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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박사 기자의 스포츠용어 산책 1688] 북한 배구에서 왜 '로테이션'을 '자리돌림'이라 말할까

2026-02-07 07:21

2023년 북한 노동당 창건 78주년 기념 배구 경기 모습 [연합뉴스 자료사진]
2023년 북한 노동당 창건 78주년 기념 배구 경기 모습 [연합뉴스 자료사진]
외래어 ‘로테이션’은 영어 ‘rotation’을 음차한 말이다. 배구와 야구 등에서 쓰는 용어이다. 6인제 배구에서 서브권을 얻을 때마다 선수가 시계 방향으로 차례차례 자리를 옮기는 일을 뜻한다. 야구에선 투수를 차례로 기용하는 것을 ‘투수 로테이션’이라고 말한다.

로테이션의 어원은 ‘회전, 순환’을 뜻하는 라틴어 ‘rotare’이다. ‘rota’는 바퀴에서 나온 말로, 본래 의미는 “바퀴처럼 도는 것”이다. 원초적인 의미는 원형을 그리며 도는 물리적 회전이다. 이 말은 중세 프랑스어 ‘rotaion’을 거쳐 영어로 들어왔다. 물리적 회전의 의미는 시간이 흐르며 확장됐다.

천문학에서는 천체의 자전을 뜻했고, 행정과 조직에서는 직무나 순번의 교대를 의미하게 됐다. 영어에서 ‘선수 로테이션’, ‘인사 로테이션’이라는 표현이 자연스러운 이유다. 몸이 도는 것이 아니라 역할과 자리가 차례로 바뀌는 것, 그 순환 구조 자체가 로테이션의 핵심이 됐다. 배구 역시 마찬가지다. 선수가 제자리에서 빙글빙글 도는 것은 아니다. 정해진 방향으로 자리가 이동하고, 그 질서가 반복된다. 로테이션은 ‘회전 동작’이 아니라 자리의 순환 규칙인 것이다.

원래 서브 로테이션은 ‘배구의 아버지’ 미국의 윌리엄 모건이 1895년 배구를 창안할 때부터 있었다. 모건이 발표한 최초 규칙 10개조에 보면 서브 로테이션 규칙은 지금과 많이 달랐다. 초창기 배구는 한 경기를 9이닝으로 하고 1이닝에 3번의 서브를 하도록 정했다. 서브하는 선수는 자기 팀으로 넘어온 볼을 받는데 실패할 때까지 계속할 수 있었다. 3명이상이 한 팀으로 경기를 할 경우 서브 순서는 서로 돌아가면서 하도록 했다. (본 코너 486회 ‘배구에서 서브 로테이션(Serve Rotation)을 하는 이유’ 참조)
우리나라 배구는 일본의 영향을 받아 배구 경기와 교육에서 로테이션이라는 영어 용어를 그대로 썼다.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에 따르면 경향신문 1962년 2월13일자 ‘打診(타진) (7) 排球(배구) 刮目(괄목)할만한 長足(장족)의進步(진보)’ 기사에 아시아경기대회에 출전할 남녀 배구대표팀이 최강 일본에 비해 ‘로테이션’ 등에서 약점을 보인다고 분석했다.

북한 배구에선 로테이션을 ‘자리돌림’이라고 부른다. 자리돌림은 아주 직관적인 한글로 된 합성어이다. ‘자리’는 선수에게 배정된 위치라는 뜻이며, ‘돌림’은 차례차례 옮겨 가게 한다는 뜻이다. 자리돌림은 ‘각 선수가 자기 자리를 차례로 바꿔 간다’는 의미이다. 배구를 처음 배우는 사람, 학생, 군중 체육을 염두에 둔 표현으로도 딱 맞는다.

사실 국제 규칙을 놓고 봐도 북한 쪽 표현이 꽤 정확하다. 로테이션의 핵심은 선수 이동이다. 특정 포지션 고착 방지와 역할 순환을 하기 위한 것이다. 시계 방향으로 정해진 순서대로 자리 이동을 하는 것이 핵심인데, 자리돌림은 규칙의 작동 방식을 그대로 드러내는 것이다.

북한 체육계에서 외래어를 그대로 쓰는 것을 꺼린다. 배구에선 ‘스파이크’를 그대로 쓰지 않고 ‘강타’로, ‘서브’를 ‘넣기’로 바꾸는 식이다. (본 코너 1681회 ‘북한 배구에서 왜 '서브'를 '넣기'라고 말할까’, 1682회 ‘북한 배구에서 왜 ‘스파이크’를 ‘강타’라고 말할까‘ 참조)
이 같은 용어 선택은 단지 번역의 문제가 아니다. 그 배경에는 스포츠를 보는 눈과 가르치는 방식이 숨겨져 있다. 북한은 체육 교육을 국가적 자산으로 여긴다. 선수 훈련뿐 아니라 대중 체육 보급에도 힘쓴다. 이럴 때 중요한 것은 ‘뜻은 알지만 어려운 외래 용어’가 아니다. 쉽게 이해할 수 있는 개념 중심의 우리말이다. ‘자리돌림’이라는 용어는 규칙을 숙지하는 데서 나아가, 훈련장에서 코치와 선수가 같은 그림을 머릿속에 그릴 수 있게 돕는다. (본 코너 1600회 ‘사회주의 관점으로 본 북한 스포츠 언어’ 참조)
우리나라에서 로테이션이라 부르는 것은 개념 중심에 방점을 찍는다. 하지만 북한에서 자리돌림이라 말하는 것은 동작 중심의 언어라고 할 수 있다. 서로 차이는 작아 보이지만, 그 언어를 쓰는 사람들의 사고 방식과 교육 철학은 크게 다르다.

[김학수 마니아타임즈 기자 / kimbundang@maniarepor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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