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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세영의 마니아썰]박세리, 박세리를 말하다

2015-09-23 10:07

▲박세리의표정은무척밝았다.선수생활을시작한이래올해처음으로제대로된휴식을취하고있다고했다.덕분에몸과마음도한층가뿐해졌다고했다.사진=조원범기자
▲박세리의표정은무척밝았다.선수생활을시작한이래올해처음으로제대로된휴식을취하고있다고했다.덕분에몸과마음도한층가뿐해졌다고했다.사진=조원범기자
때론 ‘날 것’ 그대로가 좋을 때가 있습니다. 이번 ‘골프 여왕’ 박세리에 관한 글이 그렇지 않을까 싶습니다. 지난 21일 오후 서울 강남의 한 스튜디오에서 그녀를 만났습니다. 다음카카오와 진행하는 라이브방송에 박세리가 출연했죠. 방송 후 그녀와 별도로 얘기를 나눌 시간이 있었습니다. 그녀는 최근의 근황과 지금까지의 투어 생활, 그리고 자신의 미래에 대해 허심탄회하게 털어놓더군요.

컴퓨터 앞에 앉아 칼럼에 대한 고민을 하다 박세리와의 대화를 그대로 옮기면 어떨까 생각했습니다. 저의 어쭙잖은 글로 박세리의 생각이 가감되는 것보다는 그녀의 생생한 목소리를 고스란히 전하는 게 독자 여러분이 골프 선수 박세리와 그녀의 인생을 이해하는 데 보탬이 될 거라고 판단해서죠.

참고로 저는 박세리와의 대화를 통해 그녀는 참 욕심이 많은 선수라고 다시 한 번 느꼈습니다. 그 욕심은 탐욕이 아니라 자신의 인생 항로를 유지하고, 새로운 길을 개척하기 위한 긍정적인 욕심입니다. 한국 여자골프의 선구자로서 평범한 삶을 포기했고, 그 속에서 수많은 외로움과 고독을 느꼈지만 그녀는 모든 걸 이겨냈습니다. 그녀는 이제 새로운 꿈을 꾸고 있습니다. 이런 긍정적인 에너지와 욕심이 지금의 박세리를 만들었다고 생각합니다.

박세리가 말하는 박세리. 여러분은 어떤 느낌을 받을 지도 궁금합니다.

▲지난2006년맥도널드챔피언십연장전에서캐리웹을상대로우승을거둘당시의박세리.그는이우승으로2년이넘는기나긴슬럼프에서벗어났다.박세리가미국에서첫우승을거둔대회도맥도널드챔피언십이다.사진=정진직기자(JNA골프)
▲지난2006년맥도널드챔피언십연장전에서캐리웹을상대로우승을거둘당시의박세리.그는이우승으로2년이넘는기나긴슬럼프에서벗어났다.박세리가미국에서첫우승을거둔대회도맥도널드챔피언십이다.사진=정진직기자(JNA골프)


- 요즘 아버지와 방송에 출연하는 등 부모님과 즐거운 추억을 보내고 있는 것 같은데.
“처음으로 가족여행을 다녀왔다. 지난 7월 제주도와 부산으로 갔다. 강원도도 계획했었는데 사정이 생겨 가지 못했다. 나에겐 최고의 추억이었다. 항상 시즌이 끝난 후에도 바쁜 스케줄 때문에 가족끼리 여유 있게 여행을 간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일 때문에 부모님과 어디를 가더라도 그건 어디까지나 일이어서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이번엔 모든 걸 내려놓고 간 거다. 그러니까 부모님과도 싸우지도 않고 좋은 대화만 나누더라. 진작 했어야 하는데 그동안 못해 아쉽지만 지금이라도 다녀온 게 좋다.”

- 앞으로 부모님과 더 하고 싶은 일은.
“역시 여행이다. 사실 매주 짐을 싸는 직업이라 여행을 좋아하지 않지만 부모님과 더 좋은 곳, 더 많은 곳을 다니고 싶다. 직업 때문에 하는 여행은 아무리 7성급 호텔에서 묵거나 경치 좋은 곳에 가더라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개인적으로 어디 한 번 혼자 간 적도 없었다. 막상 떠나려고 하면 또 짐을 싸야 하는 게 싫었다. 그래서 안 하게 되고, 그냥 집에서 쉬곤 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언니와 동생이 알아서 예약도 하고 서둘러줬고, 스폰서도 잠시 쉬는 걸 이해해 준 덕에 가족여행을 할 수 있었다. 앞으로도 계속 가족과 좀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싶다.”

- 예전 인터뷰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대회는 맥도널드라고 했다. 하지만 사람들은 US여자오픈에서 보여준 ‘맨발의 투혼’으로 박세리를 기억한다. 개인적으로 가장 의미 있는 대회는 뭔가.
“US여자오픈이다. 물론 맥도널드에서 첫 우승을 거둬 내 골프 인생이 잘 풀린 것도 있지만 제일 의미 있었던 건 아무래도 US여자오픈이다. 그 대회는 정말 욕심을 냈었다. 우승하기 전년도인 1997년에 예선전을 거쳐 US여자오픈에 출전한 적이 있었다. 그때 대회를 마치고 나오면서 욕심이 생겼다. ‘이 시합을 꼭 우승을 해보고 싶다’라는 마음이 들었다. 그리고 1년 만에 우승했다. 당시 장면이 아직도 생생하다.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흥분된다.”

