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철의 골프이야기] 뇌는 레저를 할 때 비로소 숨을 쉰다 - 무용지용(無用之用)의 뇌과학](https://cgeimage.commutil.kr/phpwas/restmb_allidxmake.php?pp=002&idx=3&simg=20250804093554041356cf2d78c681439208141.jpg&nmt=19)
일요일 새벽 5시, 알람 소리에 눈을 뜬다. 평일 내내 업무에 시달린 정신은 "제발 더 자자"고 아우성치지만, 몸은 이미 골프백을 챙기고 있다. 비단 골퍼들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등산을 가든, 낚시를 가든, 사람들은 주말이 되면 늦잠이라는 달콤한 휴식 대신 고단한 몸을 이끌고 집 밖으로 나선다. 주변 사람들은 묻는다. "돈 쓰고 시간 쓰고 몸 고생하러 가는 게 진짜 휴식이냐?"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그들의 말이 맞을 수 있다.
휴식(休息)이란 '나무 밑에서 숨을 쉬는 것'처럼 편안히 멈춰 있는 상태여야 한다. 하지만 뇌과학의 관점에서 본다면 이야기는 완전히 달라진다. 우리가 소파에 누워 아무것도 하지 않을 때, 우리의 뇌는 쉬고 있을까? 놀랍게도 대답은 "아니요"다. 오히려 뇌는 쳇바퀴를 돌리듯 끊임없이 에너지를 태우고 있다. 오늘은 우리가 왜 주말마다 필드로, 산으로 나가야만 하는지에 대한 뇌과학적 변명, 아니 필연적인 이유를 다루고자 한다.
△ 아무것도 하지 않을 때 뇌는 더 괴롭다 - '디폴트 모드 네트워크(DMN)'의 역설
최신 뇌과학에는 '디폴트 모드 네트워크(DMN, Default Mode Network)'라는 개념이 있다. 이는 우리가 멍하니 있거나 특별한 작업에 집중하지 않을 때 활성화되는 뇌의 신경 회로를 말한다. 컴퓨터로 치면 '대기 모드'나 '화면 보호기' 같은 상태다.
문제는 컴퓨터의 대기 모드는 전력을 아끼지만, 인간 뇌의 DMN은 막대한 에너지를 소모한다는 점이다. 뇌 전체 에너지의 약 60~80%가 바로 이 DMN 상태에서 쓰인다. 우리가 소파에 누워 빈둥거릴 때 뇌는 쉬는 게 아니라, '나'에 대한 생각, 과거의 후회, 미래의 불안, 타인의 시선 등 잡념의 공장을 풀가동하고 있는 셈이다.
"아, 그때 김 부장한테 그 말은 하지 말걸.", "다음 달 카드값은 어떡하지?", "저 사람은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주말 내내 집에 누워 있었는데 월요일 아침에 머리가 더 무겁고 피곤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몸은 멈췄지만, DMN이 과활성화되면서 뇌는 '생각의 배기가스'로 가득 차 버린 것이다. 현대인의 뇌 피로, 번아웃(Burnout)은 일이 많아서가 아니라 이 DMN을 끄는 법을 잊어버렸기 때문에 발생한다.
△ 골프, DMN을 끄는 가장 우아한 스위치
그렇다면 이 시끄러운 DMN을 끄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역설적이게도 뇌는 '적당한 난이도의 과제'에 몰입할 때 비로소 잡념을 멈춘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레저(Leisure)를 필요로 하는 이유다.
골프는 DMN을 끄는 가장 탁월한 스위치다. 파3 티잉그라운드에 들어서서 150미터 앞 핀을 바라보는 순간, 혹은 1.5미터 퍼팅 라인을 읽는 그 짧은 찰나, 우리의 뇌는 오직 '공'과 '목표'라는 단 하나의 과제에 집중한다.
신경심리학적으로 이를 '중앙 집행 네트워크(CEN, Central Executive Network)'로의 전환이라 부른다. 우리가 샷에 몰입하는 순간, 뇌는 잡념의 회로(DMN)를 차단하고 실행의 회로(CEN)를 켠다.
"굿 샷!" 소리와 함께 공이 날아갈 때 느끼는 그 상쾌함은 단순히 공이 잘 맞아서가 아니다. 뇌를 괴롭히던 수만 가지 잡념이 일순간 침묵하고, 뇌가 진정한 '고요'를 경험했기 때문에 느껴지는 해방감이다. 즉, 골프라는 레저는 뇌에게 있어 '노는 시간'이 아니라 '청소하고 재부팅하는 시간'인 것이다.
△ 뇌세포를 위한 기적의 비료 - BDNF(뇌 유래 신경영양인자)
DMN의 차단이 뇌의 '휴식'이라면, 필드 위에서의 걷기는 뇌의 '성장'이다. 여기서 등장하는 중요한 개념이 BDNF(Brain-Derived Neurotrophic Factor), 즉 '뇌 유래 신경영양인자'다.
하버드 의대 존 레이티 교수는 BDNF를 "뇌를 위한 기적의 비료"라고 불렀다. BDNF는 뇌세포가 죽는 것을 막고, 새로운 뇌신경 연결을 촉진하며, 기억 저장소인 해마(Hippocampus)의 기능을 강화한다.
이 BDNF는 언제 가장 많이 생성될까? 바로 '유산소 운동'을 할 때, 그리고 '새로운 환경'에 놓였을 때다.
18홀을 돌며 약 1만 보 이상을 걷는 골프는 최고의 유산소 운동이다. 여기에 꽉 막힌 사무실 벽이 아닌, 탁 트인 초록 잔디, 계절마다 바뀌는 풍경, 시시각각 변하는 바람은 뇌의 시각 피질과 감각 피질을 기분 좋게 자극한다.
이때 우리의 뇌는 샤워를 하듯 BDNF를 뿜어낸다. 스트레스 호르몬인 코르티솔 수치는 급격히 떨어지고, 손상된 뇌세포는 복구된다. 우리가 라운드 후에 느끼는 "개운하다"는 감정은 단순한 기분이 아니다. 실제로 뇌가 더 젊어지고 건강해졌다는 생물학적 신호다.
△ 무용지용(無用之用) - 쓸모없어 보이는 시간의 위대한 쓸모
생산성의 관점에서 골프나 레저는 비효율이라고 보는 시각이 있다. 작은 공 하나를 구멍에 넣기 위해 4~5시간을 쓰고, 비싼 비용을 지불하고, 당장 통장에 돈이 들어오는 것도 아니고, 밥이 나오는 것도 아니다라고 이야기한다.
이럴 때 떠오르는 고사성어가 있다. 무용지용(無用之用). [장자(莊子)] 인간세(人間世)편에 나오는 말로, "쓸모없어 보이는 것이 실은 가장 큰 쓸모가 있다"는 뜻이다. 장자는 땅을 예로 든다. 우리가 서 있는 발밑의 땅만 쓸모 있고 나머지는 다 파버린다면 과연 걸을 수 있겠느냐고 묻는다. 우리가 딛지 않는 '쓸모없는' 땅이 있기에 우리는 안심하고 걸을 수 있다.
레저가 바로 인생의 '무용지용'이다. 당장 생산적인 결과물을 내놓지는 않는다고 하지만, 그 시간이 있기에 우리의 뇌는 다시 일할 힘을 얻고,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떠올리며, 감정의 균형을 잡는다.
스티브 잡스가 산책을 하며 아이폰의 영감을 얻었고, 수많은 CEO들이 필드 위에서 중요한 결단을 내리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멍하니 뇌를 방치하는 것이 아니라, 즐거운 몰입으로 뇌를 쉬게 했기에 가능한 일이다.
△ 뇌는 골프장에서 진화한다
결국 우리는 주말마다 골프장으로 '놀러' 가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치열한 세상 속에서 과열된 뇌를 식히고(DMN 끄기), 시들어가는 뇌세포에 영양분을 주기 위해(BDNF 생성), 본능적으로 필드를 찾는 것이다.
그러니 이번 주말, 스코어가 조금 안 나왔다고 스트레스받지 말자. 당신이 잔디를 밟으며 걷고, 샷 하나에 집중하는 그 순간, 당신의 뇌는 이미 완벽하게 치유되어 일상으로 복귀했다.
"잘 노는 사람이 일도 잘한다." 이 말은 핑계가 아니라 과학이다. 뇌는 레저를 할 때 비로소 진짜 숨을 쉰다.
[김기철 마니아타임즈 기자 / maniareport@naver.com]
<저작권자 © 마니아타임즈,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