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대현 외에도 서울지역에는 좌완 투수로 주목을 받았던 이가 바로 청원고의 심규범이었다. 이에 필자는 당시 두 선수를 비교하면서 프로 스카우트 팀에 ‘기량면에서 누가 더 프로 레벨에 가까운지’에 대한 질문을 던진 바 있다. 신기하게도 당시 스카우트 팀장들은 하나같이 정대현을 손꼽았다. 그리고 ‘프로의 눈’은 당시 시행된 전면 드래프트에서 그를 절대 놓치지 않았다. 그 중 두산이 가장 먼저 움직였다. 3라운드에서 전체 23순위에서 정대현을 호명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청운의 꿈을 안고 프로에 입문한 정대현은 입단 첫 해부터 1군 무대에 투입되면서 자기 자리를 잡는 듯싶었다.
‘시즌 첫 승’ 정대현, LG 킬러로 등극할 수 있을까?
그러나 많은 유망주들이 늘 그래 왔듯, 신예들이 1군 무대에서 꾸준히 자리를 잡는 것은 ‘낙타가 바늘구멍에 들어가는 것’만큼 힘든 일이었다. 이후 1, 2군을 전전했던 그는 데뷔 3년 차인 2012년에야 첫 승을 거두며 한숨을 둘렸고, 개인 통산 두 번째 승리를 거둘 때까지 2년이 걸리는 등 순탄치 못했던 야구 인생을 살았다. 이에 그도 군 입대를 하나의 ‘터닝 포인트’로 생각하고 경찰야구단 입단을 생각한 바 있다.
바로 여기에서 KT가 움직였다. 각 구단으로부터 받은 ‘20인 보호선수’에서 제외된 선수들을 영입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기 때문이었다. 두산으로부터 명단을 받은 KT는 주저 없이 정대현을 선택했다. 그리고 팀이 바뀌는 것 역시 또 다른 인생의 터닝 포인트라 생각했던 정대현은 군 입대를 잠시 미루고 곧바로 KT에 합류했다. 결과적으로 이 결정은 KT와 정대현 모두에게 전환점을 부여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이후 정대현은 1군에서 꾸준히 등판 기회를 부여받았다. 다만, 잘 던지고도 승리와 인연을 맺지 못한 경기가 많아 ‘첫 승’에 대한 기대는 꽤 요원해 보였다. 붙박이 선발로 자리 잡은 4월 22일 이후 여섯 경기에 등판했지만, 이 기간 동안 3패만을 기록했을 뿐이었다.
그랬던 그에게 지난 28일 경기는 꽤 인상적인 결과를 남겼던 한판 대결이었다. 프로 입문 이후 가장 많은 7이닝을 소화하면서 3피안타 9탈삼진으로 LG 타선을 봉쇄했기 때문이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정대현이 시즌 첫 승을 거둔 것은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그리고 이 날 승리는 KT의 시즌 10승째를 알리는 신호탄이기도 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정대현의 LG전 성적이다. 28일 경기에 앞서 정대현은 이미 지난 10일 경기에서 선발로 등판, 4와 1/3이닝 1실점(무자책)을 기록한 바 있다. LG 타자들이 유독 정대현을 만나면 힘을 못 썼던 셈이다. 그리고 28일 경기를 포함하여 정대현은 LG를 상대로 11과 1/3이닝 연속 무자책 기록 행진을 이어가고 있으며, 두 경기에서 안타는 단 3개밖에 맞지 않았다. 유창식(KIA)을 비롯하여 유독 젊은 좌완 투수들에게 약한 모습을 보였던 LG로서는 정대현의 각성은 반갑지 않은 소식이 될 수밖에 없다. 그러나 반대로 정대현은 ‘LG만 만나면 강한 모습을 보이는’ 선수로 자리 잡을 수 있다. 둘의 인연이 시즌 막판에는 어떠한 모습으로 결론날지 지켜보는 것도 자못 흥미로울 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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