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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박사 기자의 스포츠용어 산책 1689] 북한 배구에서 왜 ‘듀스’를 ‘맞비김’이라 말할까

2026-02-08 04:40

2023년 항조우 아시안게임에서 북한 선수 경기 모습
2023년 항조우 아시안게임에서 북한 선수 경기 모습
외래어 ‘듀스’는 영어 ‘deuce’를 발음대로 옮긴 말이다. 이 말은 배구·테니스·탁구 등 경기에서 마지막 한 점을 남기고 동점이 된 경우를 뜻한다. 듀스는 원래 ‘동점’이 아니라 둘을 의미하는 프랑스어 ‘deux’에서 왔다. ‘2점 차 승부가 시작되는 상태’를 의미한다.

듀스는 서양어의 원형인 라틴어 ‘duo’에서 파생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프랑스어를 거쳐 영어권에서 ‘two’와 같은 의미로 쓰인다. 원래 스포츠 용어로 듀스를 쓴 것은 네트형 종목에서 서브를 공정하게 배분하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위키피디아에 따르면 듀스라는 말은 테니스 발상지 프랑스에서 나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테니스 용어로 2점 차이라는 의미인 프랑스어 deux에서 유래했다는 것이다. 1760년 듀스는 불운이나 악마를 의미하는 말로 쓰였다고 용어사전 등에서 언급하고 있다. 배구 경기를 생각한다면 듀스에서 지는 팀은 자존심은 물론 마음도 크게 상해 불운이나 악마를 연상할 수도 있을 법하다. 듀스가 불길한 의미로 쓰인 이유이기도 하다. (본 코너 481회 ‘왜 듀스(Deuce)라고 말할까’ 참조)
우리나라 언론은 일제강점기 때부터 듀스라는 말을 사용했다.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에 따르면 조선일보 1930년 6월9일자 ‘여상군분전석패(女商軍奮戰惜敗) 우승기(優勝旗)는무소속(無所屬)에’ 기사는 ‘시간관계로 량교응원단의 꿋칠줄몰으는 박수와 환호중에서 코—트에서 리화의『써비스』로 개전한바 마츰 강풍이 간혹불어서 량펀이 상당히 고전한결과 제륙『쌧트』에『듯스』를 거듭하다가 숙명이『투—스』하야 께임카트을 4—2로 리화가 쾌승하다’고 전했다. 당시 신문 기사에서는 국제 스포츠 용어를 그대로 옮기기보다, 발음에 가깝게 한글로 기록하는 사례가 많았는데, ‘듯스’는 음역한 듀스를 표기한 것이었다.

북한 배구에선 듀스를 ‘맞비김’이락 부른다. 이 말은 ‘서로 마주하다, 서로 같다’라는 뜻인 접두사 ‘맞’과 ‘비기다, 승부가 나지 않다’라는 뜻인 ‘비김’이 결합한 것이다. ‘서로 맞서 비긴 상태’를 그대로 드러내는 순우리말이다.

북한의 맞비김은 배구 경기에서 벌어지는 사건을 언어적으로 포착하는 방식이 다르다는 것을 말한다. 동점 이후의 경쟁 상태를 곧바로 표현한다. 그 뒤에 따라오는 “두 점 차로 끝낸다”는 규칙 설명은 말로 풀어내는 사고 방식을 따른다.

북한 스포츠 언어는 외래어 차용을 최대한 자제하면서, 행위와 상태를 직접적으로 표현하는 데 무게를 둔다. 기술적 용어도 ‘그물접촉(네트터치)’, ‘자리돌림(로테이션)’처럼 행동·상태 구조로 설명된다. 이런 맥락에서 맞비김은 단지 번역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언어가 경기 상황을 어떻게 개념화하는지에 관한 선택이다. (본 코너 1671회 ‘북한 배구에선 왜 ‘네트 터치’를 ‘그물접촉’이라 말할까‘, 1688회 ’북한 배구에서 왜 '로테이션'을 '자리돌림'이라 말할까‘ 참조)
이처럼 북한 스포츠 언어는 단어 자체가 상황을 즉각적으로 그리는 장치로 기능한다. 반면 국제 용어는 규칙과 구조를 압축한 상징어에 기대는 경향이 있다. 어느 쪽이 더 우월하다기보다, 언어가 경기와 세계를 어떻게 구성하는지를 보여주는 또 하나의 사례다.

[김학수 마니아타임즈 기자 / kimbundang@maniarepor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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