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시절 양준혁은 홈런을 치고 유별난 배트플립 세리모니를 보였다. [연합뉴스 자료사진]](https://cgeimage.commutil.kr/phpwas/restmb_allidxmake.php?pp=002&idx=3&simg=20200507065652071618f6b75216b21121740159.jpg&nmt=19)
타격교과서에선 볼 수 없었던 양준혁 특유의 ‘만세 타법’으로 코치들이 수없이 지적했지만 그 폼으로 1993년 데뷔 첫 해 타격 1위, 홈런 2위, 장타율 1위를 기록하며 이종범, 구대성, 이상훈, 박충식, 이대진 등을 제치고 신인왕을 차지한 터여서 그 누구도 말릴 수 없었다.
양준혁의 그 폼과 동작이 바로 미국 팬들을 대한민국 야구에 빠져들게 한 배트 플립(빠던-빠따 던지기. 빠따는 배트의 일본식 발음). 메이저리그에서는 투수들이 자신을 조롱한다고 생각, 다음 타석에서 빈볼을 던지기 때문에 금기시 되고 있는데 ‘빠던의 원조’ 양준혁도 방망이를 던진 만큼 몸에 맞는 공을 맞을 뻔 했다.
연, 고대를 졸업한 프로 8~9 년차 선수 몇몇이 모인 자리에서 양준혁에게 홈런을 맞고 기분이 나빴던 한 투수가 “신인이 너무 설쳐. 아무래도 손을 좀 봐줘야 할 것 같다”고 하자 대부분 뜻이 같다는 듯 고개를 끄떡거렸다.
그러나 삼성에 몸담고 있던 양준혁의 선배가 그들을 말렸다.
“그 놈, 제법 의리도 있고 매우 열심히 하는 착한 친구야. 그리고 일부러 그러는 게 아냐. 폼이 원래 괴상망칙하잖아.”
“하긴 그렇지. 그럼 좀 두고 보자”
양준혁은 친구들 사이에서 신망이 두터웠던 그 선배 덕분에 ‘보복성 데드볼’을 맞지 않았다. 그가 의리가 있다고 한 것은 고교동기지만 1년 먼저 입단한 투수 김태한과의 관계를 두고 한 말이었다.
양준혁과 김태한은 대학 졸업 후 함께 뛰자고 약속했다. 그러나 삼성이 연고지 선수 중 그 해에 데려갈 수 있는 선수는 1명 뿐이었다. 삼성이 투수보강 때문에 김태한을 먼저 지명할 수 밖에 없음을 알게 된 양준혁은 쌍방울의 지명을 뿌리치고 상무에 입대했다.
이듬 해 삼성은 양준혁을 지명했다. 삼성이 여러 가지 회유책을 펼치긴 했지만 양준혁은 친구와의 약속을 지키고 싶었고 고향 팀에서 뛰고 싶어 ‘야구 재수생’의 길을 택했다. 선배들에게 깎듯하게 하고 훈련을 아주 열심히 한 것도 도움이 되었다.
투수들이 맞추겠다고 마음먹으면 피할 수 없다. 그게 무서워 피하다보면 공을 칠 수 없다. 이래저래 고달픈 인생이 되는데 시속 150km대의 직구에 옆구리라도 맞았다면 양준혁의 ‘빠던’은 두고 두고 볼 수 없었을 것이다.
[이신재 마니아리포트 기자/news@maniarepor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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