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비보이그랑프리[연합뉴스 자료사진]](https://cgeimage.commutil.kr/phpwas/restmb_allidxmake.php?pp=002&idx=3&simg=20250817062451076725e8e9410871751248331.jpg&nmt=19)
1970년대 초 뉴욕 브롱스에서 DJ 쿨 허크(DJ Kool Herc)가 파티에서 힙합 DJ 문화를 열었을 때, 그는 음악의 ‘브레이크(break)’ 부분(리듬 악기만 남는 구간)을 길게 반복해서 틀었다. 그때 이 브레이크 구간에서 격렬하게 춤을 추던 사람들을 ‘Break-boys”, 줄여서 ’B-boys’ 라고 불렀다. 여성은 ‘B-girls’라고 말했다. 일부 힙합 커뮤니티에서는 ‘Bronx’의 ‘B’를 강조해 ‘Bronx boy/Girl’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본 코너 1511회 ‘올림픽 종목 명칭을 ‘브레이킹’이라 말하는 이유‘, 1514회 ’브레이킹에서 왜 ‘DJ’라고 말할까‘ 참조)
1980년대 초반 힙합 문화가 미국 전역으로 퍼지며, 미디어에 B-boy라는 용어가 등장했다. 영화 ‘Wild Style(1982)’, ‘Beat Street(1984)’에서 B-boy라는 말이 대중적으로 알려졌다. 1983년 1뉴욕의 크루등이 국제적으로 활동하면서 B-boy라는 말이 전 세계 힙합 커뮤니티에 전파됐다.
한국에는 1983~84년 미국 영화 ‘Flashdance’, ‘Beat Street’, ‘Breakin’ 등이 수입·상영되면서 처음으로 브레이킹과 B-boy라는 개념이 알려졌다. 다만 당시에는 ‘브레이크댄스’라는 표현이 훨씬 일반적이었고, “B-boy”라는 용어 자체는 소수 매니아층에서만 사용했다. 1990년대 중반, 서울 홍대·이태원 등을 중심으로 힙합 문화가 자리 잡으면서 댄스 동호회와 클럽 공연을 통해 B-boy라는 용어가 조금씩 쓰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대중적으로는 여전히 ‘브레이크댄서’라고 불렸다.
2001년 한국 팀이 세계 대회에서 두각을 나타내면서, 해외와 동일하게 B-boy라는 호칭이 본격적으로 쓰였다. 2002년 월드컵 기간 중 거리 공연과 방송 출연으로 한국 B-boy 크루들이 대중의 관심을 끌며, B-boy라는 말이 대중문화 속으로 확산됐다.
우리나라 언론은 1990년대 말부터 비보이라는 말을 사용했다.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에 따르면 조선일보 1999년 7월19일자 ‘“힙합,그 자유정신을 그렸죠”’ 기사는 유행하기 시작한 힙합문화를 소개하면서 ‘김수용(27)이‘힙합’(서울문화사) 6권을 펴냈다. 이 작품은 힙합이라는 신세대문화를 거의 교본 수준으로 섞었다. 실제로 작품 중간중간에는 탄탄한 데생력을 바탕으로춤 기본동작을 그려놓았다. 6권에서도 유승준‘열정’,박진영‘키스 미’등에 나오는 춤동작을 주인공 태하와 바비의캐릭터로 표현했다.부록‘서비스페이지’에서도‘B보이’(브레이크 댄스를 추는 남자)들의‘숄더스핀’‘등 웨이브’‘윈드밀’같은 전문 기술들을 사진과그림으로 묘사했다‘고 전했다.
B-boy라는 말은 단순히 춤추는 사람을 뜻하는 게 아니라, 힙합 정신과 거리 문화의 자부심을 담은 호칭이다. 올림픽 같은 공식 무대에서 선수들을 ‘댄서’라고 하기보다, 여전히 B-boy, B-girl이라는 용어를 존중해서 사용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김학수 마니아타임즈 기자 / kimbundang@maniarepor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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