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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스포츠100년](44)마라톤이야기⑤까까머리 손기정, 2시간24분대 경이적 기록으로 2연패

조선체육회 주최, 조선중앙일보 후원 '전조선풀마라톤대회' --12시 사이렌소리로 출발

2020-11-02 15:26

1934년 조선체육회가 주최하고 조선중앙일보가 후원한 제2회 전조선풀마라톤대회 출발 모습. 오른쪽 맨끝에 손기정이 양정이라고 쓴 셔츠를 입고 출발하고 있다.
1934년 조선체육회가 주최하고 조선중앙일보가 후원한 제2회 전조선풀마라톤대회 출발 모습. 오른쪽 맨끝에 손기정이 양정이라고 쓴 셔츠를 입고 출발하고 있다.
김은배가 로스앤젤레스올림픽 마라톤에서 6위에 입상한 것을 계기로 마라톤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자 조선체육회는 1933년4월 30일 제1회 전조선풀·마라톤대회를 개최했다.

일본인체육단체인 조선체육협회가 1927년 제3회 조선신궁대회에서 마라톤을 실시한 뒤 6년이 지나서였다. 그리고 1931년 3월 21일에는 오늘날의 동아국제마라톤의 효시가 된 경영(경성~영등포)단축마라톤대회보다도 2년이 늦었다.

조선체육회가 주최하고 조선중앙일보가 후원한 제1회 전조선풀·마라톤대회는 고양, 시흥, 해주, 장연, 청주, 전주 등 각지에서 34명의 건각들이 참가해 4월 30일 종로 견지동 조선중앙일보 앞에서 열렸다.

대회에 앞서 주최 측은 참가선수 주의사항으로 첫째 번호표는 가슴 쪽에 실로 꿰매 떨어지지 않도록 하고 둘째 직업선수(아마추어 이외 선수를 지칭)나 도중에 선수를 교대할 경우는 입상을 하더라도 취소가 되며 셋째 심판은 코스 중간 중간에서 선수들의 번호를 반드시 확인하고 적도록 했으며 선수들도 반드시 코스를 밟도록 했다.

개회식은 오전 11시 정각 조선체육회 윤치호 회장의 개회사, 조선중앙일보 여운형 사장의 치사, 황해도 장연(長淵)에서 참가한 손정인의 대표선수 선수로 이어졌다.

윤치호 회장은 “이번 대회에 이같이 많은 선수가 참가한데 대해 감사 인사를 전하는 바이며 따라서 국제무대에서 활약한 경기인 만큼 더욱 좋은 기록을 내는 동시에 스포츠 정신을 잃지 말고 용감스럽게 싸워 달라”고 격려했다.

조선중앙일보 여운형 사장은 축사에서 “일찍이 극동올림픽대회에 오리(五里) 마라톤이 상해에서 열렸을 때 선수로 참가한 경험이 있어서 그때 감상으로는 우리 민족이 스포츠에 있어 다른 민족과 동일하게 될 수 있으며 또한 우수한 성적과 자신을 가지고 세계적으로 우리의 실력을 공인받을 수 있을 것”이라며 선수들의 분발을 당부했다.

이어 손정인은 “우리 선수 일동은 귀회 및 조선중앙일보사 후원 제1회 전조선풀·마라톤대회에 선수로 참가하여 운동정신을 발휘하는 동시에 세계적 선수가 될 교양을 함께 얻는다는 각오로 제반 규정을 각별히 준수하겠기에 이에 서약합니다.”는 선수대표 선서를 했다.

경기는 12시를 알리는 사이렌 소리에 맞춰 34명의 선수들이 한꺼번에 출발했다.

코스는 종로 견지동 조선중앙일보 앞을 출발해 종로 네거리로 나와 종로 5가~동소문~경원선 가도~의정부~망월사 입구 임시 정류장 근처까지 왕복하는 26과¼마일로 구성되었다.

우승한 선수에게는 조선중앙일보사가 특별 제작한 은제 컵을 수여했고 다음 대회 때까지 보관했다 반납을 하면 별도의 기념배를 주었다. 또 1~5위 입상자에게는 상품을, 그리고 참가자 전원에게는 기념 수건을 주었다.

이날 경기는 종로 2가를 지나면서 손정인(장연)이 앞서기 시작해 김성학(충주)이 20m 차이로 뒤를 따르고 3위부터는 50m 이상 차이가 났다. 이 순위는 미아리를 거쳐 화계사 입구를 지나 창동에 이어 망월사 입구까지 그대로 이어졌는데 이때까지의 시간을 보면 손정인이 1시간18분10초, 김성학이 1시간18분13초였으며 그 뒤는 모두 1시간20분이 넘었다.

반환점을 돌아 쌍문리 고개를 넘어서면서 이때까지 선두를 지키던 손정인의 페이스가 급격하게 떨어지기 시작했고 이에 김성학이 선두, 3위였던 안삼진(고양)이 2위로 올라섰다.

이때부터 김성학과 안삼진은 서로 선두를 주고받으면서 치열한 선두다툼을 벌였다. 그러다가 22마일 지점을 넘어서부터 김성학이 앞서기 시작해 동소문 고개를 김성학이 2시간30분15초, 안삼진이 2시간30분55초로 지나게 되었고 이때부터 김성학이 라스트 피치를 올려 2시간46분38초로 우승하고 안삼진은 2시간50분17초2로 2위, 최삼준(경성사범)이 2시간54분55초로 3위를 차지했다.

이 전조선풀마라톤대회는 손기정이 마라톤에서 명성을 떨치게 한 대회이기도 했다. 손기정은 1회 대회때는 불참하고 제2회 대회(1934년 4월 22일), 제3회 대회(1935년 5월 18일)에 출전했다. 이때 코스는 제1회 대회와 달리 경수가도(경성~수원)에서 펼쳐졌는데 제2회 대회서는 2시간24분51초2, 3회 대회서는 2시간24분10초로 우승하며 2연패의 쾌거를 이루었다.

그러나 전조선풀마라톤대회는 조선중앙일보가 동아일보와 함께 1936년 베를린올림픽에서 마라톤 금메달을 딴 손기정의 가슴에 붙은 일장기를 말소한 것과 관련해 무기한 정간을 당한 뒤 복간을 하지 못하고 그대로 폐간이 된데다 1937년 7월 4일 조선체육회마저 조선총독부의 강압으로 조선체육협회에 강제 통합돼 해산되면서 5차례 대회만 치르고 없어지고 말았다,

[정태화 마니아리포트 기자/cth0826@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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