▲2007년후배들이명예의전당입성기념깜짝파티를열어주자박세리가감격에겨워눈물을흘리고있는모습.사진=정진직기자(JNA골프)
▲2007년후배들이명예의전당입성기념깜짝파티를열어주자박세리가감격에겨워눈물을흘리고있는모습.사진=정진직기자(JNA골프)


- 지금까지 선수생활을 하면서 가장 아쉬웠던 부분은.

“선수로서 시합에 나가서 우승을 놓친 적도, 마지막 날 실수한 부분도 많다. 하지만 그렇게 아쉽거나 후회되는 건 없다. 그때그때 모든 상황에 감사한다.”

- 박세리라는 이름은 한국 여자골프의 상징처럼 됐다. 박세리에게 골프란 무엇인가.
“내 인생이 아니었나 싶다. 골프를 안 했다면 다른 분야에 욕심을 냈을 것이다. 그런데 우연찮게 골프를 하고 있었다. 골프를 하면서 꼭 성공해야 했고, 그러고 싶었다. 내 인생의 큰 전환점이 바로 골프였다.”

- 그동안 남이 가지 않은 길을 걸어왔다. 그 길은 외롭다. 인내할 수 있었던 비결은 뭐였나.
“목표가 있었기에 인내할 수 있었다. 물론 이 자리에 오기까지는 쉽지 않았다. 때론 너무 아파도 참아야 했고, 외로울 때는 홀로 눈물을 닦아야 했다. 내가 나름대로 정한 목표가 없었다면 그런 걸 참지 못했을 거다. 그래서 힘들어도 무던하게 잘 헤쳐 나갔던 것 같다.”

- 어렸을 때부터 인내심이 강했나.
“그건 잘 모르겠다. 내 인생이 약간 드라마 같기도 하다. 물론 운동에 재능도 있었겠지만 노력도 엄청 했다. 내 목표를 이루기 위해 스스로 강해져야 했고, 독해져야 했다. 힘들어도 참아내야 했다. 그러면서 내 인생을 만들어 온 것 같다.”

▲박세리(가운데)와김미현,박지은(오른쪽)은미국무대를누비던한국여자골프의'트로이카'였다.지금은모두은퇴하고박세리만여전히현역선수로남아있다.사진=정진직기자(JNA골프)
▲박세리(가운데)와김미현,박지은(오른쪽)은미국무대를누비던한국여자골프의'트로이카'였다.지금은모두은퇴하고박세리만여전히현역선수로남아있다.사진=정진직기자(JNA골프)


- 아직 이루지 못한 목표가 커리어 그랜드 슬램이다. 박세리에게 나비스코 챔피언십(현 ANA인스퍼레이션)은 어떤 의미인가.
“굉장히 크다. 지금의 내 결혼과 같다. 내 맘 같지 않고, 끊임없이 찾고, 원하지만 다가오지는 않는다. 원하면 원할수록 점점 멀어지는 것 같다. 솔직히 명예의 전당에 입회하기 위한 마지막 1포인트를 남겨뒀을 때도 그런 생각을 했다. 이 1포인트가 어느 정도나 길게 갈지, 이 마지막 관문을 제대로 마무리 할 수 있을지 등에 관한 궁금증이 있었다. 부담감도 컸다. 그런데 다행히 빠른 시일 내에 마지막 포인트를 땄다. 하지만 그랜드 슬램은 정말 더 힘든 것 같다. 메이저 대회이다 보니까 모든 상황이 맞아 떨어져야 하는데 항상 조금씩 아쉽다. 내 것 같으면서도 내 게 아닌 듯하다. 이런 일이 계속 벌어지는 게 벌써 18년째다.”

- 너무 의식해서 그런 건 아닌가.
“솔직히 의식을 안 할 수 없다. 개인적으로 원하기도 하고, 주위에서 워낙 기대를 많이 한다. 내가 하기도 전에 벌써 ‘이번엔 해야죠’라고들 말한다. 의식하지 않으려 해도 의식하게 된다. 정말 너무 원하니까 욕심도 더 난다. 그런데 원하면 원할수록, 집착이 아닌 집착이 생겨서 그런지 실수를 하게 된다. 그런 부분이 아쉽다.”

▲박세리가다음카카오의라이브방송에출연해얘기를나누고있다.사진=조원범기자
▲박세리가다음카카오의라이브방송에출연해얘기를나누고있다.사진=조원범기자


- 라이브 방송에서 여전히 ‘현역 선수’라고 강조하던데.
“당연하다. 아직까지는 더 뛰고 싶다.”

