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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학수의 사람 '人'] 2년6개월 임기 마친 신치용 전 선수촌장 “인권과 강훈련은 서로 보완재가 돼야 한국스포츠가 과도기를 잘 극복할 수 있다”

2021-09-01 10:04


 2년6개월간의 임기를 마친 신치용 전 진천선수촌장은 31일 마니아타임즈 편집국에서 인터뷰를 갖고 "2020 도쿄올림픽에서 비록 격투기 종목 등은 부진했지만 수영, 육상, 스포츠클라이밍 등 다변화된 종목에서 젊은 유망주들이 발굴돼 2024년 파리올림픽은 희망을 가져도 된다"고 밝혔다. [정지원 기자]
2년6개월간의 임기를 마친 신치용 전 진천선수촌장은 31일 마니아타임즈 편집국에서 인터뷰를 갖고 "2020 도쿄올림픽에서 비록 격투기 종목 등은 부진했지만 수영, 육상, 스포츠클라이밍 등 다변화된 종목에서 젊은 유망주들이 발굴돼 2024년 파리올림픽은 희망을 가져도 된다"고 밝혔다. [정지원 기자]


오랜만에 운동복 대신 신사복 정장을 입었다. 지난 달 30일부로 2년6개월간의 국가대표팀 선수촌장 자리를 내려놓고 '자유의 몸'이 됐다는 표시이다. 국내 스포츠계의 대표적인 감독인 신치용 전 촌장(66)이 그동안 공개적으로 나설 때는 항상 운동복 차림이었다. 하지만 선수촌장 자리를 떠나면서 신사복 정장을 차려입은 것은 모처럼 찾은 자유로운 시간을 즐기고 싶어서이다. 후임 유인탁 촌장에게 인수 인계를 마치고 경기도 용인 수지 아파트로 돌아온 뒤 농구 국가대표 출신인 아내 전미애씨(61)와 단란한 시간을 갖고 있다.

31일 서울 무교동 체육회관 마니아타임즈 편집국에서 만난 그는 “사상 유례가 없는 코로나 팬데믹 상황에서 한국스포츠는 과도기를 맞고 있다. 2020도쿄올림픽은 한국스포츠가 앞으로 나아가야할 방향과 문제점을 잘 드러냈다”며 “체력과 정신력을 키우기 위한 강훈련을 하지 않으면 한국 체육은 국제경쟁력을 키워 나가기 어렵다고 본다”고 말했다. 점차 개인화, 다양화 사회로 변해가는 한국 사회의 모습이 스포츠계에도 반영돼 선수들이 개인 인권을 우선시하면서 강훈련을 별로 좋아하지 않으며 큰 위기에 처해 있다는 것이다.

국가대표 선수 훈련 총책임자로 2020도쿄올림픽에서 부단장을 맡았던 그는 경기장 구석 구석을 찾아 다니며 선수들을 격려했다. 도쿄에서 1시간 20분 걸리는 골프경기장부터 도쿄내의 거의 전 경기장을 방문, 코로나 팬데믹 상황에서도 선전하는 선수들에게 “최선을 다해달라”는 말을 잊지 않았다. 진천 선수촌에서 선수들과 고락을 같이 해 누구보다 선수들의 상황을 잘 이해했던 그로선 성적이 좋은 선수에게는 칭찬을, 성적이 잘 나오지 않은 선수에게는 위로를 하며 공감하는 모습을 보였다.


도쿄올림픽 참가전 선수촌 분위기는 코로나 상황으로 인해 관심이 높지 않았다. 예전 올림픽을 앞두고 정부와 여러 기업 등에서 격려 성금이 줄을 이었으나 이번에는 철저한 거리두기 방역 때문에 거의 없었다. 일부 국가대표 선수들 사이에서 ‘국위 선양’이라는 말 대신 ‘즐기자’라는 말을 앞세워 훈련을 다소 게을리하는 장면도 있었다고 했다. .

철저한 훈련주의자인 그는 “이번 도쿄올림픽에서 평소 훈련에 충실한 종목 선수들은 원하는 대로의 결과를 냈었던데 반해 그렇지 못한 종목 선수들은 성적이 잘 나오지 않았다”며 “강훈련은 결코 배신하지 않는다. 자신을 위해 하는 훈련에 소홀히 하면 절대 정상에 설 수 없다”고 말했다.

신치용 전 촌장이 도쿄올림픽 양궁 금메달리스트 안산(왼쪽)과 김제덕(오른쪽)과 함께 포즈를 취하고 있다.
신치용 전 촌장이 도쿄올림픽 양궁 금메달리스트 안산(왼쪽)과 김제덕(오른쪽)과 함께 포즈를 취하고 있다.


도쿄올림픽 성적은 훈련 성과 반영


-도쿄올림픽에서 당초 목표였던 메달 성적을 달성하지 못했는데.

“한국은 이번 도쿄올림픽에서 금메달 6개, 은메달 4개, 동메달 10개로 종합 15위에 올랐다. 당초 선수단이 내건 ‘금메달 7개이상- 종합 10위 이내’ 목표를 달성하지 못했다. 양궁, 펜싱, 체조 등에서는 예상대로 금메달이 나왔지만 사격, 태권도, 유도 등에서 메달을 획득하지 못함으로써 목표 달성에 실패했다. 특히 전통적 강세종목인 투기 종목에서의 부진이 아쉬웠다. 투기 종목은 내리막 현상이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어 우려스럽다.”

-투기 종목 부진의 원인은 무엇인가.

“태권도, 유도, 복싱, 레슬링 등은 한국스포츠의 대표적인 효자종목이었다. 하지만 투자와 지원 부족과 선수 발굴에 실패하면서 경쟁력을 잃었다. 이번 올림픽에서 태권도는 최대 금메달 3개까지 예상한 태권도인들도 있었지만 결과적으로 ‘노골드’에 그쳤다. 최소한 금 1개 정도는 땄어야 하는데 말이다. 우리 선수들이 체력적으로 많이 밀리는 모습을 보였다. 결과적으로 평소 훈련량을 많이 쌓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육상, 수영 등에서 예상외의 성적을 거두고 10대 어린 선수들의 두각도 눈에 띄었는데

“이번 대회에서 메달권 경쟁력을 보인 23세 이하 선수들은 20명 정도 된다. 10대로 폭을 좁혀도 11명이 메달권 경쟁력을 보였다. 또 이들 20명 중 10여명이 이번 대회 동메달 이상의 성적을 냈다. 육상, 수영 등 기초 종목과 스포츠클라이밍과 브레이크댄스 등 신설 종목 등에 대해서도 적극적인 관심을 기울여야한다. ”

신치용 전 선수촌장이 올 초 도쿄올림픽 국가대표 대첵회의에 참석,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자료사진]
신치용 전 선수촌장이 올 초 도쿄올림픽 국가대표 대첵회의에 참석,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자료사진]


선수촌 내 인권과 강훈련은 서로 보완재가 되야


2019년 2월 선수촌장으로 처음 부임하면서 그는 선수촌 분위기를 보고 깜짝 놀랐다. 선수들이 촌내 훈련을 기피하고 촌외훈련을 갖기를 원하고 아침 새벽 운동도 대부분 하지 않았다. 때마침 터진 빙상 심석희 성폭력 사건 등으로 인해 선수들의 인권이 중시되며 강훈련을 하지 않는 분위기가 팽배했다. 또 태릉선수촌 시절부터 아침 6시 전종목이 단체로 새벽 운동을 했지만 언제부터인지 새벽 운동이 없어진 것이다.

-선수촌은 각 종목 최고의 대표선수들이 모여 훈련하는 장소이다. 선수들이 훈련에서 구체적으로 어떤 행동을 보였는가.

“사회적 변화에 민감한 것은 대표선수들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먼저 운동선수들은 자신의 목표를 이루려면 먼저 강훈련으로 기초체력을 만들어놓아야 한다. 운동은 결코 체력 없이는 안된다. 하지만 자기의 인권만이 중요하다는 착각으로 운동을 등한시 하는 것은 운동 선수로서의 기본적인 태도는 아니라고 본다. 인권 의식을 훈련에서 행동으로 직접 보여주는게 운동선수의 진짜 모습이라고 생각하는데 그렇지 않은 선수들이 많이 보였다. 훈련을 통해 근육이 90%의 힘만 기억하면 절대적으로 강자가 될 수 없다. 평소 120% 근육을 만든다는 자세로 해야 메달을 딸 수 있다. 이러한 훈련은 지도자가 끌어주지 않으면 안된다. 선수는 자기 힘 이상을 쓰는 훈련을 혼자서 할 수 없다. 그래서 선수와 지도자는 한 몸이 돼 혼연일체로 훈련을 이겨내야 한다. ”

-선수촌도 시대의 변화에 따라갈 수 밖에 없는데.

“맞는 말이다. 인권은 지도자와 선수가 평소 적극적인 소통을 통해 자연스럽게 보장해야 한다. 훈련도 마찬가지다. 선수들에게 제대로 훈련을 시키지 않는 것도 인권침해라고 본다. 처음에 훈련을 강화해야 한다는 말을 지도자들에게 하자 주위에서 안 좋은 얘기가 들렸다. 너무 훈련으로 몰아세운다는 비판이었다. 하지만 나는 오랫동안 지도자 생활을 하면서 선수들과 함께 강훈련을 쌓으며 선수들의 장단점을 분석할 수 있었다. 훈련을 제대로 해야만 좋은 성적을 올릴 수 있다는 확신을 갖고 했던 말이었다. 양궁 등은 선수들간 경쟁이 심하며 자연스럽게 훈련의 중요성을 깨닫는 구조가 잘 갖춰졌지만 격투기 일부 종목은 신세대 선수들은 나오지 않고 나이많은 선수들이 훈련량 부족과 실전감각 저하로 경쟁력을 잃고 있다. 특히 체력적으로 뒤지면 결코 훌륭한 선수가 될 수 없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대표선수들의 식단관리와 훈련 여건은 어떻했나.

“사실 선수촌내 식단관리는 엄격한 기준과 선정으로 이루어진다. 코로나 팬데믹 상황에서 선수들은 1인 1실을 원칙으로 했으며, 식사 영양 상태는 최고 수준을 유지했다. 간식이나 특식이 필요한 선수들은 개인적으로 택배를 이용해 원하는대로 먹을 수 있다. 요즘 택배시스템으로 치킨, 피자는 물론 홍어, 회까지도 들어온다. 이런 먹거리까지 통제하기는 어렵다. 선수들의 체력관리는 본인과 지도자들이 지속적으로 해나갈 수 밖에 없다. 훈련량도 기본적으로 대표선수라면 1년 200일 정도는 촌내 훈련을 실시하고 있지만 촌외훈련을 원하는 종목과 선수들도 많아 일률적으로 통제하기가 쉽지 않다. 이번 도쿄올림픽에서도 드러났듯이 양궁과 펜싱 등 올림픽에 대비해 훈련을 충실히 했기 때문에 좋은 성적을 낼 수 있었다. ”

한국스포츠, 파리올림픽 대비하기 위해 유망종목 적극 육성해야

-3년 후 파리올림픽에 대비하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 하나.

“이번 도쿄올림픽의 성과를 면밀히 분석해 앞으로의 방향을 세워야 한다. 올림픽은 잘 준비하면 성과를 낼 수 있다. 이번 올림픽에서 성적을 기대하지 않았던 여자배구가 4강에 든 게 좋은 예이다. 이제 대부분의 종목이 기술적으로 선진국에 비해 뒤떨어지지는 않는다. 얼마나 성실하게 훈련을 쌓고 선수들의 열정이 발휘하느냐가 중요하다. 여자배구가 이런 모습을 대표적으로 보여줬다고 본다. 도쿄올림픽에서 두각을 나타낸 유망 종목들에 좀 더 과감한 투자를 하고 양궁, 펜싱 등은 선수들의 경쟁력을 더욱 강화하면 파리올림픽에 희망을 걸 수 있다.”

-대표선수들과의 처우 문제는 어떻한가.

“선수촌에 입촌하는 대표선수들에게는 국민 세금으로 국가대표 수당이 나간다. 지도자들에게는 지난해부터 연봉제로 고정급과 함께 퇴직금까지 지급한다. 예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좋은 대우를 해주고 있다. 선수촌에서 훈련하는 선수들과 지도자들은 세금을 내는 국민들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열심히 훈련을 해야 한다. ”

-‘국위 선양’이라는 말이 구시대적 발상이라며 ‘즐기자’는 말을 많이 쓰고 있는데.

“국위 선양이라는 말이 과거 권위주의 시대의 생각인 것은 맞다. 하지만 국가를 대표해 올림픽 등 국제대회에 나가는 국가대표 선수들은 비록 국위 선양이라는 말을 쓰지 않더라도 국가 정체성을 보여주기 위해 좋은 성적을 내야 한다. 평소 선수촌에서 훈련을 열심히 해야 하는 것도 국제대회 등에 대비하기 위해서이다. 선수 개인적으로도 최선을 다한다는 것은 의무이자 권리라고 생각한다. 일부에서 경기를 ‘즐기자’고 말들을 하는데, 실력도 없이 즐기자고 하는 말은 받아들이기 어렵다. 즐기기만 하고 경기에 지면 무슨 의미가 있는가. 열심히 훈련하고 노력한 자가 경기에서 이길 때 진정하게 운동을 즐긴 것이 아닐까 싶다. ”

1995년 삼성화재 배구단 초대 감독으로 부임해 1997년 첫 참가한 배구 슈퍼리그에서 우승을 이끌고 전무후무한 슈퍼리그 9연패 신화를 창조한 신치용 전 촌장은 배구 대표팀 감독과 삼성화재 단장 등을 25년간 역임하고 선수출신으로 최고 영예인 선수촌장을 2년6개월간 맡은 것을 개인적으로 큰 영광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앞으로 오랜만에 맞는 월급 없는 백수생활을 부담없이 편하게 만끽할 듯하다.

[김학수 마니아타임즈 편집국장 kimbundang@maniarepor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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