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야구 손자병법]32-⓼ 3金의 전쟁

이신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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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 2020-07-07 0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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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김응용과 김성근

두 감독 승부의 백미는 2002년 한국시리즈.

전자업계의 라이벌 삼성과 LG의 수장으로 만났다. 이 때의 피 말리는 접전 때문에 라이벌 운운하지만 두 감독은 사실 라이벌 상황을 연출하지는 않았다.

통산 승수 1, 2위, 한국시리즈 우승 횟수 1, 2위 등을 보면 그럴 만도 하지만 포스트시즌의 단기전 결과만 보면 일방적이다.

87년 플레이오프전에선 김응용의 해태가 김성근의 OB를 3승2패로 눌렀다. 89년 플레이오프전 역시 해태의 김응용이 김성근의 태평양을 3승으로 완파했다.

김응용의 한국시리즈 우승 10회는 2002년 전에 이루어 진 것이고 김성근의 한국시리즈 우승은 김응용이 일단 지휘봉을 놓은 다음에 만들어졌다. 함께 뛰긴 했지만 둘의 진검 승부는 늘 엇박자였다.

한국시리즈는 2002년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6차전에서 시리즈를 마감하고 가진 기자회견에서 김응용 감독이 말한 내용 덕분에 김성근 감독은 이후 ‘야신(野神)’으로 불렸다. 하지만 그 말은 또 다른 한마디를 상상하게 하는 묘한 뉘앙스의 말이었다.

“아, 정말 힘들었어요. 김성근 감독이 얼마나 잘하던지. 투수 교체도 딱 해야 할 때 하고 대타도 꼭 낼 선수를 내고. 야구의 신하고 경기하는 줄 알았다니까”

김응용이 고생한 건 맞다.

경기 전 예상은 삼성의 어렵지 않은 우승이었다. 삼성의 한국시리즈 저주가 아무리 강하다 해도 역전의 맹장 김응용이 버티고 있고 페넌트레이스 1위인 선수단 진용 역시 상당한 우위여서 4연승으로 끝낼 수도 있었다.

김성근은 한국시리즈에 도착할 때쯤엔 탈진 상태였다.

김성근의 LG는 턱걸이로 포스트 시즌에 나섰다. 첫 상대는 현대, 이기면 기아였다. 전력상 우위를 점하지 못한 터에 포스트시즌이 끝나면 물러나야 하는 2중고 속에 있었다. 하지만 현대를 2연승으로 보내고 2승1패로 앞서던 기아마저 마지막에서 2연승하며 제꼈다.

단기전의 피로도는 장기레이스의 그것보다 훨씬 심하다. 긴장도와 집중도가 장난이 아니다. 평소 레이스의 2~3배로 보면 된다. 한국시리즈 전에 이미 7게임. LG는 체력, 정신력 모두 바닥이 난 상태다.

만신창이의 LG. 예상대로 1차전은 김응용의 승리로 끝났다.

김성근은 2차전 승리로 맞불을 놓았으나 3, 4차전 패배로 벼랑에 몰렸다. 김응용의 매직넘버는 1.

누구나 김응용과 삼성의 승리를 예상 했지만 한국시리즈는 바로 그때가 시작이었다. 김성근은 경기 전 특유의 마운드 벌떼 작전을 구상하고 있었다. 연이어 경기를 치르느라 확실하게 내놓을 투수가 없었다. 1회 2-2, 4회 4-4의 경기가 후반으로 접어들면서 LG쪽으로 기울었다.

삼성의 실수 속에 8회 8-4의 승기를 잡았다. 김성근의 기록지는 난수표처럼 어지러웠다. 한 회면 한고비는 넘기는 상황에서 삼성이 갑자기 힘을 발휘했다. 옛날의 삼성 같았으면 그대로 주저 앉았지만 끝까지 물고 늘어졌다. 9회 3점을 내며 따라붙었다.

그러나 김성근은 적절한 투수교체로 더 이상의 추격을 허용하지 않았다. 1점차의 신승이었다.

6차전도 LG분위기였다.

중반까지는 엎치락뒤치락. 양쪽 모두 믿을만한 투수 없이 타격전을 전개했다. LG는 8회초 2점을 더해 7-4의 스코어를 9-4로 넓혔다. 역전, 동점, 재역전으로 이어진 경기를 마무리 할 찬스.

김성근은 승부수를 띄웠다. 한 점만 더 내면 이긴다고 봤다. 1사 1, 2루에서 희생번트 사인을 냈다. 그러나 아뿔사, 타자가 삼진을 당하면서 더 이상 거리를 넓히지 못했다. 이제 남은 수비는 2번. 김성근은 그래도 막을 수 있다고 확신했다.

삼성도 간단치 않았다. 8회말 1점을 따라잡은 후 9회 말 1사 1, 2루의 기회를 만들었다. 하지만 타석에 서야 할 타자는 시리즈 20타수 2안타의 이승엽이었다. 그가 상대해야 할 투수는 이상훈. 많은 사람들이 대타를 생각하고 있었으나 김응용은 아무 말 하지 않았고 이승엽은 그대로 타석에 섰다.

초구 스트라이크. 대구구장은 찬물을 끼얹은 듯 조용했다. 패색이 짙어지고 있음을 모두 감지한 분위기였다. 두 번째 공도 스트라이크 존을 향했다. 동시에 이승엽의 방망이도 돌았다. 그리고 공은 우측 담장을 훌쩍 넘어가버렸다. 동점 3점 홈런.

김성근은 이상훈을 내리고 최원호를 올렸다. 하지만 이번엔 마해영의 끝내기 홈런 방망이가 돌았다. 이승엽과 마해영의 백투백 홈런으로 김응용은 힘들었던 시리즈의 종지부를 찍었다.