- 선수로서 혹은 은퇴 후 계획이 있을 텐데.
“솔직히 내년에 은퇴를 생각하고 있다. 딱 1년 남았다. 올해와 내년은 풀(full)로 후회 없이 뛰고 싶었지만 올해는 부상 때문에 그렇지 못했다. 그러나 고맙게도 1년이 남았다. 솔직히 현역 선수이긴 하지만 개인적인 욕심이나 바람은 선수로서 우승을 더 하는 게 아니다. 지금 선수 생활을 1년 더 연장하는 건 내가 골프를 너무 좋아하고, 골프가 내 자신이기 때문이다. 과연 내가 골프를 놓을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도 한다. 욕심 같아서는 솔직히 더 하고 싶다. 더 하면 할 수도 있다. 하지만 글쎄… 내가 앞으로 더 해야 할 일이 선수가 아닌 것 같다. 선배로서 후배들에게 꿈을 심어준 장본인기도 하다. 후배들이 앞으로도 희망을 갖고, 실력을 쌓아 더 큰 꿈을 가질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고 싶다는 욕심이 생겼다. 후배들을 보면서 그런 마음이 더 커졌다. 꽤 오랫동안 고민을 해왔다. 당장 아카데미가 중요한 게 아니다. 선수들이 기량을 최대한 발휘하고, 세계적인 무대에 나가서 지속적으로 활동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는 게 정말 필요하다. 내가 처음 뛸 때만 하더라도 이런 게 드물었다. 하지만 미국에서 많은 걸 보고 배웠다. 그러다 보니 이제는 오랫동안 롱런할 수 있는 방법을 조금 알겠더라. 지금 어린 선수들이 실력은 너무 좋지만 선수 생활이 너무 짧은 것 같다. 그래서 욕심이 더 생긴다. 워낙 내가 꿈꾸는 게 크다 보니까 어디서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 여러 사람 만나서 의견을 나누고 있는 중이다. 어쨌든 그게 나의 바람이고, 새로운 꿈이다.”

- 올해 잠시 쉬는 게 내년에 마지막 불꽃을 태우겠다는 이런 마음인가.
“맞다. 그동안 굉장히 심한 부상을 당한 적은 없다. 하지만 나이는 무시를 못하겠더라. 내 자신에 대한 실망감도 커지게 됐다. 그러다 보니 심적으로 굉장히 버티기 힘들었다. 어느 순간 골프를 놓고 싶었다. ‘내가 왜 이러고 있어야 하나’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체력이 아니라 정신적으로 너무 힘들다 보니 그랬다. 마음과 몸은 같이 가야 하는데 너무 힘들다 보니 골프에도 영향을 미친다. 결국 몸도 안 좋아지게 되더라. 그런 의미에서 올해는 정말 좋은 시간을 가진 것 같다.”

▲박세리의영향으로'세리키즈'가탄생했고,그들은어느새성장해LPGA투어를지배하고있다.그들의탄생을이끌었던박세리는이제후배들을위한새로운꿈을키우고있다.사진은2007년명예의전당에입성하는박세리의특집기사를실었던USA투데이의촬영당시모습.사진=정진직기자(JNA골프)
▲박세리의영향으로'세리키즈'가탄생했고,그들은어느새성장해LPGA투어를지배하고있다.그들의탄생을이끌었던박세리는이제후배들을위한새로운꿈을키우고있다.사진은2007년명예의전당에입성하는박세리의특집기사를실었던USA투데이의촬영당시모습.사진=정진직기자(JNA골프)


- 지금까지 연장전에서 6전6승을 했다. 비결이 있다면.
“글쎄, 비결이랄 건 없다. 연장에 나갈 때는 어차피 그 선수나 나나 1등은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단, 같은 1등이지만 내가 트로피를 가져가느냐 못 가져가느냐의 차이다. 연장 출발에 앞서 네가 이기든 내가 이기든 같은 1등이지만, 기왕이면 내가 가져갔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티샷을 하고 나면 잊어버린다. 이후부터는 우승은 잊고 매 순간 샷만 생각한다. 다음 샷도 생각하지 않는다. 성격의 영향도 크다.”

- 소렌스탐과 한 시대를 풍미했다. 개인적으로 가끔 연락을 주고받나.
“시합장에 해설하러 몇 번 왔을 때 봤다. 개인적으로 따로 연락을 하지는 않지만 볼 때마다 서로 반갑게 인사한다. 워낙 같이 시간을 많이 보냈고, 산전수전을 다 겪었기 때문에 반갑다. 같은 선수로도 존경하고, 예전 생각도 많이 난다.”

<에필로그>
-요즘 인터넷에서 예뻐지고, 얼굴도 작아졌다는 댓글이 많던데.
“하하. 그냥 머리 자른 것밖에 없는데 양악 수술 받았냐는 얘기도 있더라. 그런데 난 주사를 무서워하고 아픈 걸 싫어하는 사람이다.”

헤어질 무렵 그녀가 불쑥 명함을 내밀었다. 유명 선수들이 명함을 건네는 일은 거의 없다. 그들과의 약속 등은 매니지먼트사를 통하기 때문이다. 명함엔 ‘박세리희망재단’이라 적혀 있었다. 박세리희망재단은 지난 4월 대지진을 겪은 네팔에 주택기증 운동을 벌이고 있다.

김세영 마니아리포트 국장 freegolf@maniarepor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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