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인선 SK감독은 급했다. 1차전을 용케 이겼지만 2, 3차전서 연달아 패했다. 1승 2패지만 상대는 대회 2연패를 차지한 최강 현대여서 우숭이 까마득하게 멀어져 가는 듯 했다.
![[스포츠 손자병법] SK 역전 우승 이끈 최인선, 서장훈의 배수진(背水陣)](https://cgeimage.commutil.kr/phpwas/restmb_allidxmake.php?pp=002&idx=3&simg=20201227065439055748f6b75216b21121740159.jpg&nmt=19)
2000년 프로농구 챔피언 결정전. 최인선 감독이 이끄는 신흥 강호 SK는 젖 먹던 힘까지 짜내며 덤볐으나 역부족이었다. 신선우 감독의 전통 강호 핸대는 비록 첫 판을 내주었으나 곧바로 전력을 추스르며 2연승, SK의 상승기운을 간단하게 눌러 버렸다.
이제 한판이면 승부가 끝나고 SK는 ‘기약없는’ 1년 후를 기약해야 할 신세였다.
누가 봐도 상황은 뻔했다. 현대는 페넌트레이스에서도 SK의 기를 꺾어 놓은 팀인데다 경기 운영 또한 노련했다. 이미 두 차례 우승을 한 터여서 여유도 있었고 선수도 충분했다.
SK는 그렇지 못했다. 패기는 있었지만 더 중요한 경험이 부족했다. 조금만 위기에 몰려도 우왕좌왕했으며 한쪽이 막히면 다른 쪽을 뚫지 못하고 전전긍긍했다.
병사도 많지 않았다. 서정훈, 황성인, 조상현, 재키 존스, 하니발이 전부였다. 주전 싸움에선 밀리지 않았지만 문제는 지원 병력이었다.
현대는 주전 중 한 명이 빠져도 타격을 입지 않았다. SK는 1진과 2진의 수준 차이가 컸다. 주전 중 한 명이라도 삐끗하면 큰 일이었다. 주전이 뻔한 팀, 작전이 다양 할 수 없었다. 정말이지 이기기 힘든 싸움이었다.
3차전에서 지던 날, 최인선 감독은 선수들을 모았다. 그리고 마지막이 될 연설을 한바탕 했다.
“우리는 이제 지는 일 밖에 없다. 4차전이 마지막 경기가 되겠지. 어차피 질 시합이니 원 없이 뛰어보자. 진다고해도 흉 될 게 없다. 질 경기를 졌으니 부끄러울 것도 없다. 하지만 최선을 다하자. 경기가 끝났을 때 서 있을 힘이 남아 있다면 그건 우리가 죽을 힘으로 싸우지 않았다는 것이다. 지더라도 당당하게 지자.”
마지막 1게임. 모든 힘을 다 쏟아내자고 하자 선수들의 눈에서 빛이 났다. 1게임이라면 죽자고 뛸 수 있겠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큰 시합을 뛰어 본적이 없는 초년병. 하지만 그것이 그들의 장점이기도 했다. 서장훈이 막히면 다른 활로를 뚫지 못하는 단점도 달리 생각해보면 장점이 될 수도 있었다. 공격 루트가 하나밖에 없고 단순하니까 앞뒤로 머리 굴릴 일이 없었다.
그저 공을 잡으면 서장훈에게 패스하면 되고 서장훈은 수비가 첩첩히 쌓이든가 말든가 골밑으로 치고 들어가 던지면 그만이었다.
승부의 분수령, 4차전. SK는 지극히 단순무식한 플레이를 펼쳤다. 서장훈을 중심으로 다 함께 공격하고 다 함께 수비하는 토탈농구였다. 마지막 경기니 힘을 아낄 필요도 없었다.
화려한 농구를 구사하려던 현대는 SK의 단순한 농구에 의외로 말려들었다. 신선우 현대감독은 뜻밖의 상황에 당황했다. 괜히 선수들을 이리저리 돌리며 여러 작전을 구사했다. 그러나 통하지 않았다. 머리를 굴려봐도 경기는 좀처럼 풀리지 않았다.
SK의 잡념 없는 농구는 시간이 지날수록 빛을 발했고 4차전에서 승리, 2승2패로 승부를 원점으로 돌렸다. 아주 단순한 싸움으로 뜻밖의 승리를 거둔 SK. 선수들은 승패를 떠나 죽을 힘을 다하는 것이 곧 이기는 길이라는 간단한 진리를 알게 되었다.
승리의 비결을 몸으로 깨달은 SK. 그들에게 현대는 더 이상 적수가 아니었다. SK는 5차전마저 여유있게 잡았다. 그리고 창단 2년만에 골리앗 현대를 물리치고 왕좌에 올랐다. 벼랑 끝에서 죽자고 덤빈 덕분이었다.
[이신재 마니아타임즈 기자/20manc@maniarepor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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