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45년 설립된 유네스코(UNESCO, United Nations Educational, Scientific and Cultural Organization)는 교육·과학·문화 분야에서 국가 간 협력을 통해 평화와 지속가능한 발전을 이루기 위해 설립된 국제기구이다.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Intangible Cultural Heritage of Humanity)은 2003년에 채택한 무형문화유산 보호 협약에 따라 운영되는 제도로, 각국의 전통 공연, 의식, 기술, 놀이 등 형태가 없는 문화유산을 보호하고 계승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당초 남한과 북한은 씨름을 각각 자국의 문화유산으로 유네스코에 등재하려 했다. 이는 국제사회에서 자국의 문화적 정통성과 독자성을 강조하려는 자연스러운 시도였다. 그러나 씨름이 특정 국가만의 전통이라기보다 한반도 전체에서 오랜 세월 공유되어 온 생활문화라는 점에서, 이러한 ‘분리된 등재’는 오히려 문화의 본질과 어긋나는 측면이 있었다. 같은 유산을 두고 서로 다른 이름으로 경쟁하는 모습은 문화의 보편성과 공동체성을 약화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본 코너 1751회 ‘왜 '씨름'이라 말할까’ 참조)
전환점은 2018년에 찾아왔다. 남북 관계가 완화되면서 문화 분야에서도 협력의 가능성이 열렸고, 씨름을 공동으로 등재하자는 논의가 본격화되었다. 이는 정치적 이해관계를 넘어, 문화가 공유의 영역이라는 인식이 반영된 결과였다. 국제기구 역시 이러한 흐름에 호응하며, 하나의 전통을 두 개로 나누기보다 공동의 유산으로 인정하는 방향을 선택했다.
결국 씨름은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대표목록에 남북 공동 유산으로 이름을 올렸다. 남한과 북한은 각각 다른 명칭을 유지하면서도 하나의 문화로 묶였고, 이는 유네스코 역사상 최초의 남북 공동등재 사례로 기록되었다. 이 과정은 문화유산이 국가의 경계를 넘어 존재할 수 있으며, 갈등을 완화하는 연결고리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씨름의 공동등재가 갖는 진정한 의미는 ‘함께 등재되었다’는 결과 그 자체에 있지 않다. 오히려 중요한 것은 그 과정에서 드러난 선택이다. 경쟁 대신 협력을, 분리 대신 공유를 택했다는 점은 앞으로의 문화 정책과 남북 관계에 중요한 시사점을 던진다. 문화는 정치처럼 단절될 수 없으며, 오히려 끊어진 관계를 잇는 가장 부드럽고도 강력한 매개가 될 수 있다.
물론 이러한 상징이 현실의 지속적인 협력으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꾸준한 노력이 필요하다. 공동등재가 일회성 이벤트에 그치지 않으려면, 학술 교류나 공동 행사, 교육 프로그램 등 실질적인 후속 협력이 뒤따라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씨름은 ‘함께 가진 유산’이 아니라 ‘함께 등재된 기록’으로만 남을 위험이 있다.
씨름은 오랫동안 모래판 위에서 서로를 넘어뜨리며 승부를 가르는 경기였지만, 이번 공동등재를 통해 또 다른 의미의 균형을 보여주었다. 힘으로 겨루는 경쟁이 아니라, 서로를 인정하는 공존의 방식이다. 씨름이 지닌 이러한 상징성은 오늘날 한반도에 필요한 가치가 무엇인지를 조용히, 그러나 분명하게 말해주고 있다.
[김학수 마니아타임즈 기자 / kimbundang@maniarepor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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