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이미지 스토리] 고 이건희 회장과 레슬링은 찰떡 궁합

이신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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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 2020-10-25 1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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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이건희회장과 레슬링은 궁합이 잘 맞았다. 레슬링의 첫 번째 성공요인은 이건희 회장을 협회장으로 초빙한 것이었지만 이회장도 레슬링을 통해 동구권을 개척했고 IOC위원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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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슬링 세계선수권대회 대한민국 첫 금메달리스트인 장창선은 1980년 정부가 서울올림픽 성공적 개최를 위해 대기업회장에게 체육단체를 맡길 것이라는 소식을 들었다.

삼성의 이건희회장이 서울사대부고 시절 레슬링부에 들었다는 것을 알고 있었던 그는 바로 삼성회장 비서실에게 선을 댔고 삼성 역시 어차피 정부정책에 의해 팀을 맡을 생각을 하고 있었고 그렇다면 올림픽 금메달 종목인 레슬링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서로의 생각이 맞아떨어져 이건희씨가 레슬링협회 회장이 되자 어머니는 “학교때부터 말 안듣고 레슬링하더니 이제 회장이 됐네”라고 주위 사람들에게 이야기 했다고 한다.

레슬링은 복싱, 유도 등과 격투기 3형제로 불리면서 오랫동안 올림픽 효자종목 노릇을 톡톡히 했다. 80년 모스크바 올림픽에선 출전 자체가 무산되어 금맥을 잇지 못했지만 2016년 리우올림픽 전까지 매 대회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삼성 이건희 회장이 협회장을 맡으면서 레슬링에 엄청난 지원을 했다. 특히 선수연금을 다른 종목의 2배를 지급하며 레슬링을 키웠다. 레슬링 올림픽 메달리스트의 경우 체육회에서 지급하는 연금과 똑같은 액수의 격려금을 레슬링협회로부터 받는다.

삼성은 10여년간 레슬링협회를 맡으면서 3백여억원에 이르는 돈을 쏟아 부었다. 한국레슬링이 일본레슬링을 뛰어넘은 것도 삼성 덕분이었다.

한국 레슬링도 다른 종목처럼 일본으로부터 레슬링을 수입했고 초창기엔 일본으로부터 기술을 전수받았다. 그래서 오랫동안 일본 무섬증이 있었으며 각종 대회에서 일본선수와 만나면 꼬리부터 내렸다. 한국선수들이 가장 싫어하는 나라가 일본이었고 예선에서 일본선수를 만나면 운이 없는 것이었다.

삼성은 레슬링협회를 맡으면서 첫 번째 목표를 타도 일본으로 정했다. 그러자면 일본으로부터 기술을 배워서는 아니 될 일이었다. 그래서 먼저 시작 한 일이 동구권의 레슬링 강국으로부터 기술을 배우는 것이어서 과감히 동구권국가로 전지훈련을 갔다.

동구권의 사회주의 국가와 교류가 없던 시절이어서 전훈이 쉽지 않았지만 1986년 아시안게임에서 일본을 잡자면 달리 방법이 없었기에 체육회나 나라에서도 레슬링의 동구권 국가 전훈을 허락했다.

동구권 특히 헝가리와 소련 전훈을 통해 선진기술을 익힌 한국 레슬링은 서울 아시안게임에서 마침내 타도일본의 목표를 실천했다.

자유형 10체급, 그레코로만형 10체급 등 총 20개의 메달이 걸린 경기에서 한국 레슬링은 금메달 수에서 일본을 10-7로 눌렀다. 대한민국이 레슬링을 시작한 후 처음으로 일본을 꺾은 것으로 레슬링의 세계화는 1984년 LA올림픽에서 시작되었다.

1984년 LA올림픽에서는 그레코로만형의 김원기가 금메달을 획득, 광복 후 두 번째 금메달리스트가 되었고 자유형의 유인탁도 허리부상 속에서도 처절한 투혼을 발휘하며 금을 추가했다.

88년 서울올림픽에선 그레코로만형 74kg급의 김영남이 서울 올림픽 첫 금메달을 건져 올린데 이어 한명우가 자유형 82kg급에서 금메달을 추가했다.

레슬링의 올림픽 금맥은 이후에도 계속되었다.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에선 그레코로만형의 안한봉과 자유형의 박장순이 금메달을 따냈고 96년 애틀랜타 올림픽에선 심권호가 그레코로만형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심권호는 올림픽, 세계선수권대회, 아시안게임 등 레슬링그랜드슬램을 달성한 선수로 2000년 시드니 올림픽에선 체급을 48kg급에서 54kg급으로 올려 역시 금메달을 획득했다. 올림픽 2회 연속 금메달은 메달밭 레슬링에서도 아직까지도 그가 처음이자 마지막이다.

이건희 회장은 대한레슬링 협회장에 취임하는 날 레슬링 발전을 위해 강한 드라이브를 걸겠다고 약속했다. 다만 걱정은 사람들이 ‘돈을 너무 많이 쓴다’고 말하는 것이라며 무한투자를 약속했다.

삼성은 레슬링을 후원하면서 대표선수들과 함께 국내에선 가장 먼저 헝가리 등 동구권에 진출했다. 그리고 대회 최우수선수들에게 부상으로 삼성 TV를 제공했다. 국교가 열리기 전임에도 동구권에선 1980년대부터 삼성TV가 부의 상징이 되었다.

이건희 회장은 레슬링을 키웠고 레슬링이 올림픽 때 마다 금메달을 따면서 대한민국이 레슬링 강국이 되자 IOC위원 물망에 올랐다. 다소 시간이 걸렸지만 1996년 애틀랜타올림픽 총회에서 개인자격의 IOC위원이 되었다. 개인자격의 IOC위원은 우리나라에서 김운용씨등 2명밖에 없다.

[이신재 마니아리포트 기자/20manc@maniarepor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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