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

[스포츠박사 기자의 스포츠 용어 산책 8] 축구는 왜 영어에서 ‘football'과 ’soccer'로 나눠 부를까?

2020-04-24 05:38

축구의 본 고장 영국에서는 정통축구의 의미로 '사커'보다는'풋볼'이라는 말을 사용한다. 사진은 지난 해 원더골을 터뜨림 토트넘 손흥민 골세리모리 모습. [연합뉴스 자료사진]
축구의 본 고장 영국에서는 정통축구의 의미로 '사커'보다는'풋볼'이라는 말을 사용한다. 사진은 지난 해 원더골을 터뜨림 토트넘 손흥민 골세리모리 모습. [연합뉴스 자료사진]
스포츠 종목에서 ‘축구’라는 단어는 가장 많이 쓰인다. 돈도 들지 않고 평평한 운동장에서 볼 하나만 있으면 가능한 축구는 세계에서 가장 많이 즐기는 운동이다. 국제축구연맹(FIFA) 회원국이 UN(193개국)보다 많은 211개국이고, 축구를 하는 전 세계인구는 2억4천만명에 이른다. 월드컵은 세계 최고의 축구대회로 올림픽에 못지않게 많은 세계인들의 주목을 받는다. 당연히 신문, 방송, 인터넷 언론 등에서 스포츠를 보도할 때 축구가 가장 많이 등장한다.

축구라는 말은 사실 태어난 지 150년도 되지 않았다. 한국, 일본, 중국 등 동양 삼국에서는 축구 이전에는 축구라는 운동이 없었다. 영국에서 처음으로 생긴 종목이다. 일제 강점기에 본격적으로 일본어로 유입됐으니 벌써 일상적으로 사용된 지가 꽤나 오래됐다. 사실 축구가 처음 한반도에 전래되던 구한말 영국 해군이 제물포항에 입항하여 편을 갈라 축구 경기를 한 적이 있었다고 한다. 경기가 끝난 뒤 구경을 나온 한국 사람과 공을 가지고 놀았는데, 운동 경기의 이름을 몰라서 제기나 공을 찬다는 의미인 ‘척구(踢球)'라는 말로 표현하였다고 전해졌다.

축구(蹴球)는 ‘공을 발로 찬다’는 뜻을 지닌 한자어로 종목의 특징을 잘 드러나게 한 말이다. ‘축’이라 말은 영어로는 ‘foot'에 해당하지만 좀더 행동적인 의미를 담고 있다. 한자 ’蹴‘은 발 ’족(足)’ 부수와 이를 ‘취(就)’로 짜여져 있는데 공과 같은 어떠한 사물을 뒤쫓아 발로 찬다는 의미이다. 영어를 그대로 번역하면 ‘족’ 정도가 될 수 있지만 좀 더 의미를 담아 ‘취’자를 보탠 ‘축’을 사용한 것이다. 원래 동양에서 축구라는 개념의 운동이 없었기 때문에 말과 의미를 살려 고안했던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 중국 고대시대에 ‘축국(蹴鞠)’이라 불리는 운동이 있었으며 이것이 서양으로 건너가 축구로 발전했다는 설이 있으나 근거는 미약하다.

전 세계적으로 축구를 영어로 지칭할 땐 풋볼(football)과 사커(soccer)라는 두 단어를 혼용하고 있다. 공(ball)을 발(foot)로 다루는 종목이기 때문에 풋볼은 쉽게 이해되지만 사커의 어원은 좀 아리송하다. 두 단어를 쓰게 된 것은 축구를 만든 영국의 특별한 환경 때문이었다.

서구에서 가장 먼저 산업혁명에 성공한 영국은 산업혁명의 여파로 도시화, 산업화가 진행되는 가운데 시민들의 여가와 건강을 도모하기 위하여 다양한 스포츠를 고안해 현대스포츠의 본고장이 됐다. 1800년대 중반 영국에서 풋볼은 무질서하게 행해졌다. 일반 서민들을 중심으로 런던을 비롯한 대도시와 시골 등에서 제각각의 로컬룰을 갖고 경기를 가졌다. 통일된 경기규칙의 필요성을 절감한 각 그룹의 대표들이 1863년 10월26일 런던에서 모여 규칙 마련을 위한 제1차 회의를 가졌다. 민주적 과정을 거쳐 회의가 진행됐기 때문에 쉽게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 .같은 해 12월 8일 개최된 제6차 회의에서 협회가 규칙을 통일하고 공인된 규약과 경기규칙을 만들 것을 결의했다. 협회가 인정하는 경기규칙에 의한 축구가 생겨난 것이다.

풋볼과 관련한 어원의 탄생 과정은 영국의 스포츠 역사와 관련이 깊다. 축구를 좋아한 영국의 대표적인 사회학자 앤서니 기든스가 발표한 축구의 사회사에 관한 논문에 따르면 럭비는 원래 중상층 스포츠이었던데 반해 축구는 노동계급에서 좋아하는 운동이었다고 한다. 당초 럭비는 규칙이 많고 까다로웠던 반면 축구는 규칙이 비교적 간단해 노동자층에서 즐겼다는 설명이다. 영국에서 ’럭비스쿨‘이 ’이튼 스쿨‘과 함께 일찍이 귀족학교로 자리잡은 이유이기도 한다. 1863년 잉글랜드 축구 협회(The Football Association)가 처음 창설 되었을 때, 럭비를 의미하는 ‘rugby football'과 구분하기 위해 ‘어소시에이션 풋볼(association football)' 이라고 불리다가, 현재에는 간단히 '풋볼(football)'로 불리게 되었다.

사커는 '어소시에이션 풋볼'이 축약되면서 '어소시에이션'의 일부인 'ssoc-'에 영어에서 사람을 뜻하는 어미 '-er'이 합해져 생겨났다고 한다. 이런 연유로 인해 풋볼은 축구의 원조에 가까운 단어이고, 사커는 변형된 단어라고 봐도 무방하다.

축구가 세계적인 스포츠가 된 오늘날, 많은 나라에서 ‘사커’보다 풋볼을 더 흔히 사용하는 경향이 있다. 유럽, 아시아, 아프리카, 카리브해 그리고 중미에 걸친 나라들에서 일반적으로 풋볼로 쓴다. 한국에서는 한때 다른 유사 축구와의 혼동을 피하기 위해 ‘아식축구’(←association式蹴球)라는 용어를 사용한 적 있었다. 현재 일본에서는 영어 단어 ‘soccer’를 발음한 ‘사커(일본어: サッカー 삿카)’를 사용한다. 하지만 과거엔 일본에서도 축구(일본어: 蹴球 슈큐)라는 단어를 썼다. 같은 한자 문화권인 중국이나 타이완서는 족구(중국어: 足球)라는 이름을 사용하고 있다. 그러나 한국어에서 말하는 족구는 다른 스포츠이다. 미국에서는 풋볼이 미식축구를, 사커는 정통축구를 의미하지만 미국 이외의 나라에서는 풋볼이 정통축구를 뜻하는 표현이다.

[김학수 마니아리포트 편집국장 kimbundang@maniarepor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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