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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박사 기자의 스포츠 용어 산책 6] 영어 세 단어를 두 단어로 줄인 합성어 '사사구'

2020-04-22 06:25

  지난 해 프로야구 키움 대 롯데 경기서 키움 박병호가 롯데 선발 서준원이 던진 공에 맞고 있다. [연합뉴스 자료사진]
지난 해 프로야구 키움 대 롯데 경기서 키움 박병호가 롯데 선발 서준원이 던진 공에 맞고 있다. [연합뉴스 자료사진]
문학평론가 이어녕 이화여대 명예교수가 지난 1982년 일본어로 처음 펴낸 ‘축소지향의 일본인’에는 일본인들이 여러 물건을 축소해 만든 사례들이 소개돼 있다. 접었다 폈다하는 쥘부채는 원래 중국에서 만든 부채를 일본인들이 축소해서 개발했으며, 트랜지스터와 워크맨으로 대표됐던 일본 전자산업도 일본인들의 축소 정신으로 가능했다고 주장했다.

축소를 통해 세상을 보려는 일본인의 정서는 언어의 조어법에서 잘 드러난다. 일본식 야구 용어에서 이를 잘 알 수 있다. 일본인들은 자신들의 인식이 반영된 번역을 통해 일본식 야구 용어를 만들어 냈다. 사사구, 포볼, 데드볼 등이 대표적인 예이다.

사사구는 ‘사구(四球)’와 ‘사구(死球)’의 합성어이다. 조해연의 ‘우리말 야구용어 풀이’에 따르면 둘은 일본이 자의적으로 통합한 플레이 형태라고 말 할 수 있다. 두 가지 모두 타자가 걸어서 출루하는 플레이지만, 미국야구규칙에는 원래 이 두 가지를 각각 독립된 플레이로 규정하고 있다. 국제적인 인정을 받지 못하는 용어이고 플레이 형태인 것이다.

‘사구(四球)’의 원래 영어 명칭은 ‘Base on balls'이다. 심판이 투수가 던진 공을 4차례 ’볼‘이라고 선언하면 타자가 아웃되지 않고 걸어서 1루로 나가는 것을 말한다. 일명 ’Walk‘라고 불렀다. 이 영어가 일본식 한자어로 사구(四球)’가 됐다. ‘넉 四’에 ‘공 球’로 간결하게 줄였다. 일본식 영어로 ‘포볼 (Four ball)이라고도 불렀다. ‘사구(死球)’의 영어 어원은 ‘Hit by pitch'이다. 투수가 던진 공이 타자의 몸에 맞는 상황을 말하는 용어인데 일본 사람들은 이를 ‘사구(死球)’로 쓰고 영어로 '데드볼‘이라고 불렀다. 투수가 던진 공에 맞은 것이 '죽은 공'이 됐다는 표현으로 옮긴 착상이 기발하다는 생각이 든다. 사사구의 공통점은 영어 3개의 단어를 일본어로는 2개의 단어로 압축을 시켰던 것이다. 여기에 일본인의 축소 정신이 배어있음을 알 수 있다.

일본 메이지 시대, 일본 근대문학에 많은 영향을 남긴 마사오카 시키(正岡子規)는 탁월한 언어감각으로 ‘사사구’라는 일본식 한자어를 고안해 냈다. 일본 특유의 짧은 단가인 ‘하이쿠’ 대표시인이기도 했던 그는 여러 영어 용어들을 당초 원어적 의미를 잘 살리면서 최대한 단어를 축소하는 형태로 일본화된 말로 만들어냈던 것이다.

한동안 우리나라에서는 일본 식민시대의 영향으로 사사구, 포볼, 데드볼이라는 용어를 즐겨 썼다. 이 말을 쓰지 않으면 야구를 할 수 없을 정도로 당연하게 많은 야구인들과 일반인들이 마치 우리 말인듯 사용했다. 하지만 1980년대초 프로야구가 출범한 이후 야구 용어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하자는 분위기가 이어지면서 4구를 ‘볼넷’으로, 사(死)구를 ‘몸에 맞는 공’으로 고쳐 부르게 됐다. 이어녕 교수 같은 문학가들이 일본인의 정체성에 경종을 울리며 우리 한국인들의 자각심을 일깨우고 우리 말의 언어 전선을 넓히는 데 많은 역할을 할 덕분이 아닐까 싶다. 일본의 마사오카가 번역과 글쓰기를 근대의 인식체계로 여기고 서양문명을 소화해 자기들만의 논리와 문화로 만든 것처럼 말이다.

[김학수 마니아리포트 편집국장 kimbundang@maniarepor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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