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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스포츠 100년](59)끝내 피하지 못한 조선체육회 해산(중)스포츠 통제로 조선체육회를 옥죄기 시작한 총독부

2021-01-21 10:38

1936년 조선체육회 정기총회 모습
1936년 조선체육회 정기총회 모습
조선총독부는 1933년에 접어들면서 서서히 체육 단체 통제의 흑심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이해 2월 9일 일본인 중심의 민간 임의단체인 조선체육협회의 기능과 조직체계를 바꾸었다. 일본체육협회를 본떠 총독부 학무국장이 실질적인 책임자가 되고 학무국 체육과 체육계가 중심이 돼 지휘 감독을 했다. 모든 경기종목별 대회는 경기종목별로 연맹을 조직해 독자적으로 치르도록 했으며 조선체육협회는 조선신궁경기만 주최토록 했다. 그리고 각 도에는 지부를 두었다.

이는 현재의 대한체육회, 시·도체육회 및 회원종목단체들과 비슷한 체제이지만 내용에서는 완전히 다르다. 지금은 서로가 자율성과 예산을 가지고 움직이는 있으나 당시에는 총독부 관리의 지휘 아래 모든 것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시스템이었다.

조선체육협회는 이러한 총독부의 비호 아래 경기별, 도별 산하단체를 조직하는 한편으로 각종 선수권대회를 창설하고 임의 단체들과 학교가 주최하던 대회를 모두 인수했다.

이러한 총독부의 조치는 조선체육회에 대한 총독부의 간여나 간섭이 임박했음을 예고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 실례로 조선체육협회가 주최한 대회와 기록은 공인해 주면서도 조선체육회와 그 회원 단체 및 협조단체들이 주최한 대회와 기록은 인정하지 않는 꼼수를 부린 것이 대표적이라고 할 수 있다.

이렇게 본격적으로 관권에 의해 통제가 시작될 즈음인 1933년 5월 30일 조선체육회는 교외 청량관에서 제14회 정기총회를 열고 일부 임원을 개편하고 일본인 경기단체의 활동을 압도할 만한 경기활동을 위해 경기부서를 대폭 강화했다.

조선체육회가 이날 다룬 안건 가운데는 기본적립금 2만 원 모집. 전 회원 500인 모집, 신문을 통한 체육사상 선전, 체육 노래 및 표어 제정, 체육주간 선정, 조선체육사 편찬, 체육유공자 표창, 체육 단체 통일, 종합경기대회 개최 등이 담겨 있다.

당시 조선체육회 가맹단체는 보성전문, 연희전문, 세브란스의전, 동아일보, 조선중앙일보, 조선일보, 전주신흥학교, 배재고보, 중앙고보, 양정고보, 보성고보, 휘문고보, 중앙기청학교, 경신학교, 동성상업, 중동학교, 경성실업전수, 협성실업, 대동상업, 조선농구협회, 고려육상경기회, 조선축구심판협회, 경성상공협회 등 23개에 이르렀다.

임원은 ▲회장 윤치호 ▲부회장 유억겸 ▲상무이사 김규면 ▲이사 보성전문, 연희전문, 세브란스의전, 동아일보, 조선일보, 배재고보, 양정고보, 휘문고보, 경신학교, 중동학교, 대동상업, 조선경구협회, 고려육상경기회, 조선권투구락부, 여운형, 박승빈, 서병의, 김동철, 백관수, 김영술, 이원식, 송진우, 김성수, 최재환, 현동완, 구자옥, 주요한 ▲감사 윤원상, 이상의 등이었다.

이와 함께 각 집행기관의 담당은 다음과 같았다.

►선전부=상무간사 김동철 ▻선전계=백관수, 황대연 ▻연구계=이원용, 이길용, 현정주 ▻조사계=이길용, 고봉오, 김태호, 이순재

►서무부=상무간사 박영진 ▻서무계=오덕연, 김용구, 황대선, 박진덕 ▻편집계=이일, 주요한 ▻경리계=김종선, 박영근, 한쾌선, 장병양, 김규면 ▻지방계=김성환 김종원

►경기부=상무간사 이순재 ▻육상계=고려육상경기회, 주흥근 ▻축구계=서병의, 이인규 ▻럭비1계=정문기, 이종구 ▻야구계=이찬, 이치규 ▻정구계=이세정, 강영철, 김영식 ▻농구계=조선농구협회, 최진순 ▻씨름계=조선씨름협회, 김동형 ▻수상계=김태식, 조영하 ▻빙상계=백구구락부, 피규어구락부 ▻유도계=한진희, 이경석 ▻검도계=강낙원 이종구

여기에서 보듯 집행부에는 여운형, 송진우, 김성수, 주요한 등 민족 진용의 거물들이 대거 포진해 있었고 경기부는 종목별 11개 계(係)로 광범위하게 편성했다. 1934년 창립 15주년 기념으로 5개 종목을 합쳐 전조선종합경기대회를 개최한 것도 일본인들의 체육단체에 맞서 활발하게 전개한 체육활동의 일환이나 다름없었다.

조선체육회 김규면 상무이사
조선체육회 김규면 상무이사
이 가운데 체육계 인사로 눈 여겨 볼 인물은 상무이사인 김규면이다. 김규면은 조선체육회 창립 당시 와세다대학 학생 신분이어서 실무부서에서 일 했지만 누구보다 유능한 체육행정가였다. 그는 대학을 졸업한 뒤 공동무역주식회사 전무로 있으면서 조선체육회 4대 위원, 5대 상무위원, 6대 위원장을 역임한 뒤 7·8대 상무위원을 거쳐 윤치호 회장 체제에서도 상무위원을 지냈다. 실제로 조선체육회의 모든 살림살이를 맡았다는 뜻이다.

그 뒤 김규면은 제10대 유억겸 회장 시절 부회장으로 있으면서 총독부의 강압으로 조선체육회가 조선체육협회에 흡수 통합될 때 책임자로 곤욕을 치렀지만 조선체육회가 첫발을 뗄 때부터 마지막까지 18년 동안 체육행정의 핵심이었다.

[정태화 마니아타임즈 기자/cth0826@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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