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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철의 골프이야기] 유유자적(悠悠自適) – 서두르지 않는 골프의 행복

2025-08-18 18:28

[김기철의 골프이야기] 유유자적(悠悠自適) – 서두르지 않는 골프의 행복
여름이 한창일 때는 라운드 내내 땀에 젖고, 겨울이 오면 손끝이 얼어 샷 하나가 고역이 된다. 그러나 계절이 조금 부드러워지는 시기가 되면 골프장은 전혀 다른 표정을 짓는다. 바람이 살짝 선선하고, 하늘은 높고, 페어웨이의 풀은 바람에 따라 물결을 친다.

바로 이때가 골퍼가 ‘유유자적’을 느낄 수 있는 시간이다.

유유자적(悠悠自適)이란 ‘조급함 없이 한가롭고, 스스로 만족하며 즐기는 모습’을 뜻한다.

‘유유(悠悠)’는 느긋하고 여유로운 모양을, ‘자적(自適)’은 스스로를 편안하게 하는 태도를 의미한다.

중국 고전 시가와 문인들의 산문에서 자주 등장하며 속세의 분주함에서 벗어나 자연 속에서 자신과 대화하는 경지를 표현할 때 쓰인다. 조선 시대 선비들도 이 말을 즐겨 썼다. 서재나 정원에서, 혹은 시 한 수와 차 한 잔 속에서 느끼는 무심한 평화를 가리키는 말이었다.

이제 골프와 연결해 보자. 대부분의 골퍼들은 라운드 시작부터 마음이 바쁘다. “오늘은 꼭 80대 초반으로 끊어야지.”,“이번 홀은 버디를 꼭 해야 해.” 이런 생각이 머릿속을 차지하면 자연의 풍경도, 동반자의 농담도, 캐디의 섬세한 코스 설명도 흘려듣게 된다. 그러다 보면 라운드는 끝났는데 기억나는 건 스코어뿐이고 즐거움은 어디론가 사라져 버린다.


반면 유유자적으로 라운드하는 골퍼는 다르다. 티잉 그라운드에서 잠시 하늘을 보고, 페어웨이를 가르는 바람을 느끼고, 샷 후에는 자신의 리듬을 음미한다. OB가 나와도 “이 코스는 역시 쉽지 않네.” 하고 웃어넘기고, 버디가 나와도 “이건 그냥 보너스네.” 하며 겸손하게 받아들인다. 스코어카드의 숫자보다 그날 함께한 풍경과 대화가 더 선명하게 남는다.

유유자적은 단순히 느리게 치라는 말이 아니다. 마음을 비우고 현재를 즐기는 태도다. 골프는 원래 기다림의 스포츠다. 샷과 샷 사이의 걸음, 다른 사람의 플레이를 기다리는 시간, 그 모든 순간이 유유자적의 연습이 된다. 우리가 그 시간을 초조함이 아니라 감상의 시간으로 만들 수 있다면 라운드 전체가 더 부드럽게 흐른다.

유유자적은 필드에서 배울 수 있는 귀한 덕목이다. 경쟁심이 전혀 없다는 말이 아니다. 다만 그 경쟁이 나를 옥죄는 족쇄가 아니라 즐거움을 더하는 양념이 되게 하는 것이다. 이 태도가 익숙해지면 골프뿐 아니라 일상도 훨씬 부드러워진다. 다음 라운드에서 한 번 시도해 보자. 첫 홀 티샷 전에 하늘을 바라보고, 그늘집에서는 휴대폰 대신 주변 풍경을 즐기고, 마지막 홀에서는 스코어 계산보다 함께한 사람들에게 감사 인사를 먼저 전하자. 그 순간 우리는 ‘유유자적’의 진짜 의미를 느끼게 될 것이다.

골프는 스코어카드의 숫자보다 페어웨이 위의 바람, 그린 위의 햇살, 그리고 동반자와의 웃음 속에서 완성된다. 서두르지 않고, 억지로 잘하려 하지 않고, 그저 지금을 즐기는 것, 그게 바로 골프가 주는 최고의 호사이자, 삶 속에서 우리가 배워야 할 진짜 골프다.

유유자적 - 그 여유 속에 골프도 인생도 한층 깊어진다.

[김기철 마니아타임즈 기자 / maniareport@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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