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뇌과학자들은 반복 훈련이 뇌에 남기는 흔적을 '미엘린(myelin)'이라는 물질로 설명한다. 신경 회로를 전선이라고 한다면, 미엘린은 그 전선을 감싸는 절연 피복이다. 피복이 두꺼울수록 신호 전달은 빠르고 정확해진다. 그리고 이 피복은 오직 반복을 통해서만 두꺼워진다. 1만 번의 타석은 곧 1만 번의 배선 보강이다.
더 흥미로운 것은 '신경 효율성'이라는 개념이다. 숙련된 선수의 뇌는 같은 동작을 수행할 때 초보자보다 뇌의 활성 영역이 오히려 좁아진다. 쓸데없는 신호가 사라지고 꼭 필요한 회로만 정밀하게 켜진다. 야구에서 말하는 "힘을 뺀다"는 표현이 실은 신경학적 진실인 셈이다. 39세의 베테랑이 신인보다 덜 긴장하고도 더 날카로운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최정은 1987년생이다. 2005년 5월 7일, 인천 문학구장에서 LG 트윈스 투수 최원호를 상대로 처음 타석에 섰다. 그로부터 21년, 그는 구단 이름이 SK 와이번스에서 SSG 랜더스로 바뀌는 것을 지켜보면서도 단 한 번도 다른 팀 유니폼을 입지 않았다. 원클럽맨이라는 말이 단순한 의리가 아니라, 한 구장·한 팬·한 팀의 공기 속에서 미엘린을 쌓아온 선수라는 뜻이기도 하다.
1만 타석에 이르기까지 그는 3번 타자로만 6,453번 타석에 섰다. 전체의 85%가 3번에서 5번 사이 중심타순이었다. 팀이 막힐 때, 점수가 절실할 때 가장 많이 호명된 이름이 최정이었다. 통산 527개의 홈런은 그 신뢰의 축적이다.
수적천석(水滴穿石), 물방울이 바위를 뚫는다. 물 한 방울은 아무 흔적도 남기지 못한다. 하지만 같은 자리에 끊임없이 떨어지면, 결국 단단한 돌에 구멍이 난다. 1만 번의 타석이 정확히 그 이야기다.
이 고사는 중국 송나라 문인 나대경(羅大經)의 《학림옥로(鶴林玉露)》에 실린 일화에서 비롯됐다. 현령이 부임하는 고을에서 이 글귀를 보고 평생 행정 원칙으로 삼았다는 이야기인데, 결국 이 말이 남긴 교훈은 하나다. 위대한 것은 번뜩이는 재능이 아니라, 같은 자리에 매일 나타나는 꾸준함이 만든다.
1만 타석의 한 방울 한 방울이 쌓여, 어제 잠실구장의 바위에 구멍이 났다. 삼진조차 그 기록의 일부였다.
당신의 '1만 타석'은 무엇인가? 마라톤이든, 수영이든, 아니면 매주 같은 시간에 코트를 찾는 일이든, 뇌는 기억한다. 아주 느리게, 하지만 가장 확실한 방식으로. 오늘 한 번이 그 구멍을 조금 더 깊게 만든다.
[김기철 마니아타임즈 기자 / maniareport@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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