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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농단 사태가 불러온 방송연예가의 봄[문화연예 연말정산 ①] 드라마·예능 속 풍자, 연예인 시국발언 '봇물'

붉은 원숭이의 해인 2016년은 굵직한 사건·사고가 끊이지 않아 말 그대로 '다이내믹'한 시기였습니다. CBS노컷뉴스가 올 한 해 문화·연예계에서 나타난 인상적인 흐름을 되짚어 보는 '연말정산' 특집을 준비했습니다. [편집자 주]

 

 

글 싣는 순서
① '국정농단 사태'가 불러온 방송연예가의 '봄'
<계속>

지난 9월, 아직 일반인들에게는 낯설었던 '최순실'이라는 이름이 신문 지면에 등장했다. '설'로만 돌았던 박근혜 대통령의 '비선실세' 존재가 수면 위로 떠오르고, 어떻게 국정이 농단되고 있었는지가 드러나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어느 때보다 무거운 시국이었으나, '방송연예가'의 분위기는 달랐다. 그간 위축돼 있던 시간을 뒤로 하고 작품 속에 현실을 담아내면서 이에 대해 '말'하기 시작했다. 뜻밖의 '봄'이 찾아온 것이다.

◇ 엄숙한 시국, '물 만난' 풍자개그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는 예능에서의 풍자 개그 시대를 다시 한 번 열었다. 위쪽부터 MBC '무한도전', SBS '웃찾사-살점', KBS '개그콘서트-대통형' (사진=각 프로그램 캡처)

'예능 프로그램'이 어지러운 시국에 대한 풍자에 가장 먼저 뛰어들었다. 지난 10월 29일 방송된 MBC '무한도전'은 하필 '그래비티' 특집이었고, '온 우주의 기운을 모아서 출발'이나 '상공을 수놓는 오방색 풍선' 등의 자막과 "우주의 느낌을 좀 받았어요"라는 발언으로 '우주'를 사랑했던 박 대통령의 취향을 언급했다. '무한도전'은 박명수의 캐릭터를 앞세워 박 대통령의 '불통 정치'를 묘사하기도 했다. 자신에게 불리한 얘기가 나오면 못 들은 체할 때에는 '끝까지 모르쇠인 불통왕'이라는 자막을 달고, 박명수가 무중력 실험을 위해 하늘로 오르기 전 흥분된 상태에서 "온 나라가 웃음꽃이 피고 있어요"라고 하자 "요즘 뉴스 못 본 듯…"이라는 자막으로 한 방 먹이는 식이었다.

가장 적극적으로 '풍자 개그'를 하고 있는 곳은 SBS '웃찾사'다. 'LTE 뉴스'는 현 시국에서 자기들끼리 싸우고 눈치만 보고 있는 정치권은 "삼류"이고, 그나마 사과하는 정치인들은 "이류"지만, 100만 명이 넘게 모인 촛불집회에서 보여준 국민들의 모습은 "일류"라고 라임 개그를 한다. '내 친구는 대통령'은 "지나간다. 이 고통은 분명히 끝이 난다"(김범수 '지나간다'), "여기까지가 끝인가 보오. 이제 나는 돌아서겠소"(김광진 '편지') 등 의미심장한 가사로 대통령의 처지를 말한다. '살점'은 노래 개그, 영화·드라마·노래 얘기를 하겠다며 왕이 두 명으로 나오는 '광해', 박 대통령과 최태민 씨가 등장하는 '제4공화국', 촛불집회 장소를 떠올리게 하는 '광화문 연가'를 추천하는 '시국 토크'를 벌인다.

KBS '개그콘서트' 역시 '민상토론2'와 '대통형' 등의 코너로 풍자 개그에 가세했다. 1년 여 만에 부활한 '민상토론2'에서는 검찰의 부실수사, 최순실 씨의 연설문 고치기, "이러려고 개그맨이 됐나 자괴감이 든다"는 박 대통령의 담화문 패러디를 언급했고, 우병우 전 민정수석의 검찰 조사 태도 흉내를 냈다. '민상토론2' 후속코너로 등장한 '대통형' 또한 '뭘 잘 모르는' 대통령을 필두로 벌어지는 국무회의 상황을 다루면서 청와대의 비아그라·각종 주사 구입 및 해명, 대통령의 서면 보고 요구, 세월호 참사 당시 박 대통령이 했다던 '올림머리' 등을 고루 다루고 있다.

 

 

 

 

   
위쪽부터 tvN 'SNL코리아8', JTBC '말하는대로' (사진=각 프로그램 캡처)

이밖에도 tvN 'SNL코리아8'과 KBS '개그콘서트'에서는 흰 셔츠를 입고 선글라스를 머리 위에 올린 캐릭터를 통해 최순실 씨의 '외양'과 검찰 출두 장면 등을 묘사했다. JTBC '말하는대로'는 방송인 유병재를 통해 "좋은 친구를 사귀면 연설문을 직접 안 써도 된다"거나 "5%면 내려와야 한다"는 신랄한 '버스킹 개그'를 선보여 화제를 모았다. SBS '런닝맨', KBS '슈퍼맨이 돌아왔다'도 각각 "여부가 있겠습니까. 실세의 말을 따라야지요", "순하고 실한데", "무정부 상태", "간절하게 원하면 우주가 나서서 도와준다" 등의 자막으로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를 언급한 바 있다.

이같은 '풍자 개그'의 동력이 되는 것은 출연진과 제작진의 '의지'라고 볼 수 있다. '웃찾사' 안철호 PD는 "정치풍자를 못하는 코미디 프로그램은 '앙꼬 없는 찐빵'과 같다"고 말했다. 웃찾사에서 시사 개그를 하는 개그맨들은 매일 신문을 읽으며 핵심 소재를 고르고 웃음과 의미를 담을 수 있는 키워드를 찾아내고 있다는 후문이다.

◇ "가만히 있지 않았던" 드라마

예능이 '방송연예가의 봄' 물꼬를 튼 후, 드라마도 한국사회에 대한 '발언'을 이어가고 있다.

SBS '낭만닥터 김사부'는 12일 방송에서 뭐든지 돈으로 해결하려는 안하무인 '부자 엄마' 캐릭터와 '가짜 사망진단서'를 등장시켜 눈길을 끌었다. 음주운전 가해자 아들이 낸 6중 추돌사고 때문에 죽거나 다친 피해자의 상태보다는 아들의 해장을 더 중요시하고 '도내 실세'라는 위치를 무기로 갑질을 일삼는 모습과, "돈이 실력이고 부자 엄마가 스펙"이라는 대사에서 시청자들은 낯설지 않은 어떤 인물을 연상할 수 있었다. 구타 등 외부 충격에 의해 상처 입은 탈영병의 목숨이 위태로워지자 사인을 '외인사'가 아니라 '병사'로 표기할 것을 종용하는 장면은, 지난해 민중총궐기 당시 경찰의 물대포 직사로 의식을 잃었다 올해 눈 감은 백남기 농민의 죽음을 떠올리게 만들었다.

한국사회의 총체적인 무능을 다시 한 번 각인시킨 세월호 참사의 메시지를 반영한 드라마도 있다. 16일 첫 방송을 시작한 JTBC '솔로몬의 위증'은 크리스마스 밤 시체로 발견된 한 고등학생의 죽음을 두고 '가만히 있으라'는 어른들과 '진실을 찾으려는' 아이들이 등장한다. 강일수 PD는 "'가만히 있으라'는 말은 원작에도 비슷한 얘기가 나온다"며 "그 말 자체가 세월호의 아픔과 같이 가고 있고, 저도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으로서 어떤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고, 작품을 선택하고 작품 속에서 전하고자 하는 이야기에 영향을 미치지 않았을까. 무관하다고는 절대 말할 수 없을 것"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SBS '낭만닥터 김사부'에는 비선실세 최순실 씨와 백남기 농민 죽음을 떠올리게 하는 안하무인 '부자 엄마'와 가짜 사망진단서가 등장했다. JTBC '솔로몬의 위증'은 가만히 있으라는 어른들과 가만히 있지 않는 아이들의 '죽음 추적기'를 그렸다. SBS '시크릿가든'의 여주인공 길라임 배역은 박근혜 대통령과의 공통점이 많아 화제가 됐으며, JTBC '밀회'에는 최순실 씨 딸 정유라 씨와 동명인 캐릭터와 차움병원이 나와 '예언 드라마'로 재조명됐다. (사진=각 드라마 캡처)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부상하면서 '미래를 예견한 드라마'라며 과거 작품이 재조명되는 사례도 나왔다. 박 대통령이 차움병원에서 '길라임'이라는 가명을 쓴 사실이 드러난 후 급격한 관심을 받게 된 SBS '시크릿가든'(2011)을 예로 들 수 있다. '시크릿가든' 여주인공 길라임이 △어릴 때 부모를 잃은 점 △옷벗을 '라', 생각할 '임'이라는 한자를 써 '옷을 벗는다'(=특정한 자리에서 내려온다)는 의미를 지녔다는 점 △직업이 스턴트 우먼, 즉 대역 배우인 점 △미르 재단의 로고를 연상케 하는 용 문신을 하고 있던 점뿐 아니라 남녀 주인공의 '영혼'이 바뀌는 설정과 차움병원에는 실제로 '시크릿가든'이라는 공간이 있다는 점까지 모두 소환돼 대중 입길에 올랐다.

JTBC '밀회'(2014) 역시 '예언 드라마'로 꼽힌 작품 중 하나다. 최순실 씨의 딸과 동명인이자, 무속인 엄마 덕에 명문대에 입학하고 학점을 조작하는 정유라(진보라 분)가 등장하기 때문이다. 수업 출석체크 장면에서는 "125번 정유라, 126번 최태민(최순실 씨의 아버지이자 정유라 씨의 할아버지)"이라는 대사가 나오고, 호스트바 출신이었다 수입의류매장 주인이 되는 등 최 씨의 측근 고영태 더블루K 전 이사를 연상케 하는 인물이 나왔으며, 박 대통령이 이용했던 차움병원 간판까지 나와 "의도한 것 아니냐"는 반응이 많았다. 이화여대 출신이라 더 관심이 모아졌던 정성주 작가는 "우연의 일치"라며 이를 부인한 바 있다.

◇ 광장에서, 공식석상에서, SNS에서 '말'하는 연예인들

올해 가장 두드러지는 현상 중 하나는 연예인들의 '시국 발언'이 몹시 활발해졌다는 것이다. 방송인 김제동, 가수 이승환, 배우 김의성 등 공식석상에서나 SNS를 통해서나 자신의 견해를 드러내는 데 주저하지 않았던 이들을 비롯해, 수많은 연예인들이 촛불집회에 지지를 보내거나 직접 참석해 인증샷을 남기는 등 보다 적극적으로 말하고 행동하기 시작했다.

 

 

 

 

   
왼쪽부터 가수 이승환, 배우 김의성, 방송인 김제동 (사진=자료사진)

김제동은 "촛불 든 우리가 허수아비로 보이시는 모양인데, 필요할 때만 써먹는 국민으로 보이시나 본데, 주인과 종 구분을 못하시는 듯하여 김남주 시인의 시 한 소절 드립니다. '낫 놓고 ㄱ자도 모른다고 주인이 종을 깔보자 종이 주인의 목을 베어버리더라. 바로 그 낫으로'"(12월 1일) 등 페이스북을 통해 현 시국에 대한 발언을 거듭했다.

배우 김의성은 국정농단 사태의 진상이 밝혀져야 한다는 의미에서 SNS에 글을 올릴 때 '#그런데최순실은'이라는 해시태그를 달아 시선을 모았다. 그는 "국민을 속이고 이런 무능력하고 부도덕한 지도자를 만들어낸 자들, 더러운 뇌물을 안기며 거대한 이익을 챙긴 자들, 이들을 절대 잊지 맙시다"(11월 23일) 등의 글로 게이트 당사자들의 뻔뻔한 태도를 지적하고 촛불시민들을 위로했다.

가수 이승환은 아예 소속사 건물에 '박근혜는 하야하라'는 현수막을 걸어 대통령의 퇴진을 공개적으로 촉구하기도 했다. 그는 '하야가'와 광화문 촛불집회 현장 영상, 박 대통령의 대국민담화를 재구성한 기사 등을 공유하는 등 부지런히 SNS 활동을 한 데 이어, 지난달 12일에는 광장 무대에 올라 '덩크슛'을 부르면서는 주문 외우는 소절을 "하야하라 박근혜"로 바꾸어 부르기도 했다.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배우 이준, 가수 윤종신과 테니스 선수 전미라 부부, 배우 문정희, 가수 예은이 올린 인스타그램 사진 (사진=각 인스타그램 캡처)

촛불집회 무대에 오른 가수들의 소신 발언도 끊이지 않고 있다. 가수 전인권은 "여러분, 지금 이 사실을 세계가 지켜보고 있다. 세계에서 가장 폼나는 촛불시위가 되게 합시다"라고 했고, 가수 안치환은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를 "하야가 꽃보다 아름다워"로 고쳐 불렀다. 국회의 대통령 탄핵안 가결 직후에도 이같은 흐름은 멈추지 않았다. 가수 이은미는 "오랜 시간 대한민국엔 청산이란 역사가 쓰여진 적이 없었다. 어제가 제대로 된 청산의 역사가 쓰여진 첫 날"이라고 말했다. DJ DOC는 "저희가 무대 올라가기 전에 (박 대통령에게) 하야하라고 했거든요. 안 하고 있잖아요 그죠? 눈치가 없는 건지 머리가 나쁜 건지…"라고 꼬집었다.

촛불집회 인증샷 및 지지 발언을 SNS에 올리는 모습 역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배우 이준은 '박근혜OUT 국민희망'이라고 쓰인 풍선과 환히 켜진 촛불을 든 자신의 모습을, 원더걸스 예은은 LED 촛불 사진과 '#하야하라'라는 해시태그를, 가수 윤종신은 부인 전미라 씨와 함께 촛불집회에 참석한 사진과 함께 "#진보보수 #좌우 #정치성향의 문제가 아니다. 그냥 #선악의 문제다"라는 글을 게시했다. 방송인 허지웅은 촛불집회에 참가할 때마다 SNS를 통해 후기를 공유하는 한편, 현장을 담은 동영상을 나눴다. 가수 김동완은 촛불집회 생중계를 했고, 배우 문정희는 집회 현장 공연 동영상을 공유했으며, 배우 박신혜도 촛불집회 현장 사진을 올려 '인증'에 참여했다. 배우 김유정은 촛불집회에 못 온 이들을 위해 '항의의 전등끄기' 캠페인에 참여하자는 제안을 올리기도 했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이후 배우들의 시국 비판 목소리가 높아진 것도 눈에 띄는 변화다. 배우 정우성은 지난달 '아수라' 팬 단체 관람회에 참석해 즉흥 연기를 보여달라는 요청을 받자 "박성배 앞으로 나와!"라는 극중 대사를 "박근혜 앞으로 나와!"라고 바꾸어 시원한 웃음을 안겼고, 문화계 블랙리스트에 이름이 오른 것을 두고는 "우리는 우리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배우 이병헌은 청룡영화제 시상식에서 "지금은 현실이 '내부자들'을 이긴 상황 같다"며 "모두 한 마음이 되어서 절망적인 마음으로 촛불을 들고 있는 것을 봤는데 아이러니하게 그 장면을 보면서 분명히 저것이 희망의 촛불이 될 것이라는 믿음이 들었다"고 해 뜨거운 박수를 받았다.

활기를 띈 연예인들의 '소신행보'에 대해 하재근 문화평론가는 "연예계 또한 '최순실 게이트'에 직접적으로 피해를 받았거나 연관돼 있기 때문에 더욱 자기들 일이라는 생각이 들어 소신발언을 멈추지 않는 것"이라고 평가했다. 황진미 대중문화평론가는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평상시에도 모든 사람들이 각자 나름의 정치적 소견을 갖고 매 사안마다 의견을 피력할 수 있어야 한다"며 "(누구의 입에서 나왔건) 정치 사회적 발언이 많아지는 사회에서 시민사회적 역량이 높아진다고 본다"고 강조했다.

 

 

CBS노컷뉴스 김수정 기자 eyesonyou@c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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