4승2패지만 한 게임 한 게임이 애타는 승부였다.

야구의 신, 이름하여 ‘야신’을 이긴 김응용. 그러면 ‘야신’을 이긴 김응용을 뭐라고 불러야 할것인가.

2. 김인식과 김응용

김응용과 김인식은 각별한 사이다.

김응용은 김인식을 프로야구 판으로 이끌었고 국가대표 감독 시절엔 누구보다 먼저 김인식을 찾았다.


가장 지근거리에서 김응용을 보좌한 김인식은 그래서 누구보다 김응용을 잘 안다. 김응용이 불뚝 성질로도 해태를 이끈 뒤에는 김인식이 있었다. 김인식은 김응용의 모난 부분을 소리없이 메꿨다. 팀 분위기에서 뿐 아니라 마운드 운영면에서도 많은 지원을 했다.

김인식은 김응용의 경기운영 스타일에 관해서도 잘 안다. 기습전보다는 강공작전을 선호하고 승부처에선 의도적으로 단순하게 밀어붙인다는 것도 안다. 이곳저곳에서 오랫동안 함께 했기에 머리로 보다는 느낌으로 먼저 알아챈다.

김응용은 상대적으로 김인식에 대해 잘 모른다. 늘 지원을 받은 편이어서 굳이 김인식을 많이 알 필요도 없었다. 함께 생활했지만 그동안의 상황은 김인식이 김응용의 머릿속을 더듬는 편이었지 김응용이 김인식의 눈치를 보지는 않았다.

김응용의 약점 한 가지는 자신처럼 뚝심으로 밀어붙이는 장수에게 약하다는 것이다. 김영덕, 김성근 등의 지장파들은 그래서 김응용에게 쉽게 당한다. 지략 보다는 자기와 같은 뱃심파에 약한 편인데 바로 강병철, 우용득, 김인식 등이 김응용의 약점이다.

지피지기면 백전백승이라고 했지만 2001년의 김인식은 알면서도 당할 수 밖에 없는 약졸군단의 사령탑이었다. 2001년 한국시리즈. 김응용의 삼성군단은 강했다. 시즌 1위로 일찌감치 한국시리즈에 올랐다.

두산은 허약체질이었다. 3위를 했지만 10승 이상을 작성한 선발투수가 한 명도 없었다. 게다가 한화와의 준플레이오프전, 현대와의 플레이오프전을 치르느라 기진맥진한 상태였다.

두 팀의 전력 차는 꽤 심한 편이었다. 현저하게 기울어진 운동장이었다.

다만 한 가지, 눈에 보이지 않는 요소가 있었다. 전쟁은 꼭 힘으로만 하는 건 아니다. 힘이 전부라면 조조의 백만대군이 적벽대전에서 촉오의 연합군에게 결코 참패하지 않았을 것이다.

김응용의 담금질로 삼성은 거듭났으나 완전치는 않았다. 우승을 매개체로 한 결사체였지 혈맹까지는 되지 않았다. 여전히 모래알 끼가 남아 있었다. 더욱이 한국시리즈에 대한 징크스도 완전히 털어내지 못했다.

삼성은 우세한 힘으로도 여러 차례 패한 전력이 있다. 조금 다른 건 그들에게 징크스를 안긴 주인공이 지휘봉을 잡았다는 점이었고 징크스에 대한 도전 양상이 새로워졌다는 점이었다.

김인식의 두산은 강하지 않았다. 약한 전력으로 한국시리즈 도전권을 따낸 것만도 상을 줘야 할 상황이었다.

그들의 보이지 않는 강점은 마음으로 묶여 있다는 것이었다. 물론 우승을 향한 것이긴 하나 우승만이 전부는 아니었다. 어차피 많이 기운 경기니 최선을 다하자는 마음 가짐이었다. 그들에겐 묘한 연대감이 있었다. 감독과 선수, 선수와 선수 사이에 흐르는 심리적 연대감 같은 것으로 그들 모두는 경기력이 아니라 마음으로 묶여 있었다.

김인식과 김응용의 2001 한국시리즈는 힘과 마음의 싸움이었다. 1차전은 예상대로 삼성이 가져갔다. 1차전 승리는 절반의 성공을 의미한다. 전력이 앞선 팀이 대부분 1차전을 가져갔다.

2차전은 두산이 비 덕을 좀 봤다. 예선전까지 치른 두산에게 하루의 휴식은 하루 그 이상의 꿀맛이었다. 김인식은 내친 김에 3차전에 이어 4차전까지 쓸었다. 삼성에 어두운 그림자가 내렸다. 또 징크스인가. 2회 8득점을 하고도 졌으니 그럴 만도 했다.

김응용은 징크스를 인정하지 않았다. 선수들을 몰아치며 5차전을 준비했다. 삼성의 대승이었다. 이제 코너에 몰린 삼성의 6차전이었다. 1회 먼저 치고 나갔지만 김인식은 끈질겼다. 순리대로 풀어나가며 7회말 2점을 내며 5-5 동점을 만든 후 8회말 기어코 역전 점을 올렸다.

예상을 뒤엎은 대 역전극이었다. 한국시리즈 무패의 김응용은 닮지 않았지만 닮은 후배 김인식에게 열 번만에 첫 패전의 수모를 겪었다. 김인식은 한국시리즈에서 김응용을 이긴 첫 번째 감독이다.

김인식과 김응용의 한국시리즈 승부도 이 한 번뿐이었다.

김성근과 김인식은 한번도 한국시리즈에서 만난 적이 없다.

김성근이 한국시리즈에 진출한 것은 2002년 LG가 처음이었고 그나마 우승은 2007년 이었다. 김인식은 두 차례의 한국시리즈 우승을 모두 그 전에 했다.

[이신재 마니아리포트 기자/news@maniarepor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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