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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세영의 마니아썰]영화 베테랑과 골프 베테랑

2015-09-09 08:44

▲영화베테랑이인기다.내년이면투어10년차를맞는김대현(왼쪽)과김경태도올해재기에성공했다.그들의스토리는영화와닮은듯다르다.사진편집=박태성기자
▲영화베테랑이인기다.내년이면투어10년차를맞는김대현(왼쪽)과김경태도올해재기에성공했다.그들의스토리는영화와닮은듯다르다.사진편집=박태성기자
요즘 영화 ‘베테랑’이 인기다. 광역수사대 형사 서도철(황정민)이 범죄를 저지른 재벌 3세 조태오(유아인)를 쫓는 범죄 오락 영화다. 일개(?) 형사가 재벌과 그를 비호하는 상부의 압력과 싸워 이기는 스토리에 관객은 박수를 보내고 있다. 관객 1100만 고지를 넘었고, 역대 한국영화 흥행 ‘톱10’에도 들었다.

지난주 국내 남자 골프계에도 ‘베테랑’의 귀환을 알리는 소식이 있었다. 매일유업 오픈에서 우승한 김대현(27)과 같은 날 일본에서 우승 소식을 전한 김경태(29)다. 둘 다 2007년부터 프로골프 무대에 뛰어 들었다. 내년이면 투어 10년 차를 맞는 베테랑이다.

프로 입문 동기인 그들은 공교롭게도 최근 몇 년 사이 ‘이름값’에 비해 그저 그런 성적을 내다 올해 재기에 성공한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그들이 부활 샷을 날릴 수 있었던 비결도 일맥상통한다.

김대현의 이름 석 자는 그동안 ‘장타왕’의 대명사였다. 그는 데뷔 첫해인 2007년부터 2011년까지 5년 연속 국내에서 가장 멀리 볼을 날리는 선수였다. 300야드를 훌쩍 넘겼고, 자신의 장타 비결을 담은 DVD를 출시하기도 했다.

반면 김경태는 멀리는 아니지만 가장 정확하게 볼을 날리는 선수로 꼽혔다. 그의 드라이버 샷은 페어웨이 한 가운데를 가로질렀고, 아이언샷은 그린에 정확히 꽂혔다. 이를 바탕으로 2007년 국내 최초 데뷔전 2연승의 대기록을 작성했다. 그해 상금왕, 대상, 덕춘상(최저 타수상) 등 4개의 타이틀을 휩쓸었다.

▲김대현은장타에너무욕심을내다결국왼쪽어깨에부상을입고말았다.지난2013년매경오픈당시모습이다.사진=박태성기자
▲김대현은장타에너무욕심을내다결국왼쪽어깨에부상을입고말았다.지난2013년매경오픈당시모습이다.사진=박태성기자


남자 골퍼들이 으레 그렇듯 김대현과 김경태에게도 비거리는 자존심의 문제였다. 영화 베테랑의 표현을 빌리자면 ‘가오’다. 김대현은 가오를 지키기 위해, 김경태는 가오를 얻기 위해 경쟁자들을 압도하는 비거리가 필요했다. 물론 이를 가오라는 한 단어로 규정하는 데에는 무리가 따르지만 그들의 가슴 깊은 곳엔 그런 마음이 꿈틀거리고 있었을 것이다.

김대현은 2010년 상금왕에도 올랐다. 하지만 그는 평소 ‘장타왕’이라고 불리는 게 훨씬 자랑스럽다고 했다. 김대현에게 장타는 단순히 볼을 멀리 날리는 의미 이상이었다. 하나의 브랜드이자 자신의 아이덴티티(정체성)였다.

그러나 욕심이 화를 불렀다. 2011년 말 무리한 트레이닝을 하다 왼쪽 어깨를 다친 것이다. 김대현은 “욕심을 내다보니까 그런 거다. 거리를 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내 머릿속에 언제나 자리를 잡고 있었다. 그러다 보니 좀 더 무거운 바벨을 들어 올려야 했고, 결국 신경에 무리가 온 거다”고 했다.


▲장타에대한욕심을버리고스윙을개조한김대현은지난주매일유업오픈에서달콤한열매를수확했다.장타의짐을내려놓은그는마음도홀가분하다고했다.사진=한석규객원기자(JNA골프)
▲장타에대한욕심을버리고스윙을개조한김대현은지난주매일유업오픈에서달콤한열매를수확했다.장타의짐을내려놓은그는마음도홀가분하다고했다.사진=한석규객원기자(JNA골프)


부상으로 인해 성적도 신통치 않았다. 2013년 미국 2부 투어 격인 웹닷컴 투어에 뛰어들었지만 실패를 맛보고 국내로 U턴 했다. 지난해 12개 대회에 출전해 5차례나 컷 통과에 실패했다. 상금 순위도 36위에 그쳤다. 올해도 상황은 나아지지 않아 매일유업 오픈 전까지 7개 대회에 출전해 4차례나 컷 탈락했다.

상반기를 마친 그의 심정은 참담했다. 주위에선 ‘이제 김대현은 갔다’고 수군거렸다. 그는 심리적 불안 증세까지 보였다고 했다. 그는 “장타왕의 자부심을 내려놓는 게 정말 힘들었다. 하지만 그걸 내려놓지 않고선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걸 깨달았다”고 했다. 스트롱 그립에서 정확성을 위해 중립 그립으로 바꾸고 스윙도 조금씩 개조했다. 그리고 지난주 그 변화의 달콤한 열매를 수확했다. 장타라는 짐을 내려놓으니 마음도 홀가분하다고 했다.

▲거리를늘리려다성적부진에빠졌던김경태도올해는올해3승을거두며일본에서상금1위를질주하고있다.
▲거리를늘리려다성적부진에빠졌던김경태도올해는올해3승을거두며일본에서상금1위를질주하고있다.


김경태도 그랬다. 2011년 일본 상금왕에 올랐던 그는 2013년 상금 20위, 지난해에는 상금 35위까지 밀렸다. 지난 2년간 우승 없이 보낸 그는 “비거리를 늘리려다 몸도 망가지고 심리적으로 쫓겼다”고 했다. 올해부터 그는 장타 욕심을 버리고 스윙을 간결하게 바꿨다. 그 결과 일본 무대에서 3승을 거두며 상금 1위를 질주하고 있다.

골프는 자연과의 싸움이자 자신과의 싸움이다. 그 싸움에는 요령이 필요하다. 끊임없이 투쟁하면서도 타협하는 자세다. 일종의 ‘필드의 정치’다. 투지를 잃지 않으면서도 버릴 건 버릴 줄 알아야 한다. 자신이 처한 위치에서의 강점과 약점을 냉철히 분석해야 한다. 자연과 소통할 줄도 알아야 한다. 두 베테랑 골퍼는 이를 바탕으로 필드와, 그리고 자신과 타협을 했다. 적절한 보상도 받고, 자존심도 새롭게 세웠다.

가오는 순간을 멋지게 포장해 주지만, 말 그대로 ‘허세’이자 ‘찰라’에 불과하다. 자존심과는 같은 듯 다르다. 영화와 현실도 같은 듯 다르다. 때론 그래서 슬프기도 하지만 그게 현실이다. 지난주 베테랑 골퍼에게서 배운 교훈이다.

김세영 마니아리포트 국장 freegolf@maniarepor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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