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야구 손자병법] 24 장종훈과 시졸영아(視卒嬰兒)

이신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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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 2020-05-05 08: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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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야구 손자병법] 24 장종훈과 시졸영아(視卒嬰兒)

-병사를 어린 아이 보듯 하다. 병사를 사랑하는 자식처럼 보면 깊은 계곡에도 따라 들어가고 죽음까지도 불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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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를 막 졸업하고 들어온 연습생. 덩치는 쓸 만한데 이렇다 할 활약을 하지 못해 갈 곳이 없어 제 아버지를 따라온 ‘촌놈’. 먼저 말을 시키지 않으면 하루 종일 한마디도 하지 않는 녀석.

창단 팀 빙그레 이글스(한화 이글스)를 맡아 정신없었던 배성서 감독은 그 와중에도 한 선수에게 자꾸 쏠리는 시선을 거둘 수 없었다. 고등학교 때 야구를 했다지만 기본 틀이 잡혀 있지 않아 장래를 기약할 수 없었던 18세 장종훈이었다.

그는 연봉 6백만원에 입단, 팀의 궂은 일을 도맡아 하고 있었다. 주전이 되기엔 여러 가지 형편이 좋지 않았지만 배 감독은 내심 ‘물건 한 번 만들어 봐야겠다’고 다짐했다. 가능성 보다는 그의 성실한 태도 때문에 생긴 연민의 정에 가까웠다.

그렇게 마음 먹은 배 감독은 주전들의 훈련 뒷마무리를 위해 장비를 챙기고 있는 장종훈에게 다가가 한마디를 던졌다.

“열심히 해봐라. 프로는 실력이다. 나이가 어리다고 해서 주전으로 못 뛰는 것이 아니다. 선배들 뒤치다꺼리 하느라 시간 없다고 하지마라. 집이든 어디든 지쳐 쓰러질 때 까지 훈련해라. 다. 달밤에 체조한다는 소리까지 들어야 하는거”

감독의 그 한 마디는 어린 장종훈의 가슴에 깊이 남았다. 장종훈은 모두 떠나버릴 텅 빈 운동장에 혼자 남아 달리기도 하고 방망이를 휘두르기도 하며 훈련에만 매달렸다. 어디에 있든 오직 야구만 생각했다.

옥상에 올라가거나 동네 공터를 찾아 반드시 하루 1.000번 이상의 스윙을 하고 나서야 잠자리에 들었다. 손에 잡힌 물집이 터져 너덜너덜해져도 방망이를 놓지 않았다. 오히려 더 덤벼들었다. 굳은 살이 박혀 더 이상 물집이 잡히지 않았다.


비가 오는 날이면 좁은 방안에서 맨손 스위을 했다.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 머릿속에 맴도는 이미지 스윙을 하곤 했다. 단 하루도 거르지 않았다. 타격 폼이 잡혔고 스윙속도가 빨라졌다. 그야말로 누가 봐도 금방 알 수 있는 일취월장이었다.

그날 이후 틈만 나면 사기진작 용 멘트를 날렸던 배 감독은 매일 매일 달라지는 장종훈을 보면서 ‘물건이 다 됐구나’고 느꼈다. 그리곤 아직 멀었다는 코치들의 말을 뒤로 한 체 장종훈을 대타로, 대수비로 기용하면서 경기 감각을 익히도록 한 후 선발진에 넣었다.

1987년 4월 14일 대전 해태전. 장종훈은 유격수에 8번 타자로 나선 장종훈은 2루타를 터뜨렸다. 18세에 쏘아올린 프로 첫 안타였다. 그날 장종훈은 유격수로 실책도 저질렀고 타자로서 삼진도 당했지만 볼넷을 고르기도 했고 2타점을 올려 팀의 3-2승을 이끌었다.

그렇게 프로 무대에 뛰어들었지만 여전히 땡감처럼 떫었던 장종훈. 배감독은 그가 타석에 들어서기 위해 방망이를 잡을 때 쯤 불러 세워놓고는 작전 지시를 하는 척하며 히프를 치거나 어깨를 어루만지면서 격려를 하곤 했다. 장난을 치며 몸을 풀어주기 위해서였다.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홈런타자 중 한명인 장종훈. 그의 시작은 그렇게 아주 작았으나 ‘한화 이글스의 영원한 35번’ 으로 프로야구 무대에 통산1,950경기, 홈런 340개, 안타 1,771개, 타점 1,145점, 타율0.281의 대기록을 남겼다.

[이신재 마니아리포트 기자/news@maniarepor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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