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자 양궁은 어느 날 세계 최고가 되었다. 그리고 정상에서 단 한 번도 내려서지 않았다. 우리도 미처 몰랐던 양궁에 관한 대단한 DNA가 우리에게 있었다.
올림픽 9연패. 120년 올림픽 역사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던 대 기록. 대한민국 여자 양궁팀이 4년마다열리는 8번의 올림픽에서 단 한차례도 금메달을 놓치지 않고 꼬박 꼬박 접수했다.
그것도 매번 대장을 바꿔가면서…
1988년 서울 올림픽. 개인전에 이어 단체전이 처음 생겼다. 우리에겐 더없이 유리한 경기였다. 84년 LA올림픽 개인전에서 서향순이깜짝 금메달을 쏜 터여서 여자 양궁에서만 2개의 금메달을 딸 수 있었다.
예상은 적중했다. 개인전 금, 은, 동메달을 다 쐈으니 단체전은 더 이상 볼 것도 없었다. 올림픽 전만 해도 막내였던 김수녕이 앞장섰고 왕희경, 윤영숙이 뒤를 따랐다.
올림픽 초대 챔피언이 된 여자 양궁 단체의 김수녕, 왕희경, 윤영숙이었다.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 서울 올림픽 2관왕 김수녕이앞장섰다. 하지만 팀을 리드한 건 김수녕도, 이은경도 아닌 조윤정이었다.
조윤정이 앞 선 주자들을 제치고 개인전 금메달을 따면서 분위기를 리드했다. 초대 챔피언으로서 첫 방어전을 무탈하게 마쳤다.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 김조순, 윤혜영, 김경욱이 나섰다. 일말의 불안감이 있었다. 기존 강자들이 선발전에서 모두 나가 떨어졌고 2진급이라고 여겼던선수들이 대표가 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우려였다. 김경욱이 과녁 정중앙을 맞추는 퍼펙트 골드를 두차례나 기록하며 개인전 금메달을쏜 후 김조순, 윤혜영과 단체 금을 맞췄다.
세 번째 금메달. 대한민국 국가대표가 어렵지 국가대표만 되면 올림픽 금메달은 누구나 딴다는것이 또 사실이 되었다.
2000년 시드니 올림픽. 김수녕이 돌아왔다. 올림픽 금메달만 3개인 여자 양궁의 레전드. 대표팀의 전력이 전 같지 않아 양궁 계인사들이 컴백을 적극 권장했다.
돌아 온 김수녕은 그 어렵다는 국가대표에 선발되었다. 김남순, 윤미진을 데리고 시드니로 향했다. 하지만 개인전 금메달은 여고생 윤미진이었다. 당연히 윤미진, 김수녕, 김남순은함께 단체전 금메달을 쏘았다.
2004년 아테네 올림픽. 대한민국 여자 양궁은 전 세계인의 표적이 되었다. 개인전은 물론 단체전까지 늘 독차지하니 밉상이 아닐 수 없었다.
2관왕 윤미진을 앞세우고 이성진, 박성현이 뒤를 따랐다. 그러나 언제나 그렇듯 여자 개인전 금메달은 뜻밖의 박성현이었다. 엄청난 견제속에서도 중국을 무찌르고 5섯 번째 금메달을 획득했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 주최국 중국이 여자 양궁 독식을 목표로 하고 있었다. 그들의 목표는 한국이었다. 걱정대로 여자 개인전 금메달을 놓쳤다. 84년 LA올림픽 이후 처음이었다.
그러나 단체전은 굳건히 지켰다. 박성현, 윤옥희, 주현정이 금메달을 합작했다.
2012년 런던 올림픽. 중국으로부터 여자 개임 금메달을 가져왔다. 그들의 베이징 텃세가 매우 심했다는 걸 확실히 입증했다.
기보배, 이성진, 최현주가 단체전에 나섰다. 빗속에서 치뤄진 중국과의 결승전. 만만찮았지만 끝내 1점차로 중국을 물리쳤다. 210-209였다. 중국은 우리에게 3연속 패배의 쓴 맛을 보았다.
2016년 리우 올림픽. 기보배, 장혜진, 최미선이 단체를 이루었다. 장혜진이 한 살 위였지만 2관왕 기보배에게 관심이 쏟아졌다.
장혜진은 기보배가 놓친 여자 개인 금메달을 쏜 후 단체전에서 러시아를 꺾고 올림픽 8연패의위업을 달성했다.
2020년 도쿄 올림픽. 안산이 처음 생긴 혼성 금메달를 따면서 단체전 금메달을 예고했다. 랭킹 라운드 1, 2, 3위를기록한 안산, 강채영, 장민희가 흔들리지 않는 실력으로 9연속 금메달을 쏘았다.
9연패, 그러나 대한민국 여자 양궁 단체의 금메달 신화는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
[이신재 마니아타임즈 기자/20manc@maniarepor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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