현재의 팀이름인 아틀레틱 클럽 빌바오로 합병했다. 공교롭게도 같은 해 마드리드에서 공부하던 바스크 출신 학생들이 주축을 이뤄 아틀레틱 마드리드를 창단했다. 이 팀이 현재의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이다. (본 코너 274 ‘‘아틀레티코 마드리드(Atlético Madrid)’는 왜 팀이름을 영어에서 스페인어로 바꾸었을까‘ 참조)

아틀레틱 빌바오 엠블럼. 나치의 민간인 폭격을 고발한 피카소 그림 '게르니카'지역에서 유명한 참나무가 그려져 있다.
아틀레틱 빌바오 엠블럼. 나치의 민간인 폭격을 고발한 피카소 그림 '게르니카'지역에서 유명한 참나무가 그려져 있다.


아틀레틱 빌바오의 엠블럼에는 특색있는 빌바오의 상징물이 잘 나타나 있다. 방패 문장 안에 대각선 왼쪽 그림은 모두 빌바오를 대표하는 상징물들이다. 오른쪽에 있는 나무는 빌바오 지역 게르니카의 참나무로 바스크 지방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다. 게르니카는 원래 참나무로 유명했다. 피카고가 나치의 민간인 폭격을 고발하기 위해 그린 ‘게르니카’의 고장이기도 하다. 또 나무 옆에 그려진 건물과 다리, 강은 모두 빌바오의 상징물이다. 빌바오 시내를 흐르는 네르비온 강과 산, 안톤 교회와 다리를 나타낸다.

아틀레틱 빌바오는 라리가에서 정식 명칭은 아틀레틱 클루브(Club)으로 불린다. 영어 아틀레틱은 그대로 쓰고 클럽만을 스페인어로 발음한 것이다. 아틀레틱 빌바오는 라리가에서 레알 마드리드, FC 바르셀로나,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다음으로 많이 우승한 명문팀이다. 코파 델 레이에서는 FC 바르셀로나에 이어 두 번재로 많이 우승했다. 라리가에서 8회, 코파 델 레이에서 23회 우승을 차지했다. 리그의 두 번째 시즌인 1929-30시즌에는 무패로 우승컵을 들어 올리기도 했다. 스페인 리그 역사에서 무패로 우승한 팀은 빌바오 다음으로 1931-32시즌 레알 마드리드가 기록했을 뿐이다.

아틀레틱 빌바오에서 이름을 날린 선수는 전설의 골잡이 피치치를 들 수 있다. 피치치는 1911년부터 21년까지 빌바오에서 활약했던 공격수 라파엘 모레노의 별명이다. 당대 최고의 공격수였지만 만 29세라는 젊은 나이에 티푸스 발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당시에는 스페인 리그가 출범하지 않아 코파 델 레이와 지역리그에서만 활동했지만 그의 실력은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1920년 앤트워프 올림픽에서 스페인이 은메달을 획득하는데 수훈을 세웠다. 스페인 최대 일간지 ‘마르카’는 그를 기리기 위해 라리가 득점왕에게 수여하는 상인 엘 피치치(El Pichichi)’를 1952-53시즌부터 제정, 수여하고 있다. 엘 피치치를 가장 많이 받은 빌바오 선수는 그의 후배격인 텔모 사라이다. 사라는 빌바오에서 14년동안 활약하면서 6번이나 엘 피치치를 수상했다.

아틀레틱 빌바오의 홈구장인 에스타디오 산 마메스는 로마 시대에 박해를 받은 기독교도의 이름을 기리기 위해 지어졌다. 로마 군인들은 신앙을 버리지 않은 마메스를 사자 먹이로 던졌다고 한다. 이후 그의 이름에 성자의 의미인 '산(San)'을 붙여 산 마메스로 추앙했는데 이를 홈구장 이름으로 사용하게 됐다.

축구팀의 상징인 아틀레틱 빌바오라는 팀 명칭과 홈 구장 이름까지도 스페인 역사의 굴곡진 이야기가 담겨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김학수 마니아타임즈 편집국장 kimbundang@maniarepor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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