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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체육 100년100인100장면] 46. 세계를 울린 현정화, 리분희의 지바 세계탁구우승

2020-12-13 07:20

첫 단식은 북의 류순복이었다. 중국은 선봉장 등야핑이었다. 등야핑은 세계선수권대회 8연패를 이끈 챔피언. ‘마녀’로 불리운 절대강자였다. 세계랭킹 17위의 21세 신예, 류순복의 상대는 아니었다.

[대한민국체육 100년100인100장면] 46. 세계를 울린 현정화, 리분희의 지바 세계탁구우승


그러나 코리아팀엔 등야핑을 이길 선수가 없었다. 현정화, 이분희, 홍차옥 중 누구도 등야핑을 이겨 본적이 없었다. 이유성 코치는 생각했다. ‘그렇다면 등야핑을 몰라서 겁이 없는 류순복 밖에 없다.’

1991년 4월 29일 일본 지바의 닛폰 컨벤션센터. 제41회 세계탁구선수권대회 여자단체전 결승이 시작되었다. 예선 정글을 뚫고 코리아와 중국이 마지막 무대에 올라와 있었다.

하늘색 한반도 지도를 가슴에 새기고 결승에 나선 단일팀의 대표선수는 남의 현정화, 홍차옥 그리고 북의 리분희, 류순복이었다. 중국은 예상대로 등야핑과 가오준을 앞세웠다.

이길 수 없는 경기. 하지만 컨디션을 끌어올리고 있었던 류순복은 세계1위 등야핑을 잡았다. 두 번 째 판엔 남의 현정화가 나섰다. 중국은 가오준이었다. 만만찮은 경기였지만 현정화는 두판을 내리 이겼다.

게임 스코어 2-0, 한 게임만 더 잡으면 우승이었다. 하지만 우승으로 가는 길은 역시 쉽지 않았다. 세 번째 판 복식. 코리아는 현정화-이분희가 나섰고 중국은 등야핑-가오준이었다.

첫 세트를 이겼다. 우승이 눈앞으로 바짝 다가왔다. 그러나 등야핑-가오준이 반격이 펼쳐졌다. 내리 두 세트를 내주고 말았다. 그리고 이어진 단식. 현정화가 등야핑에게 졌다.

2-2로 팽팽하게 균형을 이룬 가운데 마지막 다섯 번째 판. 다시 류순복이 나섰다. 등야핑을 꺾으며 상승기류를 타고 있던 류순복에게 모든 걸 걸었다. 류순복은 가오준을 2-0으로 잡았다.

2세트 막판이 가장 힘들었다. 18-19로 밀렸다. 한방에 승리가 왔다갔다 하는 순간이었다. 류순복이 마지막 힘을 발휘했다. 내리 3득점하며 경기를 마무리했다.

셋트스코어 3-2, 코리아 단일팀이 거함 중국의 9연패를 저지하며 우승을 차지했다.

1973년 사라예보대회 이후 18년만의 우승이었지만 남과 북이 하나가 된 단일팀 코리아의 우승이어서 감회는 남달랐다. 우승 순간 단장인 김형진 조선올림픽위원회 부위원장과 총감독인 김창제 대한탁구협회 부회장도 손을 맞잡았고 남북코치, 선수들도 얼싸안았다.

TV를 통해 이 장면을 지켜보았던 남과 북의 한겨레도 하나가 된 코리아의 승리에 가슴 뿌듯해하며 현정화 선수가 이야기 했듯 ‘작은 통일’의 기쁨을 맛보았다. ‘아리랑’이 울려 퍼지는 가운데 한반도 단일기가 시상식장을 아름답게 수놓았다.

ᷰ 남측 코치와 북측 에이스

김창제 총감독이 불렀다. 방에 가니 북의 장웅 대표와 김형진 단장도 함께 있었다.

“앞으로 여자팀만 맡으시오.”

“북측 황건동 지도원이 가만 있지 않을텐데요”

“그건 우리가 알아서 하지. 왜 그러는지 알잖아”

남쪽 이유성 코치는 이유를 알고 있었다. 북의 에이스 리분희 때문이었다. 리분희는 간염이 있었다. 지바에 온 후 더 심해졌다. 먹는 것 부터가 시원찮아 체력유지가 어려울 정도였다.

이유성 코치는 리분희의 상태를 알고 초밥을 비롯, 리분희가 잘 먹을만한 걸 계속 공급해 주고 있었다. 장웅 대표 등은 이유성코치가 보기와는 달리 세세한 것 까지 챙기며 선수들을 잘 이끌고 있음을 알았다.

그래서 전담을 시킨 것인데 원래 남과 북의 코치들은 일주일씩 번갈아 가며 남녀 선수들을 지도하기로 했기 때문이었다. 리분희의 간염을 알고 있는 것은 지도원 중에는 그 방안의 4명 뿐이었다.

리분희가 빠진 코리아팀의 전력으론 중국 꺾기가 쉽지 않았다. 이유성 코치는 최후의 승부를 위해 리분희를 아끼면서 ‘대타용’으로 내세울 류순복을 틈틈이 기용했다.

류순복은 경기를 치를수록 나아졌지만 리분희의 몸은 갈수록 더 안 좋았다. 체력을 아껴 복식 한 경기만 맡겼지만 그마저도 지고 말았다.

중요한 결승. 에이스 리분희를 단식에서 뺀 이유이고 류순복에게 출전기회를 계속 준 이유였다. 그리고 경기 감각을 익힌 어린 류순복이 2단식을 모두 이겨 코리아의 우승을 이끌었다.

ᷰ 분단 반세기, 남북체육회담 시작 30여 년 만의 첫 남북 단일팀

선수단 호칭은 우리말로 코리아, 영어로는 KOREA(약자: KOR), 단기는 흰색 바탕에 하늘색 한반도기, 단가는 1920년대부터 우리나라에서 불러왔던 아리랑이었다.

선수 선발은 단일팀 공동추진 기구에서 협의 선발하되, 선수단 구성은 1991년 3월 초까지 완료하며 단장은 김형진 북한 선수단장이 맡기로 했다. 선수 훈련은 대회 현지에서 실시하기로 했고, 선수단 경비는 남북 공동부담을 원칙으로 했다.

남북선수들은 지바에서 함께 훈련하고 함께 이동하며 친해졌다. 그리고 왜 이겨야 하는지에 대해 공감했다. 모아진 그 힘이 단체전 우승의 원동력이었다.

[이신재 마니아타임즈 기자/20manc@maniarepor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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