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졸 직행이 '필패의 늪'이 된 가장 큰 이유는 마이너리그라는 거대한 육류 가공기 속에서 보호막 없이 던져지기 때문이다. KBO 리그를 거치는 선수들은 구단의 전폭적인 관리와 팬들의 지지 속에서 실전 경험을 쌓고 군 문제까지 해결한 뒤 '완성형'으로 미국에 건너간다. 반면 고졸 유망주들은 낯선 문화와 언어 장벽, 열악한 이동 환경과 식단 등 야구 외적인 고통을 10대 후반의 어린 나이에 홀로 감당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겪는 심리적 붕괴와 과부하로 인한 부상은 재능 있는 유망주들을 소리 없이 집어삼켰다.
최근 가장 큰 기대를 모았던 심준석과 장현석의 사례는 이 잔혹사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고교 시절 160km의 강속구로 '제2의 박찬호'라 불렸던 심준석은 미국 진출 3년 만인 지난해 마이애미에서 방출되는 수모를 겪었다. 반복되는 부상과 제구 난조에 발목이 잡힌 그는 올해 뉴욕 메츠와 마이너 계약을 맺으며 재기를 노리고 있으나, 보장된 것이 없는 험난한 처지다. 명문 다저스에 입단하며 화제를 모았던 장현석 역시 상황은 녹록지 않다. 마이너리그 하위 단계에서 정체된 채 피홈런 급증과 구위 하락이라는 숙제를 풀지 못하고 있으며, 유망주 랭킹은 속절없이 하락하고 있다.
여기에 타자 잔혹사도 더해진다. 고교 시절 김하성보다 높은 평가를 받았던 박효준은 긴 마이너 생활 끝에 현재는 병역법 위반 재판과 소속 팀 부재라는 최악의 상황에 직면했다. 피츠버그에서 기회를 잡는 듯했던 배지환 또한 주전 경쟁에서 밀려나며 메이저와 마이너의 경계에서 위태로운 줄타기를 이어가고 있다. 한때 다저스 산하 최고의 투수로 뽑혔던 최현일마저 마이너 FA 신분으로 미계약 상태에 머물며 유턴의 길조차 찾지 못하고 있다.
결국 고졸 직행은 실패 시 돌아올 곳이 없다는 점에서 치명적이다. KBO의 '2년 복귀 유예' 규정은 실패한 유망주들에게 가장 잔인한 족쇄가 된다.
"MLB는 체험하러 가는 곳이 아니다"라는 야구계의 격언은 이제 환상에 빠진 유망주들이 반드시 새겨들어야 할 경고등이 됐다. 추신수라는 기적에 가려진 수많은 유령 선수의 눈물이 고졸 직행의 냉혹한 본질을 말해주고 있다.
[강해영 마니아타임즈 기자/hae2023@maniarepor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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