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체육 100년100인100장면] 34. 여 핸드볼- 임오경과 ‘우 생 순’

이신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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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 2020-10-18 06: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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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 세 살의 아줌마.

다시 태극마크를 달 일은 없다고 생각했다. 그런데도 단호하게 자를 수 없었다. 나라가 필요하다고 하고, 코치들이 오라고 하고, 후배들이 기다린다고 했다.

과연 돌아가는 게 옳은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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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오경은 1988년 18세의 나이로 국가대표팀에 뽑혔다. 그러나 올림픽엔 나서지 못했다. 어린 나이와 경험부족 등으로 1988 서울 올림픽 최종 명단에는 선발되지 못했다. 서울올림픽의 첫 금을 보며 꿈을 키운 그는 올림픽 후 대표선수로 뽑혔다.

그리고 1990년 베이징 아시안 게임과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 금메달을 이끌었다. 올림픽 2연패의 여자핸드볼은 1995년 부다페스트 세계선수권대회에서 덴마크, 헝가리를 차례로 꺾고 세계선수권 첫 우승을 차지했다. 대한민국의 우승 주역인 임오경은 대회 MVP로 선정되었다. 세계 최고의 플레이어임을 다시 한 번 확인한 것이었다.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 여자핸드볼은 올림픽 3연패에 도전했다. 임오경은 여전히 주전 공격수였다. 우승 문턱에서 덴마크에게 패해 준우승했다. 아쉬운 은메달이었지만 대한민국의 여자 핸드볼 상황을 취재했던 외신들은 ‘기적의 은메달’이라고 했고 여전히 임오경을 세계최고라고 추켜 세웠다.

두 번의 올림픽에서 금메달과 은메달을 1개씩 모은 임오경은 태극마크를 내려놓았다. 2000년 시드니 올림픽에도 나설 생각을 했고 대표 팀에서도 그를 찾았지만 뜻하지 않은 임신과 출산으로 미련을 버렸다.

그러나 끝이 아니었다. 대한민국 여자 핸드볼이 2004 아테네 올림픽 아시아지역 예선에서 탈락했다.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마지막 기회는 있었다. 2003년 12월 크로아티아에서 열리는 세계선수권대회에서 5위안에 드는 것이었다.

비상사태. 협회는 처절한 승부사 임영철을 감독으로 앉혔다. 임감독은 ‘아줌마 선수’들의 도움없이는 불가능하다고 판단했다. 일본에 있는 임오경에게 전화했다. 돌아오겠다고 대답할 때 까지였다. 임오경은 언제나 자랑스러운 태극마크를 결심했다.

오영란, 허영숙, 오성옥도 그렇게 합류했다. ‘아줌마 부대’가 된 대한민국 여자핸드볼 대표팀은 크로아티아 세계선수권대회에서 3위를 차지, 아테네 올림픽 행을 결정했다.

2004년 아테네. 쉽지 않은 여정 끝에 결승에서 또 덴마크를 만났다. 절치부심의 한판이었다. 예선리그에서 29-29로 무승부를 이룬 뒤였다. 대한민국은 프랑스, 덴마크는 우크라이나를 꺾고 결승에 올랐다.

피할 수 없는 운명. 치열한 일진일퇴의 공방전이었다. 전반전 14-14, 후반전 25-25, 1차 연장 29-29, 2차 연장 34-34. 19차례나 동점을 이루며 엎치락뒤치락했으나 끝내 우열을 가리지 못하고 페널티 스로(승부 던지기)에 들어갔다. 아쉬운 2-4패.

세계 핸드볼 사에 영원히 남아있는 명승부로 이 ‘금빛 찬란한 은메달’은 영화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우생순)’으로 대중 앞에 공개되었다.

[이신재 마니아리포트 기자/20manc@maniarepor